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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도전! 중금리 대출, 그런데 못 하면요?

  • 2015.12.02(수) 11:07

[따져보자, 인터넷은행]②
실패 또 실패…흑역사 중금리 대출 활성화 선언
편리한 소액 대출 위주 카드론·대부업화 가능성

"압도적인 빅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합리적 대출금리를 제공하는 새로운 신용평가시스템 구축에 도전하겠다." (K뱅크)

"카카오와 공동발기인이 보유한 데이터를 통해 차별화한 신용평가혁신을 추구해, 중신용자에게도 합리적인 금리를 제공하겠다." (카카오뱅크)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자로 선정된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가 나란히 '중금리 대출'을 혁신적 사업 모델로 내세웠다. 많은 양의 빅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신용평가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포부다. 기존 금융권에선 찾기 힘들었던 중금리 대출 상품이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에 정치권과 정부, 여론의 관심도 뜨겁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중금리 대출 상품을 만들겠다는 '도전 의사'를 밝힌 것뿐이지, 당장 내년 말쯤 출범하자마자 내놓을 수 있게 준비한 것은 아니다. 두 사업자가 내놓은 '자산관리 서비스'나 '간편결제' 등은 바로 선보일 수 있을 듯하지만, 중금리 대출은 다르다. 이들도 정확하게는 '신용평가시스템 구축에 도전', '신용평가 혁신을 추구'와 같은 문구를 썼다.

 


◇ 중금리 틈새시장 노리는 인터넷은행

중금리 대출은 연 5%에서 15% 정도의 대출 상품이다. 기존 금융권에선 찾기 힘든 금리다. 은행에 가면 연 10% 밑으로 받을 수 있지만, 신용등급이 1~4등급으로 높아야 한다. 5~6등급의 중신용자의 경우 은행을 벗어나면, 저신용자와 마찬가지로 연 20% 이상의 금리를 내야 한다. '금리 사각지대'다.

인터넷은행이 '중금리 대출'을 내세우는 것은 기존 금융사들이 커버하지 못하는 틈새시장이기 때문이다. 차별화한 서비스로 틈새를 파고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성공 요건이다. 이들의 의지대로 중금리 대출 상품을 내놓는다면, 소비자도 좋고 인터넷은행도 좋은 '윈윈(win-win)'이 된다. 정부와 정치권도 체면을 세울 수 있다.

 

그러나 장밋빛 청사진만 바라보고 있다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 가능성도 있다. 중금리 대출 상품 출시가 정말 현실성이 있는지, 혹여 이런 계획이 실패하면 어떤 상황에 닥치게 될지 따져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윤호영 카카오 모바일은행 TF 부사장(오른쪽)과 김인회 K뱅크 컨소시엄 단장(KT 전무)이 30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카카오뱅크·K뱅크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자 사업계획 브리핑에서 악수하고 있다.


◇ 빅데이터로 신용평가 '첩첩산중'

먼저 두 사업자가 내놓은 청사진을 살펴보자. 당장 상품을 선보일 것처럼 알려졌지만, 계획을 따져 보면 중금리 대출 상품을 내놓기까지는 수많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리고 그 단계들은 하나하나 난관이다. 중금리 대출 상품 출시 시나리오는 이렇다. '많은 양의 데이터를, 빅데이터화 해, 신용평가시스템을 만든다. 이를 통해 중신용자에게 합리적인 금리를 제공한다.'

많은 양의 데이터를 모으기부터가 어렵다. 고객 정보를 사용하려면 동의를 얻어야 한다. 정보 유출 사태의 영향으로 민감한 고객에게 일일이 동의를 얻기는 쉽지 않다. 인터넷은행 참여 업체들이 자유롭게 정보를 공유하는 데에도 법적인 한계가 있다. 아무리 인터넷은행의 성공을 바란다고 해도, 핵심 고객 정보를 다른 회사에 넘길 지도 아직 미지수다.

데이터를 빅데이터화 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 전문가들은 빅데이터의 '많은 양'보다는 분석 방식과 모델 검증의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신용등급을 정교하게 만들더라도, 이를 일반화하기 위해선 수년간 대출을 취급하며 부실률을 따져봐야 한다. 신용등급은 부실률을 예측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세분화한 신용등급이 부실률을 정확히 예측하는지 검증이 끝나야 '미지의 세계'인 중금리 대출을 제대로 취급할 수 있다. 기존 금융사가 그동안 중금리 대출을 하지 못했던 이유도 정확히는 부실률을 검증해본 경험이 부족해서다. 관련 기사 : "얇은·Thin 파일에 대출? 정보가 없는데…"

 

▲ 신용등급별 규모. LG경제연구원


◇ 결국 빠르고 편한 '소액대출'

 

물론 '대국민 약속'을 처음부터 어기진 않을 전망이다. 다만 출범 초반에는 소액 중심의 중금리 대출 상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은경환 LIG투자증권 연구원은 "빅데이터 중심의 새로운 신용평가기법 도입해도 시스템 안정화 단계까지는 상당 기간이 소요될 것"이라며 "설립 초기에는 대출금액의 최고 한도를 낮게 정해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런 상품은 두 사업자가 내놓은 청사진과는 거리가 멀다. 지금도 시중은행이나 은행 계열 저축은행에서 볼 수 있는 '정책성 상품'에 가깝다. 수익성보다는 '서민금융'의 역할을 하기 위해 돈을 붓는 상품이다.

상상하기 싫지만,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를 만들어보자. 부실률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해 손해가 커지기 시작하면, 대출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중금리 영역에 최근 시중은행들도 나서고 있다. 거대 은행도 아직 중금리 대출의 부실률을 정교하게 예측하지 못하지만, 일단 자금력을 바탕으로 이 영역을 잠식하고 있다. 최근 일본 은행들도 대금업체(대부업체)와 연계해 중금리 대출 시장에 나선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현상은 지속할 전망이다. 관련 기사 : 메기(?) 등장에 은행도 변화를 시작했다

 

대형 은행과의 경쟁에서 밀리면, 결국 카드사들의 현금서비스나 카드론, 저축은행과 대부업체의 금리 영역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닥친다. 인터넷은행의 출현을 앞두고 카드사와 저축은행, 대부업체 등 제2금융권이 긴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은행의 이름을 달고 있지만, 빠르고 간편한 소액 대출로 승부하는 '세련된 대부업체'가 탄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인터넷은행은 일본이나 미국에서도 실패한 사례가 있는 모델"이라며 "당장 성공을 보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번에 내놓은 사업 모델로 수익을 만들어낼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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