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정기주총 시즌이 다가오면서 금융계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금융당국과 금융사 모두 예민해진 모습이다. 긴장도를 끌어올린 화두는 '금융 지배구조 개선'. 같은 이슈를 놓고 당국과 금융업계가 다른 해석을 하며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다. 당국은 '금융업 발전을 위한 제도개선'으로 쓰고, 금융지주사들은 '제도개선을 앞세운 최고경영진 물갈이'라고 읽는다. 주주총회 결과는 어떨까?
특히 올해 금융권 주총은 고위경영층(CEO, 사외이사) 임기가 대거 만료되면서 교체 폭이 큰 관심이다. 이 상황에서 당국-금융업계 갈등구도까지 가세하면서 상황은 '시계제로'다. 주총을 앞두고 금융지주와 은행, 보험, 저축은행, 여신금융 등 금융사들의 지배구조 현황, 최고경영진 인사를 좌우할 핵심 이슈를 정리한다. [편집자]
최근 열린 KB금융지주 이사회에 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KB금융은 7명의 사외이사중 2명을 오는 3월 주주총회에서 교체할 계획이었지만 한 직원의 '실수'로 한명의 사외이사가 더 물러나야 했기 때문이다. 작년말 KB금융 직원이 금융감독원에 사외이사 평가를 보고하면서 사외이사 점수를 잘못보고한 것이 드러난 여파였다.
한 KB금융 사외이사는 "원래 사외이사 2명이 그만두려하다가 한명이 추가로 사퇴하게 됐다"며 "억지로 밀어낸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후 KB금융 측은 "사외이사 3명이 일신상의 이유로 중임을 희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 [그래픽= 김용민 기자] |
◇ 킹메이커 29명 임기만료…연임 여부 관심
대부분 뚜렷한 대주주가 없는 우리나라 금융회사는 사외이사가 '킹메이커'다. 사외이사는 회장을 뽑는 후보추천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해 차기 후보자를 평가·선정한다. 금융지주 사외이사 교체 시기마다 이목이 쏠리는 이유도 사외이사를 누구로 뽑느냐에 따라 차기 회장을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신한·하나·농협 4대금융지주와 우리은행(금융지주와 합병)의 사외이사 총 33명중 올해 임기가 만료되는 인사는 29명이다. 다음달 신한금융지주 8명, KB금융 6명, 하나금융지주 6명, 농협금융지주 4명 등 사외이사가 임기가 끝난다. 우리은행 사외이사 5명 임기는 올해 12월까지다.
사외이사 임기가 만료된다고 모두 물갈이되는 것은 아니다. 최대 5~6년까지 연임할 수 있다. 올해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연임될지, 신임 사외이사로 교체될지 결정된다.
현재까지 교체가 확정된 사외이사는 모두 5명이다. KB금융 최영휘·이병남·김유니스경희 3명은 지난달 연임 포기 의사를 밝혔고, 신한금융 이상경·이정일 사외이사는 최장 임기기간(6년)이 끝나 연임이 불가능하다.
나머지 사외이사 24명이 얼마나 연임될지는 미지수다. 다만 업계는 최고경영자가 교체되지 않는 이상 사외이사가 대폭 물갈이될 가능성은 작다고 보고 있다.
▲ [그래픽= 김용민 기자] |
◇ 눈치보는 킹메이커
문제는 금융지주 사외이사가 킹메이커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논란이다. 금융당국은 사외이사가 경영자를 감시·감독해야 하는데 이사회에선 거수기로 전락하고 최고경영자 연임땐 공정성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작년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CEO 스스로 가까운 분들로 이사회를 구성해 본인의 연임을 유리하게 짠다"며 셀프 연임 논란에 불을 지폈다. 최근 금감원은 금융사 CEO 선임절차, 경영승계 등을 집중 점검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사정권에 들어온 곳은 KB금융과 하나금융이다. 두 회사는 국민연금이 지분 9%씩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주인없는 회사로 사외이사가 킹메이커 역할을 맡고 있다. 작년말까지 두 금융지주 회장은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사추위) 위원으로 참석해 사외이사 선정에 관여했다. 최근 셀프 연임 논란이 커지자 윤종규 KB금융 회장과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사추위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히며 금융당국의 요구를 수용했다.
이와 관련 KB금융과 하나금융은 금융당국과 마찰을 빚고 있다. 하나금융은 김정태 회장의 3연임 선정 과정에서, KB금융은 사외이사 평가 보고 과정에서 각각 금감원과 신경전을 벌였다. 금감원 감사 결과, 두 금융지주 모두 채용비리 의혹이 제기됐다. 두 금융회사는 "과도한 관치"라고, 금융당국은 "할 일을 하고 있다"고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KB금융 관계자는 "회사 주식을 단 한주라도 가진 주주는 사외이사를 추천할 수 있고, 인선자문위원들이 평가해 사추위에 사외이사 후보를 걸러 올리고 있다"며 공정성 시비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KB금융은 노동조합이 사외이사를 추천하면서 고민이 더 커지고 있다. 노조는 KB금융 지분 0.47%를 보유하고 있는데, 금융회사 지배구조 법에 따르면 금융사의 지분 0.1% 이상을 가진 주주는 사외이사를 추천할 수 있다. 노조는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를 후보로 내세운 상황이다. 노조는 "노조 추천 사외이사가 이사회 독립성을 강화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일각에서는 "특정 이해관계자 이익만 추구하고 주주자본주의 근간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주도적인 주주가 있는 3곳은 조용한 편이다. 우리은행은 한국투자증권 등 5개 과점주주가 사외이사를 추천한다. 지분 18.52%를 가진 예금보험공사는 비상임이사만 추천한다. 재일교포 주주가 있는 신한금융은 사외이사 10명중 4명을 재일교포 주주로 뽑고 있다. 농협금융지주도 대주주 농협중앙회가 사외이사를 구성하고 있다. 3곳 모두 최근에는 금융당국과 큰 마찰이 없는 상황이다.
사외이사 선임 절차와 관련 정일묵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원은 "사추위 전원을 사외이사로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른 사추위 구성요건은 사외이사 과반수이므로 대표이사가 사추위 위원인 것이 위법은 아니다"면서도 "회사를 감독하는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는 위원회는 독립적인 사외이사로만 구성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