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는 건너 뛰는 거라고 배웠다. 우리 물건 좋다고, 우리 상품 좀 사달라고 하는 뻔한 메시지를 인내심 있게 지켜보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이제 겨우 옹알이를 하는 아기들도 휴대전화로 영상을 볼 때면 광고 건너뛰기 버튼을 누르곤 하는 세상이다. 광고 건너뛰기는 어쩌면 본능이다.
그냥 눈으로 보기만 하면 되는 영상 광고도 그러한데, 하물며 텍스트 광고는 더더욱 기피 대상이다. 무언가를 읽는다는 것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이 에너지를 뻔한 광고 텍스트를 읽는 데 쏟을 필요는 없다는 걸 누구나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인터넷 세상에는 광고 말고도 읽을 게 널리지 않았는가. 이 기사 역시 언제든 '건너뛰기' 당할 수 있는, 텍스트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래서 기업들은 건너 뛰지 않을 만한 광고를 만드는 데 사활을 건다. 소비자들의 '광고 건너뛰기' 본능을 극복하는 게 기업들의 지상과제다. 때로는 거액을 들여 슈퍼스타를 모셔오기도 하고, 때로는 일부러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고, 또 때로는 소비자들이 포복절도할 만한 유머 코드를 심어 놓기도 하며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광고를 건너 뛰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 개설된 한 '광고 계정'이 핫하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요즘 기업들이 젊은 층 소비자들을 잡기 위해 자주 활용하는 'B급 감성'을 내세워 주목받는다는 소식이다. 홈플러스가 창고형 온라인몰을 표방해 만든 '더클럽'이라는 서비스를 홍보하는 계정이라는데, 재미있어봐야 얼마나 재미있겠냐고 생각했다. 핫하다는 소식마저 '홍보'가 아닐까 하는 의심부터 들었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일단 인스타그램이라는 플랫폼의 특성에 맞게 '예쁜' 이미지부터 눈길을 끌었다. 여기에 더해 더클럽에서 판매하는 상품을 광고하는 텍스트는 중독성이 있었다. 스토리 자체가 재미있기도 하지만, 넘쳐나는 센스에 박수를 쳐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댓글의 반응도 딱 그랬다. 운영자의 글솜씨가 '어나더 레벨'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심지어 친구들을 태그해 이 글 좀 읽어보라며 소환하는 댓글이 줄줄이 달린다. 건너뛰라고 있는 광고 세상의 일반 법칙을 거스르고 있는 셈이다.
이 정도면 단순히 B급 마케팅으로 소비자들을 끌고 있다고만은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상의 비결이 있으리라. 요즘 유행하는 말로 B급 마케팅을 묻고 더블로 가는 이 계정을 만들고 있는 이를 인터뷰했다.
◇ 이제 입사 1년…"관심 매우 환영, 기회 준 회사에 감사"
홈플러스 더클럽을 홍보하는 계정의 이름은 '소비패턴'이다. 이 계정을 운영하는 이는 놀랍게도 입사한 지 1년밖에 안 된 사원이다. 바로 안성호 홈플러스 모바일마케팅팀 주임이 그 주인공이다.
요즘 많은 기업들이 젊은 사원들에게 SNS 운영 등을 맡기고 있긴 하다. 그러나 입사 1년도 안 된 사원에게 전권을 맡긴 건 그야말로 '파격'이라고 할 수 있다. 혹여 젊은 패기에 실수라도 하면 어쩔 것인가. 또 젊은 직원이 처음부터 너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안 주임은 본인을 '관종'(관심받기 좋아하는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이라고 소개하며 이런 우려를 기우로 만들었다. 그는 "인스타그램 마케팅 업무를 하다 보니 '관종'이 되더라"며 "관심은 매우 환영"이라며 웃어 보였다.
그는 다만 '신입사원'답게 겸손의 자세를 잃지 않았다. 안 주임은 "마케터로서 재미있는 광고를 만드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과분한 주목을 받는 것 같아 겸연쩍은 마음도 든다"라며 "더 고생하는 동료들에 비해 유독 주목받는 것도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동료분들을 더욱 빛내드릴 수 있도록 인스타그램 업무를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이 든다"고 덧붙였다.
안 주임은 대학 때 광고홍보학과를 전공했다. 지금 하는 업무는 본인이 꿈꾸던 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홈플러스 같은 대기업에서 이렇게 빨리 '획기적인' 마케팅 업무를 할 줄은 몰랐다. 그래서 그는 지금 일에 "매우 만족한다"라고 강조했다. 안 주임은 "선뜻 기회를 준 회사 덕분에 하고 싶었던 업무를 할 기회를 얻어 기쁘다"라며 "회사를 위해 더 잘해보고 싶다"라고 했다.
안 주임은 얼마 전 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임일순 사장님께서 '홈플러스 인스타그램을 이렇게 운영하면서 젊은 고객들과 소통할 수 있구나'하는 새로운 발견과 감동을 얻으셨다고 말씀해주셨다"라며 "담당자로서 매우 보람 있었다"라고 전했다.
◇ "인스타그램 다운 콘텐츠로 밀레니얼 세대 공략"
그렇다면 '소비패턴'이라는 계정은 어떻게 탄생하게 됐을까. 또 어떤 비결이 있길래 이토록 핫할 수 있을까. 그에게 조심스럽게 '영업기밀'을 물었다.
홈플러스가 이런 계정을 만든 건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먼저 '인스타그램'이라는 플랫폼을 선택했다. 안 주임은 "요즘 트렌디한 사람 치고 인스타그램 안 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래서 인스타그램을 제대로 운영해보는 것이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스타그램을 제대로 하려면 '인스타그램 다운'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이미지가 근사해야 하고 스토리는 개인적이어야 하며 소통은 솔직할 것, 무엇보다 단순히 평범한 광고 내용을 답습하는 기존의 여러 기업 SNS들과는 완벽히 차별화된, 독특하고 일관된 콘셉트를 가질 것을 철칙으로 세웠다"라고 말했다.
안 주임은 이를 실현시킬만한 광고대행사를 찾아 나섰고, '스튜디오좋'이라는 곳을 선택했다. 그는 "스튜디오좋을 어렵게 찾아 삼고초려했다"면서 "이후 치열한 토론과 스터디를 거쳐 아이디어를 만들어 나갔다"라고 소개했다.
이어 "그 결과가 바로 소비패턴 계정"이라며 "소비패턴은 온라인 창고형 마트인 '홈플러스 더클럽'의 물성적 특성과 딱 맞고, 이미지로 만들었을 때 결과물 하나하나가 눈길을 끈다"면서 "피드가 아주 일관되고 멋지게 나와 이거야말로 가장 인스타그램다운 콘셉트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소비패턴 계정에서 볼 수 있는 센스 넘치는 글의 경우 단순히 누군가의 글재주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안 주임과 스튜디오좋의 실무진들이 머리를 싸매고 만든 결과물이다. 안 주임은 "저희 계정의 필자는 여러 명"이라며 "모두가 치열하게 아이디어를 찾아오기 때문에 굉장히 다양한 원천에서 영감을 얻는다"라고 했다.
텍스트에 대한 원칙은 확고하다. 그는 "서로 꼼꼼한 피드백을 통해 글을 완성도 높게 다듬는 작업을 거친다"면서 "이야기도 재미있어야 하지만 상품과 관련된 내용에 오류가 없어야 하고 저희의 '톤 앤 매너'에도 잘 맞아야 하기 때문에 꼼꼼하게 챙겨야 할 부분이 굉장히 많다"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는 글의 재미뿐 아니라 내용을 올바르고 일관되게 만들겠다는 원칙 속에서 텍스트를 만들고 있다. 안 주임은 "내용에 오류가 없어야 하고, 혐오의 언어나 비하가 없도록 철저하게 검수한다"면서 "또 고객이 우리 계정을 꾸준히 보고 싶어 하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일관된 콘셉트와 퀄리티를 고수하고자 한다"라고 강조했다.
◇ "더 다양한 콘텐츠 고민…유튜브 기회도 보고 있어"
소비패턴 계정에는 게시물에 따라 적게는 수십 개에서 많게는 천 개가 넘는 댓글이 달린다. 워낙 반응이 좋다 보니 안 주임은 앞으로 고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콘텐츠 등 다양한 방식의 마케팅을 구상하고 있다.
그는 "인스타그램에서 SNS의 가능성을 확인한 만큼 더 다양한 채널과 콘텐츠로 고객과 소통하고자 한다"면서 "요즘 정말 '핫'한 유튜브에서 기회도 보고 있고, 또 인스타그램에서 더 다양한 방식의 콘텐츠도 고민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처럼 막중한 책임을 의연하게 안고 있는 안 주임이지만 그는 사실 이제 겨우 신입사원 테를 벗은 직장인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그에게 직장 상사에 대해 아부할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줘봤다.
안 주임은 "저에게 전권을 주신 홈플러스 모바일사업부문장인 송승선 상무님께 감사의 말을 하고 싶다"면서 "상무님, 제가 깐느광고제 상 받아오겠습니다. 앞으로도 믿고 맡겨주세요"라고 강조했다.
물론 이게 끝은 아니다. 그는 수많은 댓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댓글이 "'담당자 연봉 올려주세요'라는 글이었다"면서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