
스타트업은 성장하며 일종의 영화를 찍는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영화 상영이 끝나고 엔딩 크레딧(제작진 소개자막)이 올라갈 때, 거기에 몇번째로 네이버의 이름이 올라갈까. 이런 게 저희에게 굉장히 큰 보람과 즐거움을 줍니다. 스타트업의 초기부터 함께 호흡하면서 같이 만든 이야기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는 얘기입니다. 네이버도 스타트업에서 출발해 비슷한 고생을 했기 때문에 그런 멘탈리티(사고방식)가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네이버는 스타트업들과 그 이야기를 앞으로도 함께 써나갈 것입니다.
양상환 네이버 D2SF 센터장은 13일 D2SF 설립 10주년을 맞아 서울 서초구 'D2SF 강남'에서 라운드 테이블을 개최하고 "네이버는 스타트업에 투자한 뒤 자본을 회수하는 게 목적인 금융자본이 아니라, 기업을 만드는 게 목적인 '빌더' 역할의 산업자본"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네이버 D2SF는 기술 스타트업 투자·협력을 통해 더 큰 성장을 만들겠다는 비전 아래 2015년 출범한 기업형 벤처캐피탈(CVC·corporate venture capital)이다.
이런 까닭에 네이버 D2SF가 10년간 투자한 스타트업 115팀 가운데 99%는 투자 당시 시드(Seed·극초기) 또는 시리즈A(초기) 단계였다. 특히 네이버 D2SF가 주목한 스타트업들은 인공지능(AI)·버추얼·로보틱스 등 각 기술·산업에서 처음으로 새로운 시도에 나선 개척자에 가까웠다.
D2SF가 출범한 2015년은 모바일 시대가 도래하며 일상을 바꾸는 모바일 서비스 스타트업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으나, 네이버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기술 스타트업'에 베팅했다. 양 센터장은 개척자에 가까운 투자 스타트업의 대표적인 사례로, 국내 최초 AI 반도체 칩을 설계한 '퓨리오사AI', 로봇소프트웨어 기업 최초 상장사인 '클로봇', AI 데이터 플랫폼 최초로 상장한 '크라우드웍스' 등을 꼽았다.

이 과정에서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면 네이버 중심의 시너지 효과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봤다. 양 센터장은 "처음부터 함께 호흡하면, 네이버와 함께 성장하기 위한 다양한 제안을 할 수 있는 등 시너지 효과를 만들기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최근의 성과는 네이버의 차세대 먹거리 중 하나인 쇼핑 분야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양수영 테크타카 대표는 "네이버쇼핑과 긴밀히 협력해 주7일 네이버배송 서비스를 운영하며 당일 출고율 99.9%를 기록 중"이라며 "이런 덕분에 급증하는 물류량을 안정적으로 처리하면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했다.
10년간 투자 성과도 상당하다. 네이버 D2SF가 투자한 스타트업들의 기업가치는 현재 5조2000억원 규모에 달한다. 이 중 64%가 네이버와 구체적 협업을 했다. 스타트업의 높은 불확실성에도 96%에 달하는 생존율을 기록하고 있고, 시드에서 프리-A(시리즈A 직전단계)까지 도달하는 기간은 18개월에 불과했다. 양 센터장은 스타트업들의 높은 생존율에 대해 "저희가 투자한 기술 스타트업은 그 특성상 시장의 특정 사용자 행태와 뿌리 깊게 묶여 있지 않기 때문에, 시장 상황이 변했을 때 원천 기술을 가지고 다양한 시도를 하는 등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네이버 D2SF는 스타트업들의 글로벌 진출도 적극적으로 지원할 방침이다. 현재 네이버 D2SF에서 투자한 스타트업의 81%가 글로벌 진출을 본격화 중이며, 네이버 D2SF 역시 지난해 10월 미국 실리콘밸리로 활동 반경을 넓히기도 했다.
올해는 AI 스타트업 투자에 집중해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할 계획이다. 양 센터장은 "어제 투자한 기업, 기술이 내일은 쓸모가 없어질 정도로 하루하루 바뀌고 있는 AI 시대에 네이버가 성장을 고민하는 것은 사치이고, 지금은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좋은 AI 스타트업이 있으면 예산을 증액해서라도 투자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네이버 D2SF는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국내 최대 인터넷 기업으로 성장한 네이버에게 매우 큰 의미가 있는 활동"이라며 "스타트업과 꾸준히 협력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 IT 생태계를 넓혀오고자 노력해왔다. 앞으로 우수한 국내 스타트업들이 글로벌 진출을 통해 더 큰 성장을 이뤄낼 수 있도록 함께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