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상반기 [재계 3·4세]시즌1을 통해 17개 대기업 경영권 승계 과정과 자금출처, 경영능력을 분석했습니다. 같은해 하반기 시즌2에서는 우리나라 주요산업 중 가장 오랜 업력을 가진 제약업종의 승계과정을 15개 회사를 통해 들여다봤습니다.
이번 시즌3의 주제는 건설·부동산입니다. 국토교통부가 올해 7월 발표한 토목·건축 시공능력평가 50위내 건설사와 상위권 건설자재업체 가운데 2세 또는 3세 체제로 전환 중인 곳들을 살펴봅니다. 이들 회사의 창업주는 특정지역을 기반으로한 소규모 회사로 출발해 대기업계열 회사들과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며 보란 듯 전국구로 승격했습니다. 최근엔 주택시장 침체기의 돌파구로 골프장·리조트를 공격적으로 사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눈부신 성장의 이면에는 은둔형 기업이라는 오명, 계열회사끼리 일감몰아주기로 의심받는 사례 속출 등 어두운 모습도 있습니다. 같은 그룹 안에 oo건설, oo주택, oo개발처럼 비슷한 이름을 가진 소규모회사도 많은데요. 단순히 문어발식 확장 형태가 아니라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싼값에 토지를 확보해 이익을 남기기 위한 것이란 의혹도 받습니다. 중견건설사 지배구조분석을 통해 화려한 외형 그 이면을 들여다봅니다.[편집자]
올해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토목건축 시공능력평가 35위(평가액 1조2347억원)를 기록한 우미건설은 중견건설사 가운데 2세 승계를 비교적 일찍 마무리한 곳이다. 창업주 이광래(86) 회장과 이 회장의 장남 이석준(56) 사장의 나이를 감안하면 당연한 수순이기도 하다. 20년 전인 2000년부터 우미건설 대표이사를 맡아온 이석준 사장은 '땅 투자'에 집중하는 다른 중견건설사들과 달리 프롭테크(Prop-tech: IT기술을 결합한 부동산서비스 산업)와 같은 신사업 투자를 활발하게 진행하며 관심을 받는다.
# 경영권·지분승계·새브랜드 출발까지…다사다난했던 2006년
우미건설의 역사는 1982년 삼진맨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남 강진 출신으로 18년간 직업군인 복무를 마치고 예편한 이광래 회장이 40살이 되던 해에 시작한 사업이다. 삼진맨션으로 소규모 주택사업을 하던 이 회장은 1989년 우미산업개발, 1991년 우미주택(현 우미건설), 1993년 선우개발(현 우미개발)을 잇따라 만들며 회사 규모를 키웠다. 현존하는 우미건설 계열사의 뼈대가 만들어진 건 1990년 전후인 셈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승진이나 자녀학업 등에 신경 쓸 나이 마흔에 새로운 사업에 뛰어든 이 회장은 2세 승계 작업도 주저하지 않고 속도를 냈다. 이 회장의 장남 이석준 현 우미건설 사장은 서른 살이 되던 1993년 LG산전 연구원 자리를 관두고 우미건설 기획실장으로 입사해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2000년에는 우미건설 대표이사 부사장에 오르며 본격적으로 경영 일선에 등장했다.
이 무렵 우미건설은 주식시장 상장을 추진하기도 했다. 지역건설사에서 벗어나기 위해 본사를 경기도 수원으로 옮기며 본격적인 수도권 진출을 도모하던 시기다. 당시 상장 추진 배경에는 이광래 회장과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의 인연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2004년 상장 절차를 중단했고, 대신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단행했다.
계열사 감사보고서와 우미건설 상장추진 당시 자료를 종합하면, 우미건설 계열 지분구조는 1990년대 후반부터 이광래 회장→ 우미개발→ 우미건설이라는 기본 틀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창업주 이광래 회장이 정점에 있는 형태여서 2세 승계를 위해서는 지분을 증여하거나 별도의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해야했다.
지배구조에 의미 있는 변화가 생긴 건 2006년이다. 이광래 회장이 자신이 보유한 우미개발 지분을 심우산업개발이란 회사에 증여했고, 그 결과 심우산업개발→ 우미개발→ 우미건설이란 새로운 지분 고리가 만들어졌다.
심우산업개발은 이석준 사장 등 이 회장 자녀들이 지분을 보유한 회사여서 결과적으로 이석준 사장 등 2세→ 심우산업개발→ 우미개발→ 우미건설로 이어지는 흐름이 생겨난 것이다. 이 회장이 자녀들에게 직접 지분을 증여하진 않았지만 자녀들이 대주주로 있는 법인에 지분을 넘겨 간접적으로 지분 승계를 한 셈이다.
이러한 지배구조 개편이 이뤄진 2006년은 이석준 당시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했고, 우미건설이 기존 주택브랜드 '이노스빌' 대신 새로운 '린(Lynn)' 브랜드를 런칭한 시기이기도 하다.
종합하면 2006년은 창업주 이광래 회장에서 2세 이석준 사장으로의 경영권·지분 승계가 전환점을 맞은 동시에 새로운 브랜드 출발까지 알린 해이다. 2006년 당시 이광래 회장과 이석준 사장의 나이는 각각 73세, 43세였다. 창업주 나이 80세에 접어든 상황에서도 승계구도를 가늠하기 어려운 다른 중견건설사와 비교하면 더 늦지 않은 타이밍에 승계를 매듭지은 것이다. ☞관련기사 [재계3·4세 시즌3]②부영, 이중근 독보적 1인지배…'롯데의 그림자']
2006년을 기점으로 계열 지분구조의 꼭대기에 올라선 심우산업개발은 우미개발 지분을 더 늘렸고, 이후 우심산업개발로 이름을 바꿨다. 2018년 10월에는 우미개발 등 계열사 지분을 보유한 '투자사업부문'을 인적분할한 지주회사 우심홀딩스로 변신했다.
그 결과 지금의 이석준 사장→ 우심홀딩스→ 우미개발→ 우미건설로 이어지는 핵심 지분고리가 자리잡게 됐다.
# 2세 삼남매 승계 원칙…장남이 지분 '절반 이상'
현재 지주회사 우심홀딩스는 이석준 사장이 지분 54.9%를 가진 최대주주이며 이 사장의 여동생 이혜영(54) 우미건설 상품개발실장이 18%, 남동생 이석일(51)씨가 24%를 각각 보유중이다. 이 비율은 우미건설 2세 승계 원칙을 보여주는 숫자이기도 하다. 삼남매의 지분을 합쳐보면 장남 이석준 사장이 과반 이상인 반면 두 동생들은 지분을 합쳐도 이 사장의 지분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다.
우심홀딩스 뿐 아니라 우미건설 주주구성도 그렇다. 이석준 사장(9.17%) 지분이 이혜영 실장(4%)과 이석일씨(4.17%) 지분 합계보다 많다. 지주회사 우심홀딩스와 핵심사업회사 우미건설의 주주명부에 창업주 2세들이 나란히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장남 중심의 승계원칙이 자리 잡혀 있는 것이다.
창업주 이광래 회장은 현재 우미개발 지분(3.79%)을 제외하면 계열사 주주명부에서 모두 이름이 빠져있다. 장남에게 경영권·지분 승계 작업을 했던 2006년 금파재단이란 공익법인을 만들어 잔여 지분을 넘겼다. 금파재단은 현재 우심홀딩스(3%) 우미개발(9.31%) 우미건설(10%) 등 계열사 지분을 자산으로 보유한 가운데 국가유공자 노후주택 보수공사, 장학금 사업을 하고 있다. 군인 출신의 자수성가형 사업가 이광래 회장의 이력을 보여주는 공익활동이다.
이석준 사장의 남동생 이석일 씨는 한때 우미개발 등기임원에 이름 올리기도 했으나 지금은 계열사에 근무하지 않는다. 대신 선우이엔씨라는 회사의 지분 46%를 가진 최대주주다. 형 이석준 사장도 같은회사 지분 35.6%를 가지고 있지만, 우심홀딩스와 우미건설에 적용한 '장남 중심'의 지분구도를 따르지 않고 차남이 1대주주란 점은 형제 분할구도와 연관지어볼 수 있다.
2002년 만들어진 부동산시행사 선우이엔씨는 지난해 매출 790억원 영업이익 171억원을 올렸다. 사업 특성상 우미건설 등 계열사와의 거래가 있고, 계열사로부터 지급보증도 받는다.
# '전자공학도' 이석준 사장…'어결땅' 대신 IT접목 신사업
우미건설 계열사 가운데 우미글로벌이란 회사가 최근 주목받는다. 계열 지배구조의 꼭대기에 있는 우심홀딩스와 한 몸이었다가 2018년 10월 투자사업부문이 홀딩스로 떨어져나가고 남은 회사다. 당시 인적분할 방식으로 쪼개진 회사여서 주주구성은 우심홀딩스와 같다. 이석준 사장(54.9%) 이혜영 실장(18%) 이석일씨(24%) 등 삼남매가 대주주다.
이 회사는 최근 부동산중개플랫폼 '직방', P2P(개인 간 거래) 금융 플랫폼 테라펀딩을 운영하는 '테리핀테크', 3D 공간데이터 플랫폼 '어반베이스', 부동산 관련 핀테크기업 '카사코리아' , 3D 디지털 트윈 제작기술을 가진 '큐픽스', 1인가구 타깃 공유주택사업을 하는 '미스터홈즈'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투자 기업의 면면을 보면 우미건설의 전통적 사업영역인 부동산과 관련이 있으면서 IT 또는 공유경제를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이다.
우미글로벌은 부동산 관련 자산운용사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최근 부동산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이지스자산운용 유상증자에 참여, 400억원이 넘는 자금을 투자했다. 단순한 재무적 투자를 넘어 '미래의 일감'인 시공 수주 확보까지 겨냥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그동안 부영·호반·중흥 등 많은 자수성가형 중견건설사들이 호황기에 쌓아둔 현금으로 투자한 대상이 리조트·골프장과 같은 '어결땅'(어차피 결론은 땅)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미글로벌의 이러한 투자 행보는 분명 결이 다른 노선이다.
이러한 투자노선의 배경에는 서울대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이석준 사장의 철학이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사장은 직방 안성우 대표, 피데스개발 김승배 사장 등과 함께 한국프롭테크포럼을 주도적으로 만든 인물이다. 다른 중견건설사 2세들과 달리 일찌감치 경영권과 지분 승계를 마무리한 이 사장이 신사업 투자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 수 있을지 관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