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강하게 추진해온 기술금융이 1년 만에 갈림길에 섰다. 기술금융이란 기술력은 우수하지만 신용등급이 낮아 자금 융통이 어려운 기업을 대상으로 해당 기업의 보유 기술을 평가해 자금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은행 간에 기술금융 취급 경쟁이 격화돼 규모가 급속이 증가하면서 부실화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현 정부에서 추진된 기술금융이 앞서 이명박 정부의 '녹색금융'과 같은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 갈수록 가팔라지는 증가세…속도 조절 시급
은행연합회 '기술금융 종합상황판'에 따르면 은행권의 기술신용대출 실적은 20조 원에 육박한다. 지난해 7월 말부터 올 3월 말까지 누적해 산출한 수치다. 이 가운데 정책금융과 연계된 대출을 제외한 은행자율 취급 규모만 따져 봐도 15조 원에 달한다.
최근 들어서 점차 증가 속도가 가팔라지고 있다. 1월에 1조 5000억 원 가량의 실적을 기록한 이후 2월 2조 3000억 원, 3월 4조 9000억 원 등 기록적인 대출이 이어지고 있다.
▲ (은행연합회 제공) |
이는 우선 시중은행들이 저금리 저수익 환경에서 상대적으로 예대마진 등 수익성이 좋은 중소기업 대출을 크게 늘린 데 따른 영향으로 분석된다. 금감원에 따르면 은행권의 올 1분기(1~3월) 동안 중소기업 대출은 15조 1000억 원 증가했다. 이는 2008년 2분기 이후 가장 큰 규모다.
정부가 관련 실적을 '혁신성 평가' 등에 반영하면서 은행들의 경쟁이 격화된 면도 있다. 금융위는 지난 1월 발표한 1차 혁신형 평가에 총 100점 중 기술금융 실적을 40점으로 했다. 그 결과 일반은행 중 신한은행이 1위에 올라섰는데, 이후 '신한 타도'를 외치고 있는 국민은행이 기술금융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모습이다. 2차 혁신성 평가는 오는 7월 말에 발표될 예정이다.
◇ "혁신성 평가제도 개선해야…녹색금융 전철 우려"
기술금융을 비롯한 중소기업 대출이 무분별하게 증가하자 최근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산업은행은 최근 '기업금융 조기경보 리포트'를 통해 "향후 기업대출의 가파른 상승에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업은행에 따르면 국내 기업대출은 중장기적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당장 1년 이내에 은행대출이 부실화할 가능성은 적지만, 지난해 기업들의 성장성과 수익성이 악화한 점 등을 감안했을 때 기업대출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서병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도 지난 4일 기술금융과 관련 "속도 조절을 통한 연착륙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 연구위원은 "금융이 특정 부문에 집중될 경우 경제 전반의 거시건전성이 악화할 수 있다"며 "기술금융의 연착륙을 위해서 우선 은행의 혁신성에 대한 평가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현 정부의 기술금융이 기술력 평가보다는 안정성 위주의 대출을 하는 '무늬만 기술금융'으로 전락할 경우 지난 정부의 녹색금융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녹색금융 역시 지난 정부에서 무분별하게 다뤄져 부실 문제에 부닥쳤다.
금융위원회는 이 같은 지적에 따라 최근 기술금융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그동안 지적돼 온 부작용 등에 대해 오는 15일까지 점검한 뒤 내달 초 개선안을 내놓을 계획"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혁신성 평가도 개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