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장은 2013년 조세포탈·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2016년 광복절 특사로 사면되기까지 4년여 동안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다. 그 4년은 CJ그룹에도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사업은 정체를 면치 못했고, 인수·합병(M&A)은 실패로 돌아갔다. 오너가 부재했던 탓이다. 하지만 이 회장이 복귀하고 1년이 지난 지금 CJ그룹은 말 그대로 환골탈태했다.
◇ 잃어버린 4년
실제로 이 회장이 자리를 비웠던 2013년부터 작년 4월까지 4년간 CJ그룹은 정체를 거듭했다. CJ그룹 고위 관계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며 "사업 확장은 물론 중요한 의사 결정의 막바지 단계에서 늘 좌절해야만 했다"고 회고했다. 오너십 부재와 함께 CJ그룹도 고통의 시간을 보낸 셈이다.
CJ그룹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는지는 수치를 보면 더욱 명확히 알 수 있다. 지난 2011년 CJ그룹의 매출은 22조8000억원이었다. 2012년에는 26조8000억원으로 올라간다. 하지만 이 회장이 부재했던 2013년부터 2015년까지는 25조원에서 29조원 사이를 맴돌며 정체기를 겪었다. 2016년 처음으로 30조원을 돌파했지만 속도는 더뎠다.
▲ 단위 : 조원. |
같은 기간 CJ그룹의 투자액 추이도 이런 상황을 정확히 대변한다. 2012년 2조9000억원에 달했던 투자액은 이후 계속 줄어들며 2015년에는 1조7000억원까지 떨어졌다. 사업이 정체되다 보니 투자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 CJ그룹은 각종 대형 M&A에도 나섰지만 끝까지 완주해 성공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 회장의 부재는 곧 구심점이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CJ그룹은 그룹이 중심에 서서 계열사를 진두지휘하지 못하고, 각 계열사별로 생존에 매달려야 했다. 잘 되는 사업은 그룹이 밀어주고, 안되는 사업은 과감히 접어야 했지만 이도저도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 이어졌다. 이에 따라 조직원들의 피로도도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 확 달라졌다
하지만 작년 5월 이 회장이 경영 복귀를 선언한 후 CJ그룹은 거짓말처럼 달라졌다. 이 회장의 복귀와 동시에 그룹의 근간인 CJ제일제당에 9000억원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어 해외 식품업체들을 잇달아 인수하는 등 공격적인 행보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글로벌 식품업체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을 차근히 실현하는 중이다.
이 회장 부재 시에도 그나마 제 역할을 해왔던 CJ대한통운도 이 회장의 복귀와 함께 더욱 힘을 받기 시작했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거점 확보 작업을 끝내고, 이제는 유럽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 3월 러시아 페스코(FESCO)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시베리아 철도를 이용한 물류사업을 준비 중이다. 아시아와 유럽을 거쳐 궁극적으로는 글로벌 물류 네트워크를 완성하겠다는 것이 CJ대한통운의 구상이다.
▲ 작년 5월 17일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수원 광교에 위치한 CJ블로썸파크 개관식에 참석, 경영 복귀를 선언했다. (사진=이명근 기자/qwe123@) |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CJ헬스케어를 매각했다. 이 회장 부재 시에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CJ그룹은 CJ헬스케어 매각과 함께 사업 포트폴리오를 식품과 바이오, 물류, 엔터테인먼트의 4개 사업군으로 명확히 분류해 집중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실제로 지난해 CJ그룹의 투자액은 2조8700억원으로 전년보다 44.3%나 증가했다. 그동안 정체됐던 CJ그룹의 사업들이 활력을 되찾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CJ그룹의 변신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작년 말 '삼각합병' 방식을 통해 지배구조도 개선했다. CJ제일제당과 CJ대한통운을 지주사인 CJ㈜ 밑에 일렬로 세워 지주사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구조를 완성했다. 이 회장을 중심으로 지주사가 그룹의 전체 사업을 종합적으로 컨트롤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 새로운 도전
CJ그룹은 이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이 회장이 천명한 '2020년 그레이트 CJ'와 '2030년 월드베스트 CJ'에 오르기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특히 최근 발상의 전환을 통한 신시장 개척에 나섰다. 홈쇼핑 업체인 CJ오쇼핑과 엔터테인먼트 업체인 CJ E&M의 합병이 대표적인 사례다. 다소 어색해 보이는 이 조합에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CJ그룹의 복안이 담겨있다.
CJ그룹은 국내 사업에서 압도적인 1위를 굳히고,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다는 명확한 그림을 가지고 있다. CJ오쇼핑은 국내 1위 홈쇼핑 업체다. 하지만 국내 홈쇼핑 시장은 이미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성장세가 꺾인 상황이다. 따라서 CJ오쇼핑이 가진 커머스 역량에 CJ E&M이 가진 독보적인 콘텐츠를 탑재해 '융복합 콘텐츠 커머스 기업'이란 새로운 모델로 국내외에서 신시장을 개척하겠다는 승부수를 던졌다.
CJ그룹은 최근 합병 법인의 사명을 CJ ENM으로 정했다. 'Entertainment and Merchandising'의 약자다. CJ ENM은 향후 CJ오쇼핑이 보유한 1000만 명의 구매 고객과 CJ E&M이 보유한 5000만 명의 시청자를 결합해 시너지를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CJ오쇼핑과 CJ E&M이 각기 보유한 해외 거점도 십분 활용할 예정이다. 시장에서도 여러모로 시너지가 날 수 있는 구조를 갖췄다고 보고있다.
업계 관계자는 "확실히 이 회장 복귀 후 CJ의 행보가 빨라진 것이 사실"이라며 "최근 CJ오쇼핑과 CJ E&M의 합병과 같은 이종(異種) 사업간 통합은 다분히 CJ다운 새로운 발상이며, 만일 이 회장이 없었다면 이런 시도는 시작조차 못 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