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금융 보신주의’를 질타하면서 후폭풍이 본격화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잇달아 금융권을 소집해 대출 활성화를 독려하고 나섰다. 집을 살 때도, 벤처나 중소기업에도 돈을 더 많이 빌려줘 경기부양에 힘을 보태라는 요구다.
반면 여기저기서 빚잔치로 경기부양을 꾀한다는 비판도 거세다. 기술금융이 중요한 과제이긴 하지만 무작정 밀어붙이다간 부동산 규제 완화에 이어 금융 부실의 안전핀을 뽑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금융당국의 보신주의부터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5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IBK기업은행 본점에서 은행권 여신담당 관계자들과 현장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
◇ 금융위•금감원, 일제히 군기잡기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5일 시중은행 여신담당 임원들을 일제히 소집했다. 지난달 24일 박 대통령이 “금융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면 존재 이유가 무엇이냐”면서 금융 보신주의를 질타하자 군기잡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신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창업•벤처와 혁신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대출을 주문했다. 그는 “창업•혁신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으로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해야 한다”면서 “그동안 주된 성장 기반이던 부동산 금융과 개인 신용대출은 한계에 다다랐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역동성을 회복하려면 정부와 금융권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대기업과 담보 위주의 안전 대출만 고집하지 말고 과감한 대출로 경기 활성화에 동참해달라는 얘기다.
앞서 금감원도 지난 4일 시중은행 여신 담당자들을 불러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방안을 적극적으로 시행해달라고 당부했다. LTV와 DTI 한도를 각각 70%와 60%로 높였는데도 은행 창구에선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대출 독려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 기술금융 등 과감한 대출 독려
정부는 내달 금융 보신주의 타파를 위한 별도 대책도 발표한다. 과감한 대출에 인센티브를 줘 대기업과 담보 위주의 대출을 기술금융 위주로 전환하겠다는 취지다.
여기엔 기술금융 대출에 적극적인 임직원에 더 많은 성과가 돌아가도록 보수운용 체계를 차등화하고, 해당 여신에 대해선 사후 부실이 나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는 내용 등이 담길 전망이다.
정부가 잇달아 대출 독려에 나서자 시중은행들은 일단 제스쳐를 취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당장 ‘기술평가 기업 대출’을 내놨다. 기술력과 성장 잠재력을 보유한 BB등급 이상 중소기업에 최고 10억 원까지 빌려주는 상품이다.
반면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기술금융 강화엔 공감하면서 기술평가를 비롯한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대출을 늘렸다가 부실만 키울 수 있어서다. 창업•혁신기업에 대한 지원을 은행들을 압박해 손쉬운 대출로 해결하려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 책임은 누가? 당국 보신주의 ‘비판’
특히 부동산에 이어 창업•혁신기업에 대출을 계속 늘렸다가 우리 경제 전반에 두고두고 부담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빚으로 경기를 부양하려다가 효과는 제대로 보지 못하고 행여나 다시 위기가 닥치면 더 큰 부메랑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의 보신주의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청와대의 주문에 따라 앵무새처럼 대출을 독려하다가 부실이 나면 사후 책임은 금융권에 뒤집어씌우는 이전 행태가 반복될 것이란 지적이다. 저성장, 저금리 기조로 금융권 전체가 위기로 내몰리고 있는데도 희생만 요구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시절엔 서민금융 지원과 각종 수수료 인하로 압박하더니 이번엔 기술금융을 밀어붙이고 있다”면서 “급할수록 돌아가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