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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트 '악몽' 네버엔딩 스토리

  • 2015.10.23(금) 09:48

①덤핑 수주 ②설계역량 부족 ③원가관리 실패

삼성엔지니어링이 2년 전보다 더 많은 1조5000억원대 분기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건설업계 사상 최악의 '어닝 쇼크'다. 재작년 1조원대 손실이 전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문제가 불거진 다수의 중동 현장에서 '잔불 정리'가 이뤄지고 있다고 믿던 가운데 터진 일이어서 시장에 준 충격은 컸다.

 

2013년 삼성엔지니어링과 함께 GS건설, 대림산업, SK건설 등이 중동지역 현장에서의 대규모 손실로 연쇄적인 어닝쇼크를 터뜨렸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이번 어닝쇼크가 개별 회사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조선업계 '빅 3'도 해양 플랜트 부문을 중심으로 작년 3조원, 올해 5조원 규모의 대규모 적자를 터뜨린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2의 중동 붐'을 언급한 뒤 재개된 중동지역 대규모 플랜트 수주도 마냥 반길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외화벌이 효자로 여겨졌던 플랜트 산업이 이토록 망가진 이유는 무엇일까?

 

 

① 덤핑의 덫

 

삼성엔지니어링의 이번 분기 영업손실은 1조5127억원으로, 같은 기간 매출 8569억원보다 많았다. 정상적인 기업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삼성엔지니어링의 설명은 이렇다. ▲프로젝트 대형화와 복합화 등 수행환경의 변화에 대한 프로젝트 수행준비와 역량 부족 ▲중동정세 불안 등 예상치 못한 리스크 발생 ▲저유가 장기화로 인한 발주처의 어려운 사업 상황 등이 배경이다. 이 때문에 공기지연, 추가공사 발생, 정산합의 난항 등 복합적인 사업 차질이 빚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 깊숙히 들어가면 리스크를 충분히 감안하지 않은 무리한 덤핑 수주가 그 바탕에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현장은 대부분 2011~2012년에 따낸 것이다. 2009년 이후 달아올랐던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수주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시기다.

 

삼성엔지니어링은 당시 저마진 수주전략으로 경쟁이 심한 화공·정유 분야플랜트에 집중해 건설업계에서 가장 많은 수주고를 올렸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삼성엔지니어링은 2009년(93억 달러)과 2011년(71억 달러) 건설업계에서 가장 많은 일감을 따냈고 2012년에는 105억달러로 1위 현대건설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2011~2012년 2년간 수주액은 175억 달러로 업계에서 가장 많았다.

 

한 증권사 건설 애널리스트는 "해외건설 붐이 일던 2009~2012년 사이 국내 건설사들이 따낸 중동 플랜트 사업의 상당수가 저마진 사업이어서 요주의 현장으로 분류돼 왔다"며 "삼성엔지니어링의 경우 당시 수주 물량 중 아직 손실이 확정되지 않은 현장도 적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 삼성엔지니어링 사우디이슈현장 리스트

 

② 설계역량 부족

 

본원적 경쟁력인 설계능력을 갖추지 못한 것도 문제다. 플랜트 공사의 경우 설계는 기본설계와 FEED(Front End Engineering and Design, 기본설계와 상세설계의 중간과정), 상세설계로 나뉘는데 국내 건설사들은 상세설계 능력은 있지만 기본설계와 FEED 분야가 취약하다. 

 

국내 업체들은 기본설계와 FEED는 따내지 못하고 기본설계 조건 아래 일정 금액 안에서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EPC(설계·구매·시공) 중심의 '일괄턴키' 형식으로 수주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공기가 지연되거나 설계변경이 필요한 상황이 오면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는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등 대형 조선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설계 등 고급 역량을 갖추지 않은채 경험마저 적었던 해상플랜트 분야에 성급히 뛰어든 것이 수 조원 대 손실로 돌아왔다는 평가다.

 

설계역량이 없다보니 계약에서부터 열세에 놓였다. 턴키 사업은 최종 결과물만 책임지면 되는데 사업 구간마다 공기를 맞추지 못하면 공사대금을 2~3% 깎는 '이행 패널티'를 물게 하는 등의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발주처가 갑(甲)이고 기본설계를 맡은 선진 엔지니어링업체가 을(乙)이라면 국내 건설사들은 병(丙)·정(丁)의 위치였던 것이다.

 

박중흠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은 지난 7월 한 강연에서 "발주처가 EPC사에 모든 리스크를 전가하는 추세"라며 "일괄턴키로 계약하고 추후 비용을 변제하는 계약방식은 EPC사에 불리한 조건"이라고 토로했다.

 

③ 원가관리 실패

 

결국 악조건 속에서 다수의 대형 프로젝트를 운영하다보니 원가관리에 실패한 현장이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게 됐다. 공기가 늦어져 지체상금(계약한 공기를 맞추지 못하는 경우 발주처 등에 지급하는 배상금) 등을 물고, 설계 변경에 따른 추가비용을 전혀 받지 못하는 현장도 다수 발생했다.

 

여기에 자재 조달 차원에서도 문제가 겹쳤다. 중동 발주물량이 몰렸던 탓에 자재 수요가 늘어났고, 이는 원자재 값 상승으로 이어졌다. 특히 플랜트 산업은 철강, 시멘트, 파이프 등 자재비 비중이 높아 자재가격 상승에 따른 충격이 다른 분야보다 크다.

 

또 워낙 많은 현장이 들어서다보니 현지나 인도 필리핀 등 제3국에서 확보해야하는 인력 문제도 심각해졌다. 삼성엔지니어링의 손실이 가장 컸던 사우디의 경우 자국민 의무고용을 강화하면서 비숙련 현지 노동자가 대거 유입돼 생산성이 떨어지는 문제도 발생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종합적인 역량을 확보하지 않고 리스크를 감안하지 않은 채 단기간 외형 성장에만 치중한 것이 대규모 손실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며 "건설사들의 해외 현장 리스크는 2012년께 수주분이 모두 완공되는 내년 상반기까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그래픽 = 김용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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