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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g 빼도 모르겠지?' 슈링크플레이션에 빠진 식품업계

  • 2023.01.17(화) 06:50

사실상 용량 줄여 가격 인상 효과
소비자, 가격보다 중량 변화 덜 민감

/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극심한 고물가로 최근 식품업계에서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는 '줄어든다'는 뜻의 '슈링크(shrink)'와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쉽게 말해 가격 인상 대신 중량을 줄이거나 저렴한 대체 원료를 쓴다는 의미다. 소비자 가격 저항감이 높은 상황에서 업계가 인상 카드 대신 '우회로'를 택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격 인상은 그렇고... 

17일 업계에 따르면 오리온, 농심, 서울우유 등은 최근 가격 인상 대신 일부 제품의 용량을 축소했다. 오리온은 지난해 10월 초콜릿 바 '핫브레이크' 제품의 중량을 기존 50g에서 45g으로 5g 줄였다.  대신 가격은 1000원을 유지했다. 농심도 지난해 9월 '양파링'의 중량을 기존 84g에서 80g으로 바꿨다. '오징어집'의 용량도 기존 83g에서 78g으로 줄었다. 가격은 각각 이전 그대로였다. 

가격은 그대로지만 용량 줄인 제품/ 그래픽=비즈니스워치

같은 달 서울우유협동조합도 요구르트 '비요뜨'의 중량을 기존 143g에서 138g으로 5g 축소했다. 롯데제과는 지난 2021년 9월 카스타드 대용량 제품 개수를 12개에서 10개로 줄이고, 꼬깔콘 과자 중량을 72g에서 67g으로 변경했다. 한 유통 업체 관계자는 "상품 용량을 줄였다고 공개적으로 알리는 곳은 거의 없기 때문에 실제로 크기가 줄은 제품은 더욱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기업들에만 국한되는 일은 아니다. 자영업 등 외식 업계에서도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프랜차이즈 업체에서는 재료를 더 값싼 식자재로 교체하기도 한다. 식당에서 원가를 아끼려 반찬 가짓수를 줄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전에는 공짜였던 각종 서비스나 물품에 비용을 붙이는 경우도 많다. 채소 등 셀프 코너를 유료화하거나 카드 사용시 비현금 수수료를 받는 식이다. 
상술과 전술 사이

물론 업계는 각종 원자재 등 물가 폭등을 그 이유로 든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 장기화로 곡물과 유가 등의 가격 변동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국제적인 인플레이션과 1달러당 1300원에 육박하는 고환율도 업계의 발목을 잡고 있다. 국내 업계는 원재료의 60% 이상을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다. 밀부터 사료까지 의존도가 높다. 최근에는 에너지와 인건비 등 비용 부담도 커졌다. 

2022년 소비자물가상승률 추이/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실제로 가격 인상에도 주요 업체의 수익성은 나빠지고 있다. 수출 효과를 본 몇 기업을 제외하면 대부분 업체의 영업이익 증가율은 하락세다. 오뚜기는 지난 3분기 영업이익이 44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5% 감소했다. 농심도 6.2% 감소한 273억원, 대상도 4.0% 줄어든 344억원, 동원F&B도 8% 감소한 451억원으로 나타났다. 외형만 커졌을 뿐 '내실'은 악화한 셈이다.

기업들은 '양 줄이기'가 가격 인상을 최소화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는 입장이다. 식품 업계의 한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 인상에 물류비 상승까지 누적되어 가격 인상이 불가피했던 상황"이라며 "(양 줄이기는) 소비자에게 고지를 하고 진행했던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부득이한 가격 인상을 최소화하고자 적용 가능한 일부 제품을 대상으로만 진행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소비자들 사이에선 '상술'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중량 감소를 고지하지 않고 슬그머니 올리는 곳도 많아서다. 소비자는 뒤늦게 기만당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다만 기업 입장에서 '양 줄이기'가 효과적인 전략이다. 가격 인상보다 소비자 불만이 적어서다. 소비자들은 보통 중량이나 개수 같은 세부 사항은 유심히 관찰하지 않는다. 중량 감소가 적어 티가 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직간접적 '인상'

앞으로 슈링크플레이션 전략을 취하는 기업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많다. 업계는 이미 지난해 2~3차례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라면부터 치킨, 커피까지 많게는 1000원까지 올랐다. 그 어느 때보다 가격에 대한 소비자 민감도가 높은 상황이다. 여기서 가격을 더 올리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직간접적으로 가격을 올릴 방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정부의 눈치도 봐야하는 상황이다. 식품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2일 한국식품산업협회에서 간담회를 열어 "식품 물가의 중요성을 고려해 가격 안정화에 최대한 협조해달라"고 밝혔다. CJ제일제당, 대상, 오뚜기, 농심, 롯데제과, 동원F&B, SPC 등 12개 업체의 임원이 참석했다. 사실상 정부가 가격 통제를 위해 모은 자리다. 여기서 가격을 올렸다간 정부의 눈 밖에 날 수 있다. 

앞으로 프리미엄 등 고가 마케팅이 더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기농, 글루텐프리 등 트렌드를 이용해 가격 인상의 명분을 만들 수 있어서다. 이들 제품은 일반 상품보다 가격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실제로 지난해 라면 업계에서는 프리미엄 제품 바람이 불었다. 한 봉지에 2000원에 달하는 라면도 출시됐다. 이 역시 큰 틀에서 슈링크플레이션의 일환이라는 시각도 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가격 상승이 이어져오며 소비자의 고물가 피로감이 극에 달한 상태"라며 "가격을 직접 올리기보다 소비자들이 알기 어려운 양 줄이기 전략을 택하는 기업들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기존 상품의 중량을 모르는 소비자가 대다수"라며 "교묘하게 용량을 줄이는 등의 기만행위는 근절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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