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6%'
최근 안방보험에 35억원이라는 '헐값'에 매각된 알리안츠생명 한국법인의 지난해 12월 현재 지급여력비율(RBC)이다. RBC는 보험사가 예상치 못한 손실이 발생했을 경우 보험계약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책임준비금 외에 추가로 자산을 쌓도록 한 제도다. 국내에선 대표적인 보험사 건전성 지표로 쓰인다.
우리나라 RBC 제도에 따르면 알리안츠생명의 건전성은 '양호한 상태'다. 보험업법상 보험회사는 100% 이상의 RBC 비율을 유지해야 하는데, 알리안츠는 183.6%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 감독회계기준인 '솔벤시2(SolvencyII)'라는 제도에선 알리안츠생명의 건전성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전해진다. 35억원의 헐값 매각이 가능했던 이유다.
국내엔 알리안츠생명과 RBC 비율이 비슷한 문제 보험사들이 수두룩하다.
KDB생명과 동부생명, 흥국생명, 현대라이프, DGB생명, 신한생명, 농협생명 등이 모두 알리안츠생명보다 RBC 비율이 낮거나 조금 더 높은 보험사들이다. 알리안츠생명보다 RBC 비율이 훨씬 높은 다른 보험사들 역시 독일 기준을 적용하면 안전지대가 아니다.
◇ 건전성 기준 높이자 점차 '악화'
알리안츠생명의 경우 당장 독일 본사가 이런 평가를 한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나라 다른 보험사들의 경우 아직 '한국식' 제도를 적용받고 있어 겉으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금융감독원이 12일 발표한 지난해 12월 말 기준 보험사 RBC 비율은 267.1%로 100%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도 유럽의 솔벤시2와 유사한 방식의 국제회계기준(IFRS4) 2단계가 2020년 도입될 전망이어서 업계 안팎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알리안츠뿐 아니라 다른 중소 보험사의 건전성도 사실 심각한 수준 아니냐는 우려다.
실제 금융당국이 2020년 도입할 세 제도에 맞춰 건전성 기준을 조금씩 높이면서, 보험사 전체 RBC 비율은 점차 하락하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 '양호'한 수준이긴 하지만, 세 제도 도입이 본격화하면 일부 보험사의 경우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자료:금융감독원 |
◇ 배당 늘리는 보험사…제도 적용 제외도 검토
금감원은 당장 오는 14일 전 보험사를 대상으로 새 회계기준 도입 방안을 설명할 계획이다. 이미 지난달 각 보험사의 대응 계획을 제출받았고, 이날 추가 의견 수렴을 거쳐 올 하반기엔 일부 보험사를 대상으로 시범 평가를 할 계획이다.
금융당국은 보험사들의 배당을 자제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보험사들은 최근 정부의 배당 확대 정책에 편승해 배당성향을 높이는 추세다. 특히 수익 가운데 일정 수준 이상을 투자·배당·임금인상 등에 쓰지 않으면 추가 법인세를 내야 하는 '기업소득환류세제'가 시행되고 있어 이런 추세를 더욱 부추기는 모양새다.
▲ 주요 보험사 지난해 말 RBC 비율. 금융당국의 건전성 감독 기준 강화와 보험사들의 배당 확대 등으로 일제히 떨어졌다. (자료:금융감독원) |
지난해 말 보험사 RBC 비율이 떨어진 것은 보험사의 주주배당액이 많이 늘어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세제 당국 등과 협의해 이런 제도 적용 범위에 보험사는 제외하도록 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배당을 독려하는 정부의 제도와 자제해야 하는 보험사의 현실이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며 "제도 개선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아, 여러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