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지는 소비자들의 입맛에 '프리미엄화'하던 편의점 도시락이 다시 '가성비'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경기 불황이 이어지며 저렴한 한 끼를 찾는 사람들을 잡기 위해 2000~3000원대에 구매할 수 있는 도시락을 연이어 선보이고 있다.
돌고 돌아 다시 가성비
지난 2월 GS25는 '김혜자 도시락'의 귀환을 알렸다. 식품 기업들의 잇단 가격 인상에 '런치플레이션'이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점심값이 치솟으며 저렴한 편의점 도시락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는 판단에 '가성비'의 상징이 된 김혜자 도시락을 재출시하기로 한 것이다.
김혜자 도시락은 처음 출시된 2010년 풍성한 구성과 뛰어난 맛, 저렴한 가격이 맞물리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모델인 배우 김혜자 씨의 이름을 딴 '혜자롭다'라는 말은 곧 '가성비가 좋다'라는 뜻으로 통했다. 2017년까지 7년간 판매된 김혜자 도시락의 누적 매출만 1조원에 달한다.
이후 편의점 도시락의 트렌드가 프리미엄을 강조하는 쪽으로 바뀌며 김혜자 도시락도 사라졌다. 편의점 도시락 가격의 심리적 마지노선이던 5000원을 훌쩍 넘는 제품들도 많아졌다. 1만원이 넘는 고급 도시락이 매대에 들어서기도 했다.
실제 지난해 편의점들이 가장 주력으로 삼은 도시락 가격대는 4000~5000원대다. 5000원 이상 고가 도시락도 20%를 웃돈다. 반면 4000원 미만 제품은 10% 미만에 그쳤다. 편의점 도시락에 대한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5000원이 넘는 프리미엄 도시락 소비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고물가 기조가 이어지며 저렴한 편의점 도시락에 대한 수요가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다시 가성비의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혜자에 맞서는 주현영·백종원
GS25가 새로 선보인 김혜자 도시락은 정상가가 4500원이지만 할인QR과 통신사 할인, 구독 할인까지 적용할 경우 2550원까지 내려가는 가격 경쟁력을 강조했다. 1000원이 아쉬운 직장인·학생들을 겨냥한 것이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첫 발주부터 다른 도시락의 4배가 넘는 발주량을 기록한 김혜자 도시락은 출시 2주 만에 카스와 참이슬 등을 제치고 전체 매출 1위를 차지했다. '원조 가성비'의 화려한 귀환이었다.
다른 편의점들도 잇따라 가성비 도시락 전쟁에 참전했다. 세븐일레븐은 MZ세대의 '대세'인 배우 주현영을 내세운 '주현영 도시락'을 내놔 출시 6일 만에 60만개를 팔아치웠다. 이마트24도 6가지 인기 반찬을 담은 '39도시락'과 '42도시락'을 내놨다. 반찬 가짓수가 많음에도 3000~4000원 초반으로 가격을 누르며 매출 1, 2위에 올랐다.
CU는 기존 도시락 모델인 백종원을 앞세웠다. 이달 중순에는 할인을 모두 적용할 경우 2000원에 구매할 수 있는 제육 도시락을 선보여 6일 만에 50만개가 팔렸다. 최근에는 기존 도시락보다 중량이 10% 이상 많은 바싹불고기 도시락을 3000원대에 내놨다.
"앱 설치·정기구독 부탁드려요"
'초저가 도시락'의 이면에는 판매율이 높은 가성비 도시락을 앞세워 지지부진한 자체 앱 설치와 구독 서비스 이용률을 높이려는 계산도 있다. 제공되는 할인 혜택을 모두 받으려면 앱을 설치하거나 정기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혜택이 큰 만큼 유입률도 높다.
정가 4500원인 CU의 백종원 바싹불고기 도시락을 그냥 구매하면 기간 할인 800원만 적용된 3700원이다. 여기에 1000원당 100원이 추가 할인되는 통신사 할인을 적용한 후 20% 할인이 적용되는 구독 쿠폰을 이용하면 최종 2000원에 구매할 수 있다. 모든 할인을 적용하면 2500원, 56%의 할인율이다. GS25의 김혜자 도시락 역시 할인을 최대폭으로 받으려면 20% 할인을 제공하는 '우리동네GS클럽 한끼'에 가입해야 한다.
실제로 유입 효과는 높았다. 이달 들어(~26일) CU의 도시락 구독쿠폰 사용량은 전월 대비 46.5% 늘어났다. CU의 도시락 구독 쿠폰은 4000원에 1개월간 10회 할인이 제공되는 조건이다. 5회 이상 사용해야 이득인 만큼 구독자는 같은 브랜드 편의점을 더 자주 이용하게 된다. 소비자는 할인 혜택을 얻고 편의점은 충성 고객을 얻는 '윈-윈'전략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식당 점심값이 급등하면서 간편하게 편의점에서 점심을 해결하려는 소비자들이 늘어 가성비 도시락을 선보이고 있다"며 "식당 한 끼 가격으로 밥과 커피까지 해결할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