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은 과점주주 체제로 지배구조가 완전히 탈바꿈하면서, 앞으로 1년간 드라마틱한 변화가 예상된다.
당장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연임의 기로에 서 있다. 외부 입김을 배제한 채 은행장을 뽑는 건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어서 의미가 남다르다. 그동안 성과에 비춰볼 때 이 행장의 연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지만, 선임 권한을 쥐고 있는 새로운 사외이사들이 어떤 결론을 내릴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우리은행은 내년 한 해 새로운 은행장 선임 외에 과점주주 지배구조의 안착과 금융지주회사 전환이라는 큰 과제도 풀어야 한다. 특히 조기대선과 함께 정국이 급변할 경우 우리은행은 더욱 혹독한 도전에 직면할 수도 있다. 오는 30일 주총에서 새로 선임된 사외이사들과 이들이 뽑은 은행장이 제대로 방향을 잡아가는 방법이 최선이지만, 아직까진 이광구 행장도, 과점주주 사외이사도, 우리은행 자체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에 놓여 있다.
◇ 외부 입김 없는 첫 행장 선임‥"예측 불가"
우리은행 과점주주들이 추천한 사외이사 5명을 주축으로 한 임원추천위원회(이하 임추위)는 내년 3월까지 차기 우리은행장을 선임한다.
지난 16년간 정부나 외부 입김에 따라 좌우됐던 은행장 선임이 사실상 처음으로 외부 입김을 배제한 채 진행된다. 차기 은행장은 전적으로 이들 5명의 사외이사의 판단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아직까진 그 어떤 예단도 쉽지 않다.
사외이사 내정자들은 이미 각각 나름대로 현 이광구 행장을 비롯해 은행장 후보군에 대한 평판과 검증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당장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하마평엔 이 행장을 비롯해 이동건 경영지원그룹장, 김승규 전 부사장 등이 꾸준히 오르내리고 있다.
한 사외이사 내정자는 이번 주 초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아직 행장이나 경영진과 상견례도 하지 않아 잘 알지는 못한다"면서 "외부 청탁 등이 많다고 들었는데 이런 점을 완화하고, 내부 갈등을 잘 조율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아직은 원론적인 수준의 언급이지만, 그동안 우리은행 내부 문제를 의식하고 있는 듯한 발언이어서 주목된다.
◇ 민영화 성공 이 행장, 연임도 자신감
금융권에선 아직까진 이 행장의 연임을 점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과점주주 방식 매각을 성사시킨 일등공신 중 한명인 만큼 연임에 결정적인 프리미엄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주가 상승이나 실적 등 지난 2년간의 성과에 대한 평가도 긍정적이다.
이 행장은 우리은행 민영화를 조건으로 애초 3년의 임기를 2년으로 줄인 바 있다. 이 때문에 1년을 더 연장하면서 경영 능력을 평가하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5명의 사외이사 내정자 대부분이 우리은행의 내부 사정이나 현재 경영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이라는 점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싣는다. 카드가 다양하지 않은 만큼 이미 검증된 카드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실제로 노성태 한화생명 고문의 경우 지난 2004년 우리금융 사외이사를 1년 맡으면서 유일하게 내부 분위기를 어느 정도 알고 있긴 하지만, 이 역시 10년이 훌쩍 지난 일이다. 박상용 연세대 교수도 직전 공적자금관리위원장을 맡았고, 과점주주 매각방식을 제안하는 등 우리은행과 연을 맺기는 했지만 내부 사정을 알기엔 한계가 있었다.
다만 2년 전 이맘 때쯤 은행장 선임 당시 서강금융인회(서금회)나 유력 정치인의 도움을 받았다는 논란은 두고두고 이 행장의 발목을 잡으면서 약점으로 작용하는 분위기다.
▲ 그래픽 유상연 기자 |
◇ 지주 전환 과정서 겸임 이슈도 불거질 듯
차기 은행장 선임이 과점주주 체제의 첫 시험대이지만, 과점주주 모델이 제대로 안착하고 성공하려면 더 큰 시험대가 기다리고 있다.
지주회사 전환이 대표적이다. 이 행장은 과점주주 매각 성공 직후 사내방송을 통해 지주회사 전환을 언급한 만큼 연임에 성공하면 지주사 전환 역시 속도를 낼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종금 자회사인 우리종합금융의 증권사 전환도 거론될 듯 하다. 금융위원회가 겸업화와 시너지를 강화하는 쪽으로 금융지주 발전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도 지주회사 전환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금융지주 전환이 이뤄질 경우 지주 회장과 은행장 겸임 이슈도 불거질 수 있다. 우리은행을 비롯해 7개 계열사가 금융지주 밑으로 들어가는 구조이지만, 결국 은행 중심의 지주사인 만큼 일단 겸임 체제가 유력해 보인다. 다만 이 역시 합리적인 논의와는 별개로, KB금융처럼 예상치 못한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과점주주 체제 내년 중반 이후 더 큰 시험대
아직까진 과점주주 지배구조 모델에 대한 기대가 높다. 가장 큰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는 사외이사들의 독립성 역시 당분간 유지될 전망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15일 사외이사를 추천한 과점주주 5개사 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서 자율경영 이행 의지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도 "사외이사 면면을 볼 때 외압을 넣는 식으로 개입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박상용 교수는 과점주주 체제를 설계했던 당사자인 만큼 누구보다 이 모델의 성공을 바라는 인물이다. 신상훈 전 사장 역시 외압이나 청탁이 상대적으로 덜한 신한금융에서 30년 넘게 일하면서 원칙을 중시한 인물로 평가된다. 게다가 유일하게 외국인이자 국제 금융계에서 잔뼈가 굵은 톈즈핑(田志平) 푸푸다오허(FUPU DAOHE) 투자관리유한공사 부총경리까지. 인물의 면면만 보면 그런 예상도 가능하다.
다만 내년 조기대선이 치러진 이후 상황은 장담하기 어렵다. 자율경영을 약속한 임종룡 위원장도 지금의 자리에 없을 가능성이 크다.
예금보험공사의 잔여지분 21.4%를 명분으로 또다시 구태가 재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16년간 이뤄졌던 구태를 단번에 없애는 것 역시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얘기도 나온다. 결국, 과점주주와 사외이사가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둘린다면 과점주주 모델 실험도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