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제품이 쏟아지는 소비의 시대. 뭐부터 만나볼지 고민되시죠. [슬기로운 소비생활]이 신제품의 홍수 속에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제품들을 직접 만나보고 가감없는 평가로 소비생활 가이드를 자처합니다. 아직 제품을 만나보기 전이시라면 [슬소생] '추천'을 참고 삼아 '슬기로운 소비생활' 하세요. [편집자]
비빔면 먹기엔 아직 춥다고?
라면업계에서 3-4월은 '비빔면의 달'이다. 아직 비빔면을 먹기엔 바람이 조금 차가울 수 있겠지만, 이 때쯤 신제품을 내놓고 마트에 선보여야 본격적인 비빔면 시즌이 오기 전에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인식시킬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비빔면은 업계에서 '해 볼 만한' 시장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간 '팔도비빔면'이 7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2위라 부를 만한 브랜드가 없었는데, 농심 '배홍동'이 확실하게 2위 제품으로 자리잡으며 균열을 냈다.

배홍동에 앞서 잠시 2위 타이틀을 따냈던 오뚜기의 '진비빔면'과 하림산업의 '더미식 비빔면'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엔 배홍동이 면을 쫄깃한 건면으로 바꾼 '배홍동 쫄쫄면'으로 또 한 번 바람몰이를 하는 데 성공했다.
새로운 브랜드들이 나타난다는 건 그만큼 1위 브랜드의 입지가 약해졌다는 것. 전통의 강호 팔도비빔면의 점유율은 어느새 50%대까지 떨어졌다. 그럼에도 팔도는 그간 눈에 띄는 신제품을 선보이기보단 팔도비빔면의 맛을 다듬는 데 집중해 왔다. 점유율은 떨어졌지만 전체 시장이 커지며 매출은 꾸준히 우상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엔 드디어 팔도가 몸을 일으켰다. 오랜만에 선보인 대형 비빔면 신제품 '마라왕 비빔면'으로 올 비빔면 시즌을 접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비빔면 명가' 팔도의 새 비빔면은 어떤 맛일까. [슬기로운 소비 생활]에서 먼저 맛보기로 했다.
유행 넘어 생활로
팔도가 비빔면 신제품에 '마라'를 꺼내든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마라는 10대부터 40대까지 폭넓게 인기를 누리고 있는 향신료다.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마라가 주요 외식 메뉴로 자리잡은 지 벌써 10여 년이다. 배달의민족에서 검색어 순위 1위를 지킨 지도 오래다.
라면업계는 앞서 한 차례 '마라 시리즈'를 내놨었다. 농심이 '마라고수 마라탕면', 오뚜기가 '마라샹궈면' 등 주요 라면 업체들이 마라맛 라면을 내놨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그 사이 마라의 인기가 식지 않고 더 대중화되며 다시 한 번 마라 라면을 내놓을 기회가 왔다.

팔도는 올해 초 '킹뚜껑 마라맛'을 한정판으로 출시했다. 70만개가 1개월 만에 완판됐다. 마라 라면에 대한 수요가 검증된 셈이다. 마라가 라면 시장의 한 축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확신한 팔도는 '마라왕' 브랜드의 첫 제품으로 마라왕 비빔면을 내놨다.
마라왕 비빔면의 콘셉트는 '쿨한 마라맛'이다. 마라를 이용한 뜨거운 국물 라면은 많지만 차가운 비빔면은 거의 없었다. 팔도 연구진은 차가운 면과 잘 어울리는 한국식 마라 분말스프를 개발했다. 산초와 베트남 하늘초를 배합해 평소 향신료에 익숙지 않아도 즐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마라 향이 혀 끝을 스치운다
마라왕 비빔면은 면과 비빔장 스프, 마라별첨스프로 구성돼있다. 뜯자마자 이 제품이 독립적인 신제품이라기보다는 팔도비빔면의 형제 격 제품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면은 팔도비빔면 특유의 희고 얇은 면이며 비빔장은 아예 팔도비빔면 스프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팔도비빔면에 마라별첨스프만 추가됐다는 의미다.

조리법 역시 팔도비빔면과 동일하다. 조리를 마친 후 소스를 넣고 비빌 때 마라 별첨 소스를 함께 뿌려주기만 하면 된다. 제조공정의 효율을 중시한 결과겠지만, 비빔면의 핵심인 비빔장에 해당 제품의 로고가 아닌 팔도비빔면 로고가 그대로 들어있다는 건 조금 아쉬운 점이다.
실제 맛을 보면 마라 맛이 강하게 느껴지기보다는 팔도비빔면의 매콤달콤한 맛 뒤에서 받쳐주는 조력자 역할에 가깝다. 최근 진비빔면, 배홍동 등 더 달고 더 매콤한 비빔면이 늘어나면서 팔도비빔면이 상대적으로 '심심한 맛'처럼 느껴졌는데 마라향이 더해지며 보다 개성있는 맛이 완성됐다.

이는 팔도가 '마라왕' 브랜드를 틈새시장 공략용이 아닌 대중 브랜드로 키우려고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팔도는 마라왕 비빔면 출시와 함께 국물라면, 볶음면 등 다양한 형태로 마라왕 브랜드를 확장하고 마라라면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소 대중적인 맛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위치다.
이 때문에 '마라왕'이라는 타이틀을 보고 강렬한 마라맛을 기대했던 소비자라면 아쉬움이 클 것 같다. 기본적으로 이 제품은 '마라 비빔면'이라기보다는 '팔도비빔면 마라 에디션'에 가까운 제품이다. 팔도 측 역시 "평소 향신료에 익숙지 않아도 즐길 수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마라 입문용 제품이라는 의미다.

*본 리뷰는 기자가 제품을 팔도로부터 제공받아 시식한 후 작성했습니다. 기자의 취향에 따른 주관적인 의견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