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상반기 [재계 3·4세]시즌1을 통해 17개 대기업 경영권 승계 과정과 자금출처, 경영능력을 분석했습니다. 같은해 하반기 시즌2에서는 우리나라 주요산업 중 가장 오랜 업력을 가진 제약업종의 승계과정을 15개 회사를 통해 들여다봤습니다.
이번 시즌3의 주제는 건설·부동산입니다. 국토교통부가 올해 7월 발표한 토목·건축 시공능력평가 50위내 건설사와 상위권 건설자재업체 가운데 2세 또는 3세 체제로 전환 중인 곳들을 살펴봅니다. 이들 회사의 창업주는 특정지역을 기반으로한 소규모 회사로 출발해 대기업계열 회사들과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며 보란 듯 전국구로 승격했습니다. 최근엔 주택시장 침체기의 돌파구로 골프장·리조트를 공격적으로 사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눈부신 성장의 이면에는 은둔형 기업이라는 오명, 계열회사끼리 일감몰아주기로 의심받는 사례 속출 등 어두운 모습도 있습니다. 같은 그룹 안에 oo건설, oo주택, oo개발처럼 비슷한 이름을 가진 소규모회사도 많은데요. 단순히 문어발식 확장 형태가 아니라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싼값에 토지를 확보해 이익을 남기기 위한 것이란 의혹도 받습니다. 중견건설사 지배구조분석을 통해 화려한 외형 그 이면을 들여다봅니다.[편집자]
아파트브랜드 '반도유보라'로 유명한 반도건설은 올해 국토교통부 발표 토목·건축 시공능력평가에서 13위(평가액 2조5928억원)를 기록한 건설사다.
2015년 시공능력평가에서는 50위(5625억원)였으나 최근 김포·동탄 등 수도권 아파트건설에 힘입어 ▲2016년 44위(6306억원) ▲2017년 27위(1조2122억원) ▲2018년 12위(2조2208억원)로 해마다 순위가 뛰어올랐다. 올해 순위는 작년보다 한 단계 내려갔지만 시공평가액은 늘었다.
반도건설은 2008년 물적분할로 지주회사 반도홀딩스를 만들며 일찌감치 지배구조를 바꿨다. 권홍사(76) 회장이 반도홀딩스를 지배하고, 홀딩스가 주력회사 반도건설과 반도종합건설을 지배하는 구조가 핵심이다. 그 밑으로는 시행사들이 줄지어 있다.
# 권홍사 회장 아들 주주로 등장한 후 차등배당
반도건설은 2015년 후계 승계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2014년까지는 반도홀딩스 지분 93.11%를 권홍사 회장이 가지고, 권 회장의 동생 권혁운(70) 아이에스동서 회장이 6.44%, 기타주주가 0.55%를 보유했다.
하지만 2015년 권홍사 회장의 아들 권재현(34) 반도건설 상무가 반도홀딩스 지분 30.06%를 단숨에 취득하며 승계 작업에 불씨를 당겼다.
권 상무가 반도홀딩스 지분을 보유하기 전·후 회사 자본금 변동이 없는 점을 감안하면, 아버지 권홍사 회장과 삼촌 권혁운 회장의 지분을 동시에 취득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가족간 거래로 반도홀딩스 주주명부는 권홍사 회장(69.61%) 권재현 상무(30.06%) 기타주주(0.33%)로 재편됐다.
권 상무는 지분을 취득하던 그해 반도홀딩스로부터 25억원을 빌렸는데, 아버지와 삼촌으로부터 주식을 수증 또는 매입하는데 필요한 자금증빙용으로 대여한 것으로 보인다.
창업주 2세인 권 상무가 반도홀딩스 주주명부에 이름을 올리자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2008년 지주회사 전환후 2015년까지 주주배당 흔적이 없던 반도홀딩스가 단번에 거액의 배당을 실시한 것이다. 그것도 1대주주(권홍사 회장)는 한 푼도 받지 않고 배당금 전액을 2대주주(권재현 상무)에게 몰아주는 방식이었다.
반도홀딩스는 권 상무가 주주명부에 이름을 올린 2015년 1주당 5만8000원(액면가 5000원)의 중간배당을 결정했다. 배당총액은 406억원이었다.
당시 반도홀딩스 총 발행주식(233만주)과 주당 배당금을 곱하면 배당총액이 1351억원이어야 맞지만, 당시 배당은 지분 30.06%(70만주)를 가진 권재현 상무에게만 지급하는 '차등배당'이었기에 배당총액이 406억원이 된 것이다. 아버지가 1대주주가 아니고선 상상하기 어려운 배당 방식이다.
권 상무는 이듬해 2016년 406억원이라는 거액의 배당금을 받아, 회사로부터 빌린 대여금과 이자를 가볍게 상환하고도 수백억 원의 현금을 거머쥐게 됐다. 이후에도 반도홀딩스는 2016년과 2017년 연속 배당을 실시했고, 권 상무는 약 70억원의 배당금을 추가로 받았다.
뿐만 아니라 권 상무가 대주주인 반도개발(울산 보라컨트리클럽 운영사)도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총 95억원의 배당금을 풀었고 이중 62억원이 지분 65%를 가진 권재현 상무의 몫으로 돌아갔다. 반도개발의 배당정책도 권 상무가 최대주주에 오른 이후 본격화됐다.
현재 30대 중반인 권 상무는 서른 살 무렵 이미 반도홀딩스, 반도개발로부터 500억원이 넘는 배당금을 받았다.
종합하면 반도건설 승계의 방정식은 ▲핵심회사(반도건설)를 지배하는 지주회사(반도홀딩스) 설립 ▲가족 간 거래로 2세가 대주주로 등장 ▲배당으로 승계자금 마련 순서로 요약할 수 있다.
반도건설 승계과정에서 남은 절차는 현재 반도건설 개발사업본부에 몸 담고 있는 권 상무가 경영능력을 입증하는 동시에 아버지의 반도홀딩스 지분을 추가로 물려받는 것이다.
권홍사 회장이 가진 69%의 반도홀딩스 지분 중 최소 절반은 추가로 확보해야 명실상부 지분 승계가 일단락됐다고 볼 수 있다. 지분 승계에 걸림돌은 크지 않다. 반도홀딩스가 비상장사인데다 권 상무가 이미 수년 전부터 확보해놓은 배당금은 향후 지분 승계의 핵심 자금이 될 전망이다. 지배구조 최상층부에 오직 총수일가만 존재하다보니 배당금이 오롯이 총수일가로 흘러갈 수 있는 구조다.
권홍사 회장은 부인 유성애(71) 반도레저 대표이사와의 사이에 1남 3녀의 자녀를 두고 있는데 현재까지의 승계 흐름을 살펴보면 장남(막내아들) 권재현 상무로 집중되는 모습이다.
첫째 딸 권보라(43)씨는 경영에 전면적으로 나서진 않고 있다. 어머니가 대표로 있는 반도레저 등기임원으로 이름 올리고 있을 뿐이다. 대신 권보라씨의 남편 신동철(47) 퍼시픽산업 대표가 하모니컨트리클럽 대표, 반도홀딩스과 반도개발 사내이사, 반도레저 감사 등 다양한 직함을 갖고 활발하게 계열사 경영에 참여 중이다. 일부에선 권재현 상무와 신동철 대표가 향후 후계구도를 놓고 경쟁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하지만, 신 대표는 지배구조의 핵심 반도홀딩스 지분이 없다. 그가 대주주로 있는 퍼시픽산업의 자산은 반도홀딩스의 6% 수준이다. 소설이나 드라마도 개연성이 있어야 호응을 얻는다.
둘째 딸 권보영(42)씨는 2009년부터 지금까지 더유니콘(옛 반도주택)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며, 회사 지분도 100% 가지고 있다. 셋째 딸 권은영씨는 계열사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 한진칼 지분 매입에 참여한 계열사의 면면
반도건설 계열사들은 지난 10월초 한진그룹 총수 일가와 2대주주 KCGI가 경영권을 두고 대립하고 있는 한진칼 지분 5.06%를 매입해 관심을 모았다.
한진칼 지분매입에 참여한 계열사는 대호개발(2.46%)을 필두로 한영개발(1.75%) 반도개발(0.85%) 등이다.
주식시장에선 반도건설 계열사의 한진칼 지분 매입을 두고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진칼 지분매입에 '차출'된 계열사의 면면을 보면 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제법 크다는 점이다.
대호개발과 한영개발은 시행사인데 반도건설그룹에 있는 수많은 시행사 중 자산총액 최상위권 회사다. 반도개발은 2세 권재현 상무가 최대주주로 있는 곳이다.
# 부영·중흥·호반 이어 대기업편입 여부 관심
반도건설의 향후 지배구조에서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대기업집단(공시대상기업집단, 자산총액 5조원 이상) 지정 여부다.
국내계열사 가운데 2018년 말 기준 감사보고서를 제출한 21개사를 살펴본 결과 자산총액(별도재무제표 기준) 합계는 4조3158억원으로 1년전(4조891억원)보다 2267억원 증가했다.
지방건설사로 출발해 전국구로 성장한 자수성가형 건설사 가운데 부영·중흥·호반건설이 연이어 대기업집단에 포함된 가운데 반도건설이 뒤를 이을지 관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