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전문은행에 도전했는데, 선택을 못 받았네요. 그래서 새로운 제휴 서비스를 내년 1월 말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데, 보안성 심의가 3개월이나 걸린다고 합니다. 조속히 마무리할 수 있도록 신경 써줬으면 좋겠습니다."
금융위원회가 8일 서울 종로구 그랑서울타워 KEB하나은행에서 개최한 '핀테크 1년, 금융개혁 현장점검 회의'. 올 한해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룬 핀테크 관련 정책과 산업을 평가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핀테크 업체와 금융사, 금융당국은 주거니 받거니 덕담을 나누며 내년을 기약했습니다.
임종룡 위원장이 직접 참석해 핀테크 업체 실무자들과 간담회를 마련해 지난 1년간의 성과와 의견을 청취했습니다. 임 위원장이 "너무 칭찬만 해주시니까,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 같다"고 할 정도였으니, 나름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됐습니다.
물론 금융당국에 관련 정책의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예를 들어 고객의 금융거래 정보를 핀테크 업체에 제공하는 방식이 문제의 소지가 있어 '오픈 플랫폼'을 구축하는데 고민이라는 말에, 임 위원장은 시원한 답을 내놨습니다. 고객의 금융거래 정보를 제삼자에게 제공하는 것은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서면 동의가 아닌 '전자 서명방식'도 허용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최근 인터넷은행 사업자 선정에서 탈락한 기업은행의 '웃픈(웃긴데 슬픈)' 사연이 불쑥 소개돼 장내가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기업은행은 인터파크가 주도한 'I-뱅크' 컨소시엄에 참여했다가, 컨소시엄의 탈락으로 최초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기업은행은 대신 탈락을 대비해 '투 트랙'으로 준비해온 결제서비스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 서비스의 출시가 보안성 심사 때문에 더뎌지고 있다는 겁니다.
기업은행 실무자는 이 자리에서 "2개월이면 끝낼 사업이 (보안성 심사가 끝나는) 3개월 이후에나 해야 하니까 조급한 마음"이라며 "(임 위원장께서) 보안성 심의가 조속히 마무리될 수 있도록 신경 써줬으면 좋겠다"고 건의했습니다. 이에 임 위원장은 다른 의견과 마찬가지로 '시원한' 답을 내놓기 위해 보안성 심의를 담당하는 금감원 실무자에게 '빠른 처리'를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금감원이 아닌 국정원이 담당"이라는 예기치 못한 답변이 나왔습니다.
언뜻 생각해도, 아무리 같은 정부 부처라도 금융위가 국정원에 이래라저래라 하긴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임 위원장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부탁하기에) 어려운 곳"이라고 말했고, 이에 장내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임 위원장은 물론 그러면서도 "최대한 빨리 처리될 수 있도록 신경 쓰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사실 금감원이 담당하는 보안성 심사는 최근 '금융개혁'의 목적으로 폐지됐습니다. 금감원이 사전에 요구하는 게 많은 데다가, 기간도 너무 오래 걸린다는 지적이 많아서입니다. 그런데 기업은행은 이 혜택에서 제외됐습니다. 공공기관은 여전히 국정원에 보안성 심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국가 보안 문제로 공공기관이 내놓는 서비스는 국정원의 심사를 받게 돼 있다"며 "그간 금감원이 진행해왔던 심사 과정과 유사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기업은행에 따르면 국정원에 보안성 심사를 신청하면, 이후 국정원이 금융위에 서류를 보내고, 이후 금감원, 금융보안원 등을 차례차례 거쳐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3개월이 소요되는데, 이걸 줄여보고 싶었던 겁니다.
인터넷은행 경쟁에선 떨어지고,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은행권 성과주의 도입에는 공공기관이란 이유로 첫 '시험대'로 꼽힌 기업은행. 다른 은행들이 인터넷은행에 맞서 이런저런 서비스를 속속 내놓고 있는데, 정부가 앞길을 가로막고(?) 있으니 답답하기도 할 것 같습니다. 임 위원장이 '신경 쓰겠다'고 약속했으니, 과연 국정원이 빨리 움직여줄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