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돈 버는 회사
지난 4일. 컬리가 2025년 실적을 발표했습니다. 아마 창립 이래 가장 뜻깊은 실적발표였을 겁니다. 지난해 영업이익 131억원을 기록하며 긴 적자의 사슬을 끊어내고 처음으로 연간 흑자를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2015년 김슬아 대표가 '마켓컬리'로 창업한 지 딱 10년 만입니다. 경쟁 이커머스들이 모두 고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낸 성적표라는 점도 눈에 띕니다.
속된 말로 '허리띠를 졸라매며' 낸 흑자도 아닙니다. 많은 이커머스들이 적자를 개선하기 위해 가장 먼저 마케팅비를 줄입니다. 할인 쿠폰을 덜 뿌리고 행사를 줄이면 빠르게 적자가 줄어듭니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릅니다. 매출 감소입니다. 발에 치이는 게 이커머스인데 쿠폰도 주지 않는, 가격 경쟁력이 없는 곳을 방문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컬리도 이전처럼 드라마틱한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매출 2조원, 거래액 3조원이 넘는 기업이 매년 수십%의 성장을 이어나가는 건 쿠팡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도 매출 2조원 초반에 발목이 잡혀 있던 2022년부터 2024년까지와 달리, 지난해엔 매출액은 8%, 거래액은 13.5% 늘렸습니다. 같은 기간 온라인 쇼핑 거래액 성장률 5.3%를 크게 웃돕니다.
고작 100억원대 흑자 한 번에 컬리의 문제가 다 해결된 건 아닙니다. 그간 쌓인 누적 적자만 8000억원이 넘습니다. 지금 페이스라면 누적 적자를 모두 메우는 데 60년 이상이 걸릴 전망입니다. 그럼에도 컬리는 자신감이 넘칩니다.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분위기입니다. 왜일까요.
유효 가입자?
컬리가 이번 실적 발표와 함께 공개한 수치 중 눈여겨 볼 숫자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유효 멤버십 가입자 수'입니다. 컬리는 현재 월 구독료 1900원의 유료 멤버십 '컬리멤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컬리는 이번 실적 발표에서 지난해 말 기준 유효 멤버십 가입자 수가 140만명을 돌파했다고 밝혔습니다.
유료 구독자면 유료 구독자지 유효 가입자는 또 뭘까요.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업계가 구독자 수를 카운팅하는 방식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일반적으로 유통업계에서는 '누적 구독자 수'를 내세웁니다. 한 번이라도 가입을 했다면 '1명'으로 계산합니다. 가입했다가 해지하더라도 누적 구독자 수에서 제외되지 않죠. 극단적으로 보면 '누적 구독자 100만명 돌파'라고 하지만 현재 이용 중인 구독자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건 프랜차이즈 업계도 비슷합니다. 'XX커피'의 점포 수가 2000호점을 돌파했다고 할 때, 현재 존재하는 매장 수가 2000개라는 게 아닙니다. 폐점을 했더라도 카운팅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누적 구독자 수'나 'XX호점 돌파'는 실제 브랜드의 현 상황과 괴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번에 컬리가 공개한 유효 가입자 수는 현재 시점에서 월 구독료 1900원을 내고 있는, '실사용자'를 의미합니다. 그간 업계에서 유효 구독자 수는 '영업기밀'에 속했습니다. 유료 구독 서비스를 운영 중인 여러 이커머스 가운데 유효 가입자 수를 공개한 곳은 컬리가 유일합니다.
자신있습니까
컬리가 이번 실적 발표에서 유효 가입자 수를 공개한 건 자신감을 드러낸 것으로 읽힙니다. 소위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숫자다'라는 판단이 섰다는 겁니다. 지난 2023년 론칭했던 신세계그룹의 '신세계 유니버스'는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 G마켓, SSG닷컴, 스타벅스 등을 아우르는 대규모 멤버십이었지만 가입자 수가 100만명 선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서 유료 멤버십 시대를 열었던 G마켓 '스마일클럽'의 경우 한 때 누적 가입자가 300만명을 넘었었습니다. 하지만 신세계 유니버스에 G마켓이 포함된 데다, 유니버스 클럽을 종료하기로 하면서 신규 가입자는 받지 못하고 기존 가입자는 사라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곧 론칭할 '꼭 멤버십'에 기대를 걸고 있죠. 유료 구독자 수가 컬리보다 많은 곳은 쿠팡과 네이버 정도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이번에 컬리의 유료 멤버십 가입자 수가 공개된 뒤 업계에선 '예상보다 많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컬리의 향후 실적 전망이 밝은 것도 이 충성 고객 확보에 대한 자신감 때문입니다. 꾸준히 유효 가입자 수가 늘어난다는 건 충성고객이 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지난해에만 전체 가입자의 절반에 가까운 60만명을 모았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컬리 측은 "가입 고객의 구매 활성화에 집중한 게 주효했다"며 "신규 고객을 끌어들이는 것보다 멤버스 가입 고객의 혜택을 강화하는 게 마케팅 비용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마케팅 비용을 효율적으로 쓰면 수익성 개선에 도움이 되는 건 당연한 흐름입니다.
'뜨내기보다 단골에게 잘 하라'. 동네 작은 밥집에서도 통하는 경영의 진리입니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이 '잡은 물고기'보다는 '남의 떡'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소비자들도 혜택만 뽑아먹는 '체리피커'로 변하고, 기업과 소비자 모두가 피곤한 'lose-lose' 게임이 됩니다. 컬리는 모두가 패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 '선순환'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