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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삐 풀린 가계부채…다급해진 정부·정치권

  • 2017.03.18(토) 11:42

물불 안 가리는 당국, 금융사 전방위 압박
대선주자들도 관리책 제시…실효성은 의문

"가계부채 총량을 관리하는 것은 아니다. 금리를 산정하는 체계가 합리적인지를 보는 것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 2016년 12월 1일 기자간담회)

"가계부채 영업 확대하지 말라. 증가세가 과도하면 경영진 면담을 하겠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 2017년 3월 1일 금융협회장 간담회)



가계부채 문제를 대하는 금융당국의 태도가 몇 달 만에 확 달라졌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겉으로는 '대출 절벽'을 불러올 수 있는 언급은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은행의 일반 주택담보대출부터 시작해 집단대출, 제2금융권 대출 등 서서히 대출 규제의 강도를 높이긴 했지만,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모양새는 피해왔다.

하지만 이젠 물불을 가리지 않는 모습이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과도한 금융사는 경영진 면담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거나, 취약 계층의 대출 연체 이자를 감면해주는 등의 다소 '과격한' 정책 추진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만큼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한 가계부채 부실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도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지난 16일 가계부채 총량관리제 도입과 대부업 이자율 인하 등을 골자로 하는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내놨고, 다른 주자들 역시 관련 대책을 예고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내놓는 대책들은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여전하다.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줄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억제한다고 해도 부작용이 클 것이라는 지적이다. 범정부 차원에서 더욱 근본적이고 세밀한 정책들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 금융위와 금감원은 정은보 부위원장 주재로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합동 리스크 점검회의를 개최했다.

◇ 저축은행 등 2금융권 규제 강도 높이는 정부

금융위원회는 오는 19일 저축은행과 상호금융사, 여신전문금융사 등 제2금융권 건전성 관리 강화 방안을 내놓는다. 제2금융권 금융사들이 앞으로 고위험 대출에 대해 충당금을 더 넉넉하게 쌓으라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대책은 가계대출이 제2금융사들을 중심으로 급증하고 있는 데 따른 대응책으로 풀이된다. 이들 금융사에는 신용도가 떨어지는 대출자들이 몰리는 데다가 전체 대출 규모 증가세가 빨라지면서 부실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정부는 최근 들어 제2금융권 이용 대출자 등 취약 계층에 대한 관리 강도를 부쩍 강화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이달 중 미소금융과 햇살론, 새희망홀씨 등 정책금융상품 공급 확대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또 취약층의 연체 이자를 깎아주거나 원금이 아닌 이자부터 갚게 할 수 있도록 하는 '한계 차주 연체부담 완화 방안' 등도 추진하고 있다.

한계 차주 연체부담 완화 방안의 경우 '금융 원칙'을 훼손하는 면이 있어 업계의 반발이 크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예상보다 반발이 커서 쉽지는 않을 것 같다"면서도 "이달 중에 대책을 내놓을 수 있게 여러 방안을 함께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추세는 더욱 강해질 가능성이 크다. 오는 5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 대선주자가 강력한 대책을 예고하고 있어서다. 유력 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는 16일 가계부채 총량관리제를 도입하고 대부업 이자율을 현행 27.9%에서 20%로 낮추는 등의 대책을 내놨다. 같은 당 다른 주자들과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국민의당 역시 일제히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취약계층 가계대출 충격을 우려하며 강도 높은 대책을 예고하고 있다.

◇ "무작정 규제 강화, 또 다른 풍선효과 우려"


정부와 정치권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시장 안팎에서는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우선 제2금융권 대출 규제를 무작정 강화하는 데 따른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2금융권 건전성을 강화할 경우 금융사 자체의 부실화는 막을 수 있다. 대출자들 입장에선 앞으로 대출받기가 더 까다로워진다는 문제가 생긴다.

이에 따라 저신용자들은 은행은 물론 저축은행과 상호금융사에서도 대출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 불법 사채 등으로 몰릴 가능성이 커진다. 문 전 대표가 내놓은 대출 총량 관리나 대부업 최고금리 인하 방안 역시 금융사들의 대출 기피 현상을 부를 수 있어, 같은 부작용이 우려된다.

▲ 자료=LG경제연구원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출규제의 강도를 높이면 공식 통계상의 부채 증가율은 결국 낮아질 것"이라며 "그러나 그 과정에서 비제도권 대출로 밀려난 취약계층이 급증하면서 리스크는 더욱 심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대출 수요 자체가 많기 때문"이라며 "수요가 어느 계층에서 왜 늘어나는지 정확한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간 소득 증진 등을 통한 내수 진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은행은 정부가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내놓은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가 자칫 자영업자를 위기로 내몰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오세진 산업은행 연구원은 "DSR 등의 규제 강화는 오히려 자영업자의 한계가구 진입을 더욱 촉진할 가능성이 있다"며 "자영업자 부실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보다 민간소비 부진에 있으므로 내수 진작을 위한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집중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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