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상반기 [재계 3·4세]시즌1을 통해 17개 대기업 경영권 승계 과정과 자금출처, 경영능력을 분석했습니다. 같은해 하반기 시즌2에서는 우리나라 주요산업 중 가장 오랜 업력을 가진 제약업종의 승계과정을 15개 회사를 통해 들여다봤습니다.
시즌3의 주제는 건설·부동산입니다. 국토교통부가 2019년 7월 발표한 토목·건축 시공능력평가 50위내 건설사와 상위권 건설자재업체 가운데 2세 또는 3세 체제로 전환 중인 곳들을 살펴봅니다. 이들 회사의 창업주는 특정지역을 기반으로한 소규모 회사로 출발해 대기업계열 회사들과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며 보란 듯 전국구로 승격했습니다. 최근엔 주택시장 침체기의 돌파구로 골프장·리조트를 공격적으로 사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눈부신 성장의 이면에는 은둔형 기업이라는 오명, 계열회사끼리 일감몰아주기로 의심받는 사례 속출 등 어두운 모습도 있습니다. 같은 그룹 안에 oo건설, oo주택, oo개발처럼 비슷한 이름을 가진 소규모회사도 많은데요. 단순히 문어발식 확장 형태가 아니라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싼값에 토지를 확보해 이익을 남기기 위한 것이란 의혹도 받습니다. 중견건설사 지배구조분석을 통해 화려한 외형 그 이면을 들여다봅니다.[편집자]
"서희건설의 이진사댁에 딸이 셋 있는데~ 하나 둘 서희(셋을 뜻하는 지역방언)~“
이봉관(76) 회장이 직접 참여했다는 서희건설의 광고 배경음악은 이렇게 시작한다. 서희건설이란 사명이 탄생한 배경을 설명하는 동시에 앞으로의 후계구도를 엿볼 수 있다.
# 포스코 일감으로 시작…시공평가 100위→30위권 수직상승
2019년 시공능력평가 38위(평가액 1조696억원)의 서희건설은 1982년 운송업체 영대운수로 출발했다. 1994년 건설업으로 업종을 전환하며 회사 이름도 서희건설로 바꿨고, 이때부터 이봉관 회장이 대표이사를 맡았다.
포스코 운송출하부 차장 출신인 이봉관 회장의 이력 때문에 초기부터 서희건설은 포스코와 연관이 깊다. 건설업종 전환과 함께 포스코(당시 포항종합제철)의 토건보수작업 계약을 따내며 수주실적을 올렸다. 서희건설의 초창기 임원명단을 보면 포스코 출신들이 요직에 두루 포진했다. 1999년 임원명단을 보면 13명의 임원 중 7명이 포스코 출신일 정도였다. 2000년대 초반 사업보고서에서 일관되게 주요거래처는 포스코라고 밝혔고, 이러한 문구는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야 자취를 감췄다.
이봉관 회장과 포스코출신 임원들은 '친정' 포스코로부터의 안정적인 일감을 확보하며 사업 기반을 만들었다. 이후 대기업이 주력하지 않는 100억원 단위의 공사, 인천국제공항 배수구조물 공사 등 관급공사 수주에도 나섰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이 회장은 교회건축에도 주력해 강남교회 대광교회 서산순복음교회 안동교회 등 다수의 교회 공사를 담당했고, 전국 각지의 병원, 대학 민자 기숙사도 지었다.
이러한 다양한 일감을 바탕으로 2003년까지 100위권이었던 시공능력평가 순위는 2005년 80위, 2007년 65위, 2008년 53위, 2010년 40위로 수직 상승했고 2011년 35위로 30위권에 진입했다. 2009년에는 고속도로 휴게소·주유소 운영권을 따내며 안성맞춤, 함평나비 휴게소 등을 운영 중이다.
최근 서희건설의 주력사업은 지역주택조합 사업이다. '서희스타힐스'란 아파트브랜드를 앞세워 수도권은 물론 부산 경남 대전 경북 등 각지의 지역주택조합사업에 주력하고 있으며 자사 홈페이지 전면에 관련 내용을 등장시키고 있다.
# 이봉관 회장 세자녀 모두 경영참여...유성티엔에스가 서희건설 지배
이봉관 회장은 은희(48)·성희(46)·도희(39) 3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이 회장은 언론인터뷰에서 소설 '토지'의 주인공 최서희에서 착안, 딸들이 아들보다 더 강하게 자라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세 딸의 돌림자 '희'를 합쳐 '서희'란 회사이름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첫째와 둘째는 30대 초반부터 일찌감치 회사 경영에 참여해왔다. 이은희 부사장은 유성티엔에스와 서희건설에서 구매본부를 총괄한다. 둘째 이성희 전무는 두 회사에서 재무본부를 총괄한다.
가요 최진사댁 셋째딸에선 '가장 예쁘다'고 나오는 셋째 이도희씨는 그동안 회사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검사로 재직하며 독립 행보를 이어가다 올해 3월 유성티엔에스와 서희건설 정기주주총회에서 등기임원으로 선임돼 미래전략실장을 맡았다.
70대 후반에 접어든 아버지와 세 명의 딸이 동시에 경영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레 후계구도에서 관심이 모아진다. 다만 현재까지 세 자녀의 지분이 엇비슷하다는 점에서 후계구도가 명확하지 드러나진 않는다. 아직은 후계구도보다는 공고한 지배력 구축에 신경 쓰는 모양새다.
서희건설그룹 지분구조는 표면적으론 이봉관 회장 일가 → 유성티엔에스 → 서희건설 → 기타 계열사 순이다. 자산 4000억원 수준의 물류회사 유성티엔에스가 사실상 지주회사 노릇을 하며 자산 1조원을 웃도는 서희건설을 지배하는 구조다.
다만 이봉관 회장(8.68%)과 은희(4.35%) 성희(3.53) 도희(6.01%) 세 자녀의 유성티엔에스 지분을 모두 더해도 22.57%에 불과하다. 유성티엔에스의 시가총액(5월26일 기준 620억원)을 감안하면 불안한 지배력이다.
그러나 이 회장은 안전장치를 충분히 두고 있다. 다수의 비상장회사가 회장 일가 지배력을 뒷받침한다. 한일자산관리앤투자(18.85%) 애플디아이(3.30%) 이엔비하우징(0.82%) 3개 비상장사가 보유한 유성티엔에스 지분이 21.53%로 이 회장 일가 지분과 맞먹는다.(일부 지분은 상호출자로 실제 의결권은 없다.)
3개의 비상장회사 모두 이 회장 일가와 연관 있는 곳이며, 이 중 핵심은 한일자산관리앤투자다.
2005년 라이더솔루션이란 이름으로 만들어진 이 회사는 서울 서초구 서희타워에 본점을 두고 건물관리사업을 한다. 서희에셋에서 애플트리디앤아이를 거쳐 지금의 한일자산관리앤투자로 이름을 바꿨다. 이 회사는 2013년 유성티엔에스 지분 0.17%를 매입한 이후 지속적으로 지분을 늘려 최근 18.85%(4월22일 기준)까지 도달했다. 이봉관 회장의 개인 지분(8.68%)보다 두 배 이상 많다.
한일자산관리앤투자는 2014년까지 이은희(40%) 이봉관(30%) 이성희(30%) 등 회장 일가 지분이 100%였던 곳이지만, 2015년 유상증자로 서희건설이 지분 50.4%를 확보했다. 나머지 지분은 여전히 회장 일가의 몫이다.
유성티엔에스 지분 3.30%를 보유한 애플디아이는 유성티엔에스가 50.82%, 이은희 34.43%, 이성희 14.75%를 가진 회사다. 2015년 편의점 로그인을 인수해 운영 중이다. 이엔비하우징도 이 회장 일가 지분이 48.98%이다. 애플이엔씨란 회사도 유성티엔에스의 잠재 지분인 전환사채를 보유 중인데 장녀 이은희 부사장(35%)이 최대주주이며, 다른 지분도 회장일가가 모두 가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봉관 회장 일가의 개인 회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유성티엔에스 지배력을 뒷받침한다. 뿐만 아니라 언제든 경영권 방어용으로 갈아탈 수 있는 자사주도 13.1% 있다. 자사주를 제외한 유성티엔에스 유통주식 중 56%를 회장 일가와 개인회사가 보유해 나름 탄탄한 성벽을 쌓아두고 있는 셈이다.
# 현금 있는데 CB 돌려막기…회장일가 이자수입+지분확보
서희건설그룹 승계에서 전환사채(CB)도 중요한 축이다. 전환사채는 채권처럼 이자와 만기가 정해져있으면서 일정기간이 지나면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성격이다. 전환사채 보유자는 안정적인 이자수입과 함께 주식전환시 차익을 거둘 수 있다.
유성티엔에스는 유독 회장일가를 대상으로 사모(私募)방식의 전환사채를 자주 발행했다. 지배력 유지와 연관 지을 수 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26일(납입일 기준) 140억원어치 사모 전환사채를 발행했다. 사채 인수자는 한일자산관리앤투자(100억원) 이봉관 회장(20억원) 은희(8억원)·성희(6억5000만원)·도희(5억5000만원) 등 회장 일가와 개인회사다. 유성티엔에스가 전환사채를 발행한 이유는 3년 전 발행한 전환사채를 갚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3년 전에도 이 회장 일가와 한일자산관리앤투자가 같은 금액으로 투자했다. 따라서 이들은 3년 전 인수한 사채를 만기까지 보유하면서 연복리 5%(만기이자율) 수준의 이자수익을 거머쥔 동시에 새로운 전환사채권리를 보유하게 된 것이다.
이 회장 일가는 2018년 7월에도 연복리 4.5%(만기이자율)의 전환사채 100억원어치를 인수했는데 내년 7월 만기다. 이 역시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고 만기 보유한다면 같은 방식으로 이자수입을 얻으면서 새로운 사채 권리를 보유한다.
이러한 방법은 회장 일가가 안정적인 이자수입으로 현금을 확보하면서, 기업가치 상승 또는 유사시 경영권분쟁으로 주가가 오를 경우 시세보다 싼값이 지분을 대량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다. 어느 쪽이든 손해 보지 않는다.
반면 유성티엔에스 주주 입장에선 복잡하다. 당장 회사 금고에서 전환사채 상환자금이 빠져나가지 않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비슷한 물량의 전환사채가 계속 살아있다는 점에서 잠재적 물량부담이 늘 따라다니며 주가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유성티엔에스의 올해 1분기 말 기준 현금성자산은 397억원으로 최근 만기가 돌아온 전환사채를 돌려막지 않고 정상 상환할 여력이 있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사채 발행 방식은 이봉관 회장 일가의 지배력 유지, 특히 2세 승계와 개연성이 짙어 보인다.
이봉관 회장과 세 자녀, 한일자산관리앤투자 등 개인회사가 보유한 유성티엔에스 지분 합계는 48.23%이지만, 이들이 보유한 전환사채권을 모두 주식으로 바꾸면 62.50%까지 올라간다.
주력계열사 서희건설을 둘러싼 지분관계도 유성티엔에스의 '판박이'다. 이봉관 회장 일가의 부족한 지분율을 계열사가 보완해주는 동시에 회장일가를 대상으로한 사모 전환사채 발행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 복잡하고 보기드문 출자구조... 2세 승계대비 정리 나설 듯
서희건설그룹 지분구조는 이봉관 회장 일가→유성티엔에스→서희건설로 이어지는 흐름이 큰 줄기이지만, 계열사 간 지분관계를 더 들여다보면 복잡한 출자구도를 가지고 있다.
유성티엔에스(26.18%) → 서희건설(50.4%) → 한일자산관리앤투자(18.85%) → 유성티엔에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가 존재하고, 유성티엔에스(50.82%) → 애플디아이(2.08%) → 서희건설(2.70%) → 유성티엔에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도 있다.
뿐만 아니라 유성티엔에스-서희건설(26.18% ↔ 2.70%), 서희건설-한일자산관리앤투자(50.4% ↔ 2.03%), 유성티엔에스-이엔비하우징(51.02% ↔ 0.82%), 유성티엔에스-애플디아이(50.82% ↔ 3.30%) 사이에 상호출자도 존재한다.
서희건설그룹은 상호출자제한집단은 아니어서 이러한 출자가 위법은 아니다. 그러나 상법(369조)은 A회사가 B회사 지분을 10% 이상 가지고 있을 때 B회사가 거꾸로 보유한 A회사 지분의 의결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서희건설그룹에서 나타나는 다수의 상호출자는 한쪽 의결권이 상실하는 구조인데도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는 보기드문 출자관계다.
이런 지분관계는 향후 2세 승계와 맞물려 정리 작업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복잡한 출자관계의 중심에 놓여있는 상장사 유성티엔에스, 서희건설은 물론 비상장회사(한일자산관리앤투자, 이엔비하우징, 애플디아이)는 모두 이봉관 회장과 세 자녀들이 지분을 소유한 회사라는 점에서 향후 회장 일가의 지분 매입 또는 합병 방식으로 정리가 이뤄질 가능성이 점쳐진다. 서희건설 관계자도 "(순환·상호출자는) 향후 지분 정리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