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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의 거상'은 왜 일본으로 뱃머리를 돌렸나

  • 2022.01.06(목) 06:40

'신상마켓' 딜리셔스, 일본 진출 선언
540억 투자 유치…"K패션 글로벌화"
전망은 '맑음'이지만…역량 더 높여야

/그래픽=비즈니스워치

동대문 패션 플랫폼 신상마켓을 운영하는 딜리셔스가 일본으로 향한다. 국내보다 2배 이상 큰 규모의 일본에서 'K패션'의 세계화를 추진하겠다는 포부다. 일본에 동대문과 같이 주문·생산·유통을 한 번에 처리하는 '클러스터'가 없는 만큼 성공 가능성도 높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신상마켓은 일본을 시작으로 중국·동남아시아 등으로 시장을 넓혀 나갈 계획이다.

관건은 '역량'이다. 한류 콘텐츠 인기와 함께 일본에서 K패션에 대한 니즈가 높아지고 있지만 일본 패션 시장은 동대문식 주문·생산보다 특정 브랜드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딜리셔스가 이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현지와의 긴밀한 협업이 필요하다. 아울러 수요가 늘어날 것에 대비한 물류 인프라 확충도 과제다. 동대문 거상이 세계의 거상으로 크기 위한 과제가 만만치 않은 셈이다.

800억 투자 안고 일본 간다

"동대문은 전세계에 거의 없는 '패션 클러스터'입니다. 디자인은 물론 생산에서 유통까지 모든 업무를 소화할 수 있습니다. 딜리셔스는 신상마켓을 통해 쌓아 온 동대문에서의 경험과 디지털 역량을 바탕으로, 적극적 투자를 통해 일본·중국 등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겠습니다."

장홍석 딜리셔스 공동대표가 지난 5일 서울 정동1928센터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포부다. 그는 "K패션의 체인지 메이커가 되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딜리셔스는 동대문의 패션 산업을 디지털화한 플랫폼 기업이다. 사업 부문은 도소매 플랫폼 신상마켓과 지난해 론칭된 풀필먼트 서비스 딜리버드로 나뉜다. 신상마켓의 누적 거래액은 2조원을 넘어섰다. 현재 1만1000여곳의 도매 매장, 12만곳의 소매 매장이 입점해 있다. 딜리버드 역시 론칭 1년 만에 거래액이 열 배 가까이 늘었다.

장홍석 딜리셔스 공동대표.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이날 딜리셔스는 글로벌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K패션의 글로벌화를 통해 동대문 패션 클러스터의 도약을 가져오겠다는 구상이다. 첫 무대는 일본이다. 딜리셔스는 일본 소비자의 니즈에 맞는 상품군을 '셀렉션'의 형태로 공급할 계획이다. 딜리셔스는 이에 투입될 재원이 될 540억원 규모 시리즈C 투자 유치도 발표했다. 이번 투자에는 스톤브릿지벤처스·산업은행 등 국내 13개 투자자가 참여했다. 현재까지 딜리셔스가 유치한 누적 투자금은 795억원에 달한다.

장 공동대표는 "그동안 딜리셔스가 국내에서 축적한 디지털 전환 역량과 앞으로의 전략에 투자자들이 공감하면서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다"며 "지금까지의 딜리셔스가 K패션 생태계의 정보와 거래를 디지털화한 스타트업이었다면, 앞으로는 글로벌 패션 시장에 K패션을 알리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딜리셔스, 왜 일본을 전초기지로 삼았나

장 공동대표는 일본 시장이 동대문 패션 산업의 '기회의 땅'이라고 했다. 일본 패션 시장은 국내에 비해 2배 큰 약 100조원 수준이다. 하지만 동대문처럼 디자인·제작·유통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인프라는 거의 없다. 더불어 코로나19 이후 이커머스 패션 시장도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 패션 이커머스 시장 규모는 1조9100억엔(약 20조원)에 달했다. 이는 국내 패션 이커머스 시장 대비 3배 큰 규모다. 전체 이커머스 시장 내 패션의 비중도 가장 높았다.

게다가 일본 시장의 한국 상품에 대한 니즈도 높다. 한국 드라마와 K팝 등 국내 콘텐츠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면서 화장품·패션 등에 대한 수요로 이어지고 있어서다. 특히 일본 패션 시장의 주력 소비자인 1020세대 여성들의 한국 패션의 인기를 이끌고 있다. 실제로 라쿠텐이 지난해 조사한 '일본 10대 여성이 패션에 참고하는 나라' 조사에서 한국은 1위를 차지했다. 응답률은 79%에 달했다.

신상마켓은 동대문만을 무대로 하고 있음에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일본 1020세대 여성 세대는 기성세대에 비해 반한감정이 옅은 세대다. 새로운 브랜드에 대한 관심도 높다. 틱톡·인스타그램 등 SNS 마케팅에도 친숙하다. 특정 브랜드를 앞세우지 않고, '상품'을 내세우는 동대문 패션이 파고들 수 있는 틈이 있다는 의미다. 이런 인기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이베이재팬은 오는 4월 '큐텐'에 총 300여 개 브랜드를 입점시킨 의류 전용몰을 오픈한다. 이 중 70%가 동대문과 유사한 3만~4만원 대 한국 브랜드로 채워진다.

정 공동대표는 "중국에는 광저우에 동대문과 유사한 시장·산업이 이미 형성돼 있다. 또 시장에서 선호하는 한국 제품은 고가 라인업인 만큼 동대문과는 다소 괴리가 있다"며 "반면 일본에서 인기가 많은 한국 패션 상품은 대부분 중저가다. 동대문처럼 빠르게 트렌드를 반영하는 브랜드도 많지 않고, 소비자들의 체형도 우리나라와 비슷해 공급하기도 수월해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장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넘어서야 할 '산'은 없을까

딜리셔스는 동대문 패션 산업을 현지 소비자와 직접 연결하는 것이 목표다. 소매상을 통한다면 '가성비'를 갖출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때문에 현지에서 동대문 도매상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파트너를 섭외할 계획이다. 아울러 특정 브랜드에 집중하는 등 전통적 방식의 해외진출 전략도 피한다. 특정 브랜드로 시장을 공략하기보다, 다품종 소량 생산 모델을 활용해 동대문 패션 자체의 영향력을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구조'를 뛰어넘어야 한다. 일본 패션 시장은 브랜드 위주로 구성돼 있다. 중저가 시장은 SPA 브랜드가 장악했다. 실제로 앞서 일본에 진출한 브랜디·무신사는 시장을 반영한 전략을 짰다. 브랜디는 풀필먼트 기반의 '헬피' 시스템을 현지에 이식했다. 동대문 브랜드의 일본 진출은 물론 현지 판매자 창업까지 지원한다. 무신사는 일본에 진출한 입점 브랜드의 물류·영업을 지원하는 방식의 '간접 진출'을 선택했다.

딜리셔스 풀필먼트 센터 전경. /사진=딜리셔스

물류 고도화도 필요하다. 브랜디는 최근 물류센터를 4000평으로 넓혔다. 반면 딜리셔스의 물류센터는 2800평 수준이다. 딜리셔스는 자동화 시스템(AGV) 고도화로 물동량 증가에 대응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절대적 규모는 작다. 특히 딜리셔스는 브랜디와 마찬가지로 네이버의 풀필먼트 플랫폼 NFA의 파트너사다. 네이버는 일본 국민 메신저 '라인'에 스마트스토어를 개설하며 현지를 공략하고 있다. 따라서 물동량이 예상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한 '선제 투자'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딜리셔스의 전략대로 일본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면 한 플랫폼의 해외 진출을 넘어 동대문 생태계의 수준이 높아지는 선순환을 불러올 수 있다. 동대문 패션의 현지 수요가 높아 기회가 많은 것도 사실"이라며 "다만 제대로 된 현지 파트너를 섭외하고, 물류 수준을 업그레이드 하는 등 보완도 필요하다. 이 준비가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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