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청약에도 일종의 '장외 거래'가 있는 걸 아시나요?
요즘 서울이나 주요 수도권 지역은 아파트 청약 당첨이 바늘구멍 통과하기 수준인데요. 청약시장 밖에서도 분양권을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분양권 전매 등 불법 거래 말고요.
'아파트 보류지' 얘기인데요. 입주 시점 전후에 매각하는 물량이라 일반분양 가격보다는 훨씬 비싸지만 청약통장도 필요없고 다주택자도 살 수 있다는 점에서 꾸준히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주택 수요자라면 솔깃할만한 제도인데요. 과연 보류지를 통해 내집마련을 할 수 있을까요?
아파트 보류지? 일종의 분양사업 '보험'
아파트 보류지는 일반분양이나 조합 소유로 나누지 않고 여분으로 남겨놓은 물량을 말합니다. 조합원 수 누락 및 착오가 발생하거나 입주예정자와의 분쟁 등에 대비하기 위해 유보해 놓은 건데요.
서울의 경우 '서울시 도시 및 주건환경정비조례'에 따라 공동주택 총 건립 세대수의 1% 범위로 보류지를 정할 수 있습니다. 가령 아파트가 3000가구라면 30가구 내로 물량을 남겨놓을 수 있는데요.
주택법 시행령에 따라 30가구 이상 보류지는 사업계획 승인을 받고 청약 형식으로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보류지는 최대 29가구를 넘지 않는 게 일반적입니다. 실제론 1%도 안 되는 극소수 물량만 남겨놓는 경우가 더 많고요.
보류지 매각은 입주 전후로 하기 때문에 일반분양가보다는 훨씬 비싸지만 주변 시세보단 저렴하게 이뤄집니다. 최저 입찰가격은 정해져 있고요. 입찰 당일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르는 사람이 구매할 수 있는 경쟁 입찰 방식입니다.
서울의 경우 재개발·재건축 클린업시스템에 접속하면 '조합입찰공고' 메뉴에서 보류지 매각 공고를 확인할 수 있는데요. 매각 대상 타입, 동, 호수, 최저 입찰가격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 19세 이상이면 청약통장이 없거나 다주택자여도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청약 가점이 낮은 사람도, 유주택자여서 청약 자격이 안 되는 사람도 분양권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셈이죠.
조합은 보류지를 일종의 보험 장치로서 활용합니다.
보류지 성격 자체가 '만약'을 대비한 물량이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사업비 충당에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두드러집니다.
'래미안원베일리'(신반포3차·경남아파트 재건축)의 경우 지난 2018년 최초 관리처분인가 때만 해도 보류지 물량이 전혀 없었는데요. 2019년 분양가 규제를 피하고자 시도했던 일반분양분 통매각이 불발되자 일부 물량(29가구)을 보류지로 돌렸습니다. 보류지 매각을 통해 사업비를 충당하기 위해서죠.
보류지 물량을 특별분양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단지 홍보효과를 높이기 위해 연예인이나 유명인사 등에 보류지 일부 물량을 일반분양가로 제공하는 식입니다.
청약 대신 보류지? 결국 '현금부자'만…
서울에선 새 아파트가 귀해지면서 아파트 보류지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신규 분양 물량이 부족한 데다 분양가 규제로 인해 '로또 분양'이 기대되면서 청약 경쟁이 심화해 청약 당첨이 '하늘에 별 따기' 수준이거든요.
실제로 부동산114가 청약홈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서울 아파트 1순위 평균 청약 경쟁률은 지난 1년간(지난해 5월~올해 4월) 94.1대 1을 기록했습니다. 올해 서울 분양 아파트의 평균 당첨 가점은 67.17점에 달하고요.
보류지 아파트가 수요자들의 틈새 투자처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인데요. 그렇다고 보류지를 품에 안는 게 쉽진 않습니다.
보류지는 보통 입주 시점에 나오기 때문에 자금 납부 기간이 통상 1~2개월로 짧거든요. 당연히 중도금 대출도 안 되고요. 최저 입찰가가 시세보다 저렴하다고 해도 일반분양가의 두 배를 넘기도 합니다. 입찰 경쟁이기 때문에 최저 입찰가보다도 높은 금액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자금 여력이 있는 '현금 부자'만이 입찰받을 수 있는 셈이죠.
그래서 입찰 가격이 높을 경우 주인을 찾지 못하는 사례도 종종 나옵니다.
강동구 '고덕롯데캐슬베네루체'는 지난 1월 보류지 5가구 매각을 진행했지만 응찰자가 나오지 않아 유찰된 바 있습니다. 전용 59㎡의 최소 입찰 가격이 12억5000만원으로 당시 실거래가보다 높았거든요. 지난해 12월 중순 거래된 이 아파트의 전용 59㎡ 11억4000만~12억2000만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인기 단지의 경우 보류지 수요가 높습니다. 청약처럼 '로또' 수준은 아니지만 일단 매입해놓으면 향후 집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 때문이죠.
일반분양가가 9억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원베일리만 해도 내달 분양을 앞두고 각종 부동산 커뮤니티에 보류지 문의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원베일리는 일반분양은 전용 46~74㎡의 중소형 물량만 공급되는데요. 보류지는 59~200㎡로 구성돼 중대형 평형을 원하는 수요자 중 일부는 보류지를 노리는 분위기입니다. 인근의 '래미안퍼스티지' 전용 84㎡가 이달 32억원(19층)에 거래된 걸 감안하면 같은 평형의 원베일리 보류지도 30억원 전후에 입찰될 것으로 추정되기도 합니다. 아, 입주 시점(2023년 예정) 입찰땐 가격이 더 오를 수도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