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이번에 집계한 부실채권(고정이하여신)이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는데 있다. 수면 위로 솟은 빙산보다 더 큰 빙산이 수면 아래 존재하듯, 잠재 부실채권 또한 만만치 않은 규모로 위협적인 존재가 되고 있다.
기업 구조조정은 이제 막 시작단계다. 조선·해운에 대한 구조조정을 본격화하면서 부실채권이 쏟아질 가능성이 커졌다. 이미 구조조정을 시작했지만 대우조선해양의 경우처럼 여러 가지 이유로 부실채권으로 떨어뜨리지 못한 데까지 고려하면 잠재 위험은 더 큰 상태다. 게다가 조선·해운 익스포져를 고려하면 특수은행뿐 아니라 시중은행도 안심할 순 없다.
◇ 추가 충당금 적립 요인 수두룩
최근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 STX조선해양만 봐도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여신건전성 분류상 고정으로 분류했다. 통상 은행은 여신건전성에 따라 ▲정상(0.85%) ▲요주의(7%) ▲고정(20%) ▲회수의문(50%) ▲추정손실(100%) 순으로 분류하고, 충당금을 쌓는다. 여력도 부족하지만 상황을 낙관적으로만 보다가 충당금을 절반도 채 쌓지 못했다. STX조선의 법정관리로 충당금 부담은 더욱 커진 상태다.
농협은행도 1조 3000억원을 회수의문으로 분류했는데 이 가운데 5470억원을 상각하고 남은 잔액 7743억원에 대해 불과 1180억원만 쌓아놨다.
현대상선는 최근 채권단의 자율협약 추진을 위해 용선료 인하 등 어려운 관문을 하나씩 넘어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기업 정상화까지는 갈 길이 멀고, 불투명한 상태다. 보수적인 관점에서 우리은행과 국민은행, 신한은행은 이미 전액 충당금을 쌓았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여전히 고정으로 분류하고 일부만 쌓아놨다.
여전히 회생과 법정관리의 기로에 서 있는 한진해운 역시 일부 시중은행만 전액 충당금을 쌓았다. 산업, 농협은행은 각각 고정, KEB하나은행은 요주의로 분류해 추가 충당금 부담이 크다.
◇ 부실채권인듯 아닌듯
▲ 자료: 각 은행 |
대우조선은 현재까지 대부분 정상여신으로 분류해 부실채권에 포함하지 않았다. 당국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눈치 때문에 보수적인 충당금 적립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나마 국민은행에 이어 신한은행이 1일 기준으로 요주의로 떨어뜨렸다.
그동안 정부와 산업은행은 지난해 4조 2000억원의 신규자금을 지원하면서 여전히 정상 기업(여신)이라는 점을 강조해 왔지만 올해들어 사실상 수주 제로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닥뜨리면서 계속기업으로서의 가치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재실사를 통한 추가 자구안 마련과 산업재편이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익스포져를 가진 은행 입장에선 충당금 적립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게다가 최근의 업황 등을 고려하면 부실채권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빅3 안에 포함되는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도 최근 각각의 주채권은행과 논의해 자구안을 사실상 확정지은 상태이지만 그동안 주채권은행과 재무개선약정을 맺고도 생사기로에 선 현대상선 한진해운 등의 기업을 생각하면, 반드시 낙관할 수만도 없다. 특히 수주 절벽 등 업황 개선이 어렵고, 공급과잉 상태에서 산업재편 등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지 않으면 이 역시 기업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이외에도 금융감독원과 채권은행의 주채무계열 평가가 곧 마무리되고, 예년보다 엄정한 잣대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신용위험평가 등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면서 부실채권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시중은행도 안심 못해, 가계부채 전이 가능성까지
시중은행도 안심할 수는 없다. 이미 대부분의 충당금을 쌓은 대선·성동·STX·SPP조선 등 중소형 조선사를 제외해도 특수은행 만큼은 아니지만 조선·해운업종 익스포져가 상당하다.
우리은행의 조선·해운 익스포져는 5조2000억원인데, 2분기중 한진계열(한진중공업·한진해운) 500억원, 대우조선해양 요주의 분류때 1000억원 등 1500억원 정도 충당금을 예상하고 있다. 물론 이 역시 삼성중공업이나 현대중공업의 부실 가능성을 배제한 낙관적인 전망에 기초한 것이다.
하나금융투자 등의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KEB하나은행(하나, 외환 단순합산)의 조선·해운 익스포져는 4조3000억원에 달하고 신한은행 3조6000억원, 국민은행도 2조5000억원으로 적지 않은 규모다.
박기홍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기업금융팀장은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조선·해운, 철강 등의 중후장대 산업은 전후방 연계산업이고, 이것이 대기업에서 중소기업 및 협력업체 등으로 파급효과가 크다"며 "지금은 이런 파급효과를 고려하지 않은 상태인데, 구조조정 덩어리가 자꾸 커지면 시중은행들도 타격을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최악의 경우 가계부채 전이 가능성도 거론된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실업 증가로 인한 가계부채 동반 부실 우려와 함께 부실채권 확대에 따른 부동산 가격 하락을 우려하기도 한다. 김동환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결국 NPL(부실채권)시장으로 기업들의 담보 물건들이 쏟아지면 부동산 가격하락을 불러올 수 있다"며 "이 경우 시중은행 가계부채로 불똥이 튈 수 있고, 시중은행으로 부실이 전이될 가능성이 생긴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