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상반기 [재계 3·4세] 시즌1을 통해 17개 대기업 경영권 승계 과정과 자금출처, 경영능력을 분석했습니다. 같은해 하반기 시즌2에서는 우리나라 주요산업 중 가장 오랜 업력을 가진 제약업종의 승계과정을 15개 회사를 통해 들여다봤습니다.
이번 시즌3의 주제는 건설·부동산입니다. 국토교통부가 올해 7월 발표한 토목·건축 시공능력평가 50위내 건설사와 상위권 건설자재업체 가운데 2세 또는 3세 체제로 전환 중인 곳들을 살펴봅니다. 이들 회사의 창업주는 특정지역을 기반으로한 소규모 회사로 출발해 대기업계열 회사들과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며 보란 듯 전국구로 승격했습니다. 최근엔 주택시장 침체기 돌파구로 골프장·리조트를 공격적으로 사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눈부신 성장의 이면에는 은둔형 기업이라는 오명, 계열회사끼리 일감몰아주기로 의심받는 사례 등 어두운 모습도 있습니다. 같은 그룹 안에 oo건설, oo주택, oo개발처럼 비슷한 이름을 가진 소규모회사도 많은데요. 단순히 문어발식 확장 형태가 아니라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싼값에 토지를 확보해 이익을 남기기 위한 것이란 의혹도 받습니다. 중견건설사, 건설자제업체 지배구조분석을 통해 화려한 외형 그 이면을 들여다봅니다.[편집자]
아주그룹은 1960년 건설자재업체 아주산업이 모태다. 올해 창사 60년을 맞이했다. 1960년대 나무로 된 전신주를 대체할 수 있는 콘크리트 전신주를 개발하며 이름을 알렸고, 1970년대 건설용 고강도 흄파이프(Humepipe)를 공급하며 건자재업체로 본격 도약했다.
1980년대 레미콘 상위권 업체로 기반을 다진 이후 호텔(아주호텔앤리조트), 금융(아주IB투자), 자동차판매·서비스(아주모터스·아주오토리움·아주네트웍스), IT(아주큐엠에스) 등으로 사업다각화를 시도했다. 현재 계열 자산총액 2조5800억원 규모다.
창업주 문태식(1928-2014) 명예회장은 3남 2녀를 뒀는데 2세 중 장남 문규영(70) 회장은 전통적 사업기반인 건자재 중심의 아주그룹, 차남 문재영(67) 회장은 그룹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는 서울 중랑구 상봉터미널을 운영하는 신아주그룹, 삼남 문덕영(61) 부회장은 렌탈사업 중심의 AJ네트웍스를 이끌고 있다. 막내까지 모두 환갑을 넘긴 아주그룹 2세는 나란히 3세 승계도 준비하고 있다.
# 3세 문윤회 대표, 아버지가 물려준 '아주글로벌'이 승계 핵심
2세 중 첫째 문규영 회장은 장남 문윤회(40) 아주호텔앤리조트 대표이사로 이어지는 승계구도를 그리고 있다.
아주그룹 계열 지분구조는 문규영 회장이 최대주주인 아주산업, 문윤회 대표가 최대주주인 아주글로벌 두 축으로 나뉜다. 아주산업이 아주IB투자(67.1%) 아주지오텍(100%) 아주큐엠에스(98.8%) 아주자산개발(100%) 등 국내계열사와 해외법인을 지배하고, 아주글로벌이 아주모터스(65.57%) 아주프라퍼티즈(65.57%) 아주호텔앤리조트(15.30%, 아주프라퍼티즈 보유지분까지 합치면 52.9%) 아주오토리움(75%)을 지배한다.
아버지가 최대주주인 아주산업(연결 자산 1조4325억원)과 아들이 최대주주인 아주글로벌(연결 자산 5630억원)의 자산총액은 2.5배 차이난다. 아직도 격차가 적지는 않지만 10년전만 해도 페이퍼컴퍼니에 불과했던 아주글로벌이 급격히 몸집을 불러온 과정을 살펴보면, 이 회사가 아주그룹 3세 문윤회 대표의 승계 핵심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아주글로벌은 1960년 만들어진 그룹의 '모태' 아주산업이 여러 번의 분할로 사업부를 떼어내고, 회사 이름도 수차례 바꿔온 끝에 2010년 지금의 사명인 아주글로벌로 정착한 곳이다.
2010년말 문규영 회장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아주글로벌 지분 69.1%를 장남 문윤회 대표에게 양도했다. 문 회장이 아들에게 지분을 넘기기 전 아주글로벌은 사실상 '개점휴업'이었던 회사였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매출(별도기준)이 단 한 푼도 발생하지 않았다. 사실상 껍데기뿐인 회사에 불과할 때 아버지가 아들에게 지분을 넘긴 것이다.
아주글로벌은 지금도 회사 자체(별도 재무제표 기준)만 놓고 보면 큰 주목을 받지는 못하는 곳이긴 하다. 2018년 기준 자산총액은 600억원대이며, 매출은 12억6000만원이다. 그해 올린 매출 전부가 문규영 회장이 지배하는 아주산업과의 거래로 발생했으니 일감몰이주기 비율 100%다.
아주글로벌은 종속기업까지 합쳐놓은 연결 기준으로 따지면 덩치가 확 달라진다. 연결 자산총액이 무려 5630억원이다. 아주프라퍼티즈, 아주모터스, 아주오토리움, 아주호텔앤리조트까지 줄줄이 연결 대상으로 편입하고 있다. 자체 사업은 아주산업에 의지하는 일부를 제외하면 거의 없고, 계열사를 지배하는 것이 주된 사업인 셈이다.
특히 이 회사는 문윤희 대표가 최대주주에 오르기 전인 2009년 연결자산 429억원에 불과했으나 10년 만에 자산이 13배 늘어나는 그야말로 폭풍같은 성장세를 보였다. 특히 2018년까지만 해도 연결자산 1573억원이었으나 1년 새 3.6배의 자산 증가가 있었다.
이런 배경에는 아주글로벌이 아주호텔앤리조트 주식(15.3%)을 취득하면서, 자신의 종속회사 아주프라퍼티즈 지분(37.6%)과 합쳐 50%가 넘는 지배력을 보유하게 돼 아주호텔앤리조트 계열을 모두 종속기업으로 편입했기 때문이다.
별다른 자산도 매출도 없던 아주글로벌이 아주호텔앤리조트 주식을 취득해 종속회사로 편입한 것은 계열간 지분 거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주글로벌이 수입차딜러사 아주네트웍스 지분(100%, 201억원)을 아주산업에 넘기고, 아주호텔앤리조트 주식(221억원)을 취득한 것이다.
아주그룹 3세 문윤희 대표가 최대주주로 있는 아주글로벌이 외형적으로 급성장하면서 향후 그룹의 핵심 아주산업과의 합병 또는 현물출자 방식으로 승계에 마침표를 찍으려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전형적인 총수 자녀의 비상장회사를 키워 그룹 핵심회사 지분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 신통찮은 호텔사업, 3세의 경영능력 시험대
다만 문윤회 대표는 자신의 본업이라 할 수 있는 호텔 사업과 관련, 최근 경영시험대에 오른 상태다. 총수 자녀의 경영 성공 또는 실패 여부가 지분 승계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점은 우리나라 기업역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문윤회 대표의 상황은 좀 더 특수하다.
미국 코넬대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한 문윤회 대표는 그룹의 전통적 사업기반인 건자재사업이 아닌 호텔 사업에 몸담고 있다. 하지만 최근 그가 이끄는 아주호텔앤리조트 계열의 호텔 상황은 여러모로 녹록지 않다.
서울 마포구의 라이즈호텔(법인명 아주호텔서교)은 최근 코로나19여파로 4월 중순부터 지금까지 두달간 임시휴업(6월 13일 영업재개) 중이다. 이 호텔은 1987년 아주그룹이 인수(당시이름 서교호텔)하며 호텔레저사업 진출을 알린 곳인데 2014년 3월부터 재건축을 위해 영업 중단했다가 재건축 완료 후 2018년 5월 라이즈호텔이란 이름으로 영업 재개했다. 문윤회 대표는 라이즈호텔에 해외유명 외식업체를 유치하는 등 공을 들였으나 실적 개선의 전환점을 마련하기도 전에 코로나19로 타격을 받고 있다.
제주 서귀포에 있는 더쇼어호텔제주(법인명 아주호텔제주)는 지난 4월30일을 마지막으로 영업을 종료하고 토지를 매각, 사실상 아주그룹의 손을 떠났다. 이 호텔은 아주그룹이 2000년 하얏트리젠시제주를 인수, 하얏트와 위탁경영 및 브랜드 제휴 계약을 맺은 곳인데 작년 9월 제휴계약 종료후 더쇼어호텔제주로 이름을 바꿔 운영했다. 그러나 간판을 바꿔단지 8개월 만에 문을 닫은 것이다.
아주호텔앤리조트의 2019년 연결감사보고서를 보면 자산 4851억원 중 부채가 3878억원에 달하며, 자본잠식 상태다. 종속회사인 아주호텔서교는 51억원, 아주호텔제주는 3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최근 미국 현지의 중형호텔을 연거푸 인수한 미국법인도 자산의 85%가 빚으로 이뤄져 있으며 지난해 적자를 냈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호텔업계 전반이 어려운 상황이긴 하지만 아주호텔앤리조트 계열의 저조한 수익성과 과도한 빚부담은 코로나19 이전부터 발생해온 것이다. 이 때문에 문윤회 대표의 경영능력에 의문부호를 다는 시각도 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아주글로벌의 덩치가 급속도로 커지면서 승계를 눈 앞에 두고 있는 3세. 그러나 자신의 본업인 호텔사업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면 대내외적 신뢰도에 흠집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 둘째 문재영 회장의 신아주그룹…아들은 수입차딜러사 대표
아주그룹 창업주의 둘째 문재영 회장은 신아주그룹을 이끌고 있다. 2013년 버스터미널·부동산임대업을 하는 ㈜신아주, 수입차딜러사 아우토플라츠 등을 가지고 계열 분리했다. ㈜신아주는 문태식 창업주가 1960년대 콘크리트 전신주 공장을 세웠던 서울 중랑구 부지를 활용해 1985년 문을 연 상봉버스터미널 운영사다. ㈜신아주의 본사도 상봉터미널(서울 중랑구 상봉동 83-1)에 있다.
상봉터미널은 경기동부지역과 강원도 노선에 특화돼 한때는 강원지역 전방부대에서 복무하는 군인과 면회객들의 애환이 담긴 곳이었으나 현재 상당수 노선이 줄어든 상황이다. 터미널운영 사업보단 재개발 이슈가 더 관심이다. 아우토플라츠는 서울 송파, 경기분당·판교·안양지역의 폭스바겐 딜러사이다.
신아주그룹은 문재영 회장이 ㈜신아주 지분 100%를 가지고 있으며, 문 회장의 아들 문경회(38)씨는 아우토플라츠 지분 68.3%를 가진 동시에 자신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2016년 문재영 회장이 아우토플라츠 지분을 아들에게 물려줬다. 현재 아우토플라츠의 나머지 지분(문재영 회장 14.8% 신아주 16.9%) 전량도 가족과 계열사 소유다. 이밖에 부동산개발업을 하는 아주디앤엠도 신아주그룹 계열이다.
문재영 회장이 이끄는 신아주 계열은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편이다. 다만 문재영 회장은 그룹 핵심이자 형(문규영 회장)이 최대주주인 아주산업의 2대주주(지분율 11.8%)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만 하다. 아주산업은 조카(문규영 회장의 장남 문윤희 대표)의 승계 대상이라고 볼 때 향후 가족 간 지분정리 과정에서 총수일가끼리 또 다른 교통정리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 셋째 문덕영 부회장의 AJ네트웍스도 3세 승계 중... 증여세 부담
아주그룹 창업주의 막내아들인 문덕영 AJ네트웍스 부회장은 2007년 렌탈업을 주력으로 하는 아주렌탈(현 AJ네트웍스), 렌터카사업을 하는 AJ렌터카, 냉장창고업 및 운송업을 주로 하는 아주코퍼레이션(현 AJ토탈) 등 3개사를 가지고 계열 분리했다. 이 가운데 AJ렌터카는 작년 1월 SK네트웍스에 매각했다.
문덕영 부회장 계열의 핵심회사는 AJ네트웍스다. 문 부회장은 2017년 4월, 2018년 12월 두차례에 걸쳐 자신이 보유한 AJ네트웍스 지분을 자녀 지회(33)·선우(29)씨에게 증여했다. 2017년 4월 340만주(207억원), 2018년 12월 562만주(242억원)씩 물려줬다.
이로써 현재 AJ네트웍스는 문덕영 부회장이 26.12%(1222만9145주)로 단일 최대주주이지만, 두 아들 지회(11.59%, 542만6035주)·선우(11.59%, 542만6030주)에게도 적지 않은 지분이 대물림되어 있는 상황이다. 두 자녀의 지분율 합계 23.18%는 아버지 지분의 절반에 육박한다.
관건은 증여세다. 문 부회장의 두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449억원어치 주식에서 최대 57%를 증여세로 내야한다. (관련기사) 이 때문에 두 아들의 지분 상당수는 연부연납(상속증여세를 장기에 걸쳐 나눠 내는 것)을 위해 세무서에 공탁돼 있으며, 지분율 훼손 없이 증여세를 마련하기 위해 증권사에 주식담보대출을 받고 있다.
문 부회장의 두 자녀는 지분승계에서는 사촌형(아주그룹 문윤회, 신아주 문경회)들보다 상대적으로 빠른 편이지만, 아직 계열사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