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산업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 핵심 사업의 데이터는 일제히 '역성장'을 보여주고 있고 무엇보다 위기의 내용이 복합적이어서 실타래를 풀기가 쉽지 않다. 보험산업의 현재를 진단하고 어디로 가야할 지 모색해본다. [편집자]
"팔수록 손해, 애물단지다."
고객 접점 역할을 하며 보험사 효자상품 노릇을 했던 실손의료보험, 자동차보험을 이르는 말이다.
자동차보험은 차를 가진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입해야하는 의무보험으로 2000만명 이상이 가입돼 있다. 실손보험은 3400만명 이상이 가입한 상품으로 국민보험이라 불린다.
문제는 이들 상품의 손해율이 치솟으며 보험업계에 심각한 영업손실을 가져오고 있다는 점이다.
◇ 치솟는 손해율…올해 車보험 적자 1조5000억원 예상
손보업계의 가장 큰 고민은 자동차보험이다. 지난해부터 상승기류를 타던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올해 두차례 보험료 인상에도 불구하고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올해 10월말 기준 주요 손보사들의 자동차보험 누적 손해율은 90%를 이미 넘어섰거나 목전에 두고 있다. 10월 한달만 보면 대부분의 보험사들의 손해율이 100%까지 치솟았다. 일부는 140%를 넘긴 곳도 있다.
시장점유율 상위 6개사 가운데 손해율이 가장 높은 손보사는 한화손보로 올해 누적손해율이 93.5%로 집계됐다. 전년동기 대비 7.6%포인트 상승했다.
손해율은 고객으로부터 받은 보험료 대비 지급한 보험금의 비율이다. 사업비를 포함해 100%를 넘어서면 보험사가 손실을 보는 구조다. 통상 적정 손해율은 77~78% 정도인데, 이를 훨씬 웃돌고 있는 것이다.
다른 보험사들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같은기간 KB손보의 누적 손해율은 90%, 이어 현대해상 89.8%, DB손보 89.7%, 삼성화재 89.1%, 메리츠화재 86.8% 순이다. 자동차보험 사업비가 20%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받은 보험료 대비 10% 가량 보험금이 더 나가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높은 손해율이 지속됨에 따라 자동차보험은 만성적자 상품으로 전락했다. 10년여간 자동차보험 누적적자만 7조원이 넘는데 올해는 1조5000억원에 달하는 역대급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뚜렷한 개선책이 나오지 않으면 내년에도 비슷한 수준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과거 80%대 손해율이 기본이었다면 현재는 90%가 기본이 됐다"며 "올해 보험료를 두차례 올렸지만 이후에 인상요인들이 계속해서 늘어나면서 손해율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교통사고 경상환자의 한방진료가 늘어나면서 손해율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며 "양방병원 입원으로 나가는 비용과 한방 통원 비용이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최근 국산차 부품비, 도장용 도료(페인트) 비용이 크게 오르면서 추가적인 손해율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외산차 부품비가 국산차 대비 크게 높아 손해율 주범으로 떠올랐는데 최근 국산차 수리비가 외산차와 비슷한 수준으로 올랐다"며 "부품비, 도료비가 큰폭으로 증가하면서 손해율을 높이고 있는데 이를 보험료 인상에 반영하기는 쉽지 않은 구조여서 손해율을 안정화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실제 한 손보사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 지급된 부품비가 전년대비 6.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37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전체 손보사로 확대할 경우 부품비 증가규모는 수천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 "차보험료 10% 올려도 적자 절반도 해소 안돼"
KB손보를 비롯해 현대해상, 삼성화재가 지난주 자동차보험료 인상을 위한 요율검증을 보험개발원에 의뢰한 상태다. 검증을 의뢰한 인상요율은 5% 내외로 알려졌다.
보험료 인상이 5% 수준에서 이뤄진다고 해도 천정부지로 치솟은 손해율을 낮추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5% 인상시 손해율이 6%포인트 정도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합산비율(손해율+사업비)이 110%에 육박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보험료를 인상해도 계속해서 손실을 보는 구조인 셈이다.
문제는 5% 인상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자동차보험은 물가지수에 반영되기 때문에 정부가 정책적으로 가격인상을 억누르고 있다. 실제 올해 초 정비공임 증가에 따른 보험료 인상도 당초 보험사들이 예상한 규모의 3분의 1수준으로 제동이 걸린바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현재 90%가 넘는 손해율로 인해 대부분 8~10% 가량의 보험료 인상을 원하고 있지만 당국이 받아주지 않을 것을 알고 타협점을 찾은 것"이라며 "실상은 보험료를 10% 인상한다고 해도 적자의 절반도 해소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승도 보험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수리비, 부품비 등 원가가 늘어나는 현상은 통제가 되지 않는 부분이기 때문에 내년 더 크게 늘어날 것이고 이같은 상황을 반영해야 한다는 점에서 실상 5% 인상은 부족한 수준"이라며 "문제는 보험료 인상에 따른 국민적 저항이 큰 만큼 보험료 인상뿐 아니라 불필요한 보험금 누수를 막을 수 있도록 범정부 차원의 손해율 안정화를 위한 방안마련이 매우 절실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 실손보험료,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 작용
3400만명이 가입하며 국민보험이라 불리는 실손보험의 경우 보험료 산출시 사용하는 위험손해율이 130%를 넘어선 상태다. 그러나 정부의 보험료 권고안이 늦어지면서 인상규모도 확정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실손보험료는 보건복지부와 금융위원회, 보건사회연구원과 보험연구원 등이 참여하는 공·사보험정책협의체에서 건강보험과 실손보험 상관관계를 분석해 실손보험료 인상폭을 결정하고, 각 보험사는 이를 반영해 보험료 인상 규모를 결정하게 된다.
문제는 손해율 안정화를 위해 보험료를 조정해야 하는데 협의체 결과가 늦어지면서 눈치만 보는 상황이라는 것.
실손보험료 조정에 정부가 이처럼 직접 나서는 이유는 건강보험 보장성강화 정책인 일명 '문재인 케어' 효과로 실손보험이 반사이익을 볼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의 보장성규모가 확대되는 만큼 실손보험금 지급금이 줄어들 것으로 본 것이다.
협의체는 지난해 이를 바탕으로 2017년 4월부터 판매된 새 실손보험료를 8.6% 인하하고, 2009년 9월 표준화 이후 판매된 보험의 보험료를 6~12% 인상, 표준화 이전 보험의 보험료를 8~12% 인상하라고 권고했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반사효과를 이유로 보험료 인상을 억제한 것인데 예상은 빗나갔다. 실손보험 손해율은 오히려 이전 대비 급격하게 높아지는 모습이다.
올해 상반기 실손보험 위험손해율은 129.1%로 2016년 131.3% 이후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3분기에는 이미 130%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연평균 15%가량 상승해오던 실손보험 손해액도 올해들어 전년대비 20% 수준으로 확대됐다.
올해 상반기 보험사가 거둬들인 실손보험 위험보험료는 3조9700억원, 손해액은 1.3배에 달하는 5조1200억원으로 상반기 적자만 1조1500억원 규모다. 올해 전체는 1조7000억원 규모의 적자가 날 것으로 전해지며 보험업계 수익악화 주범으로 떠오르고 있다.
협의체가 언제 열릴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협의체가 언제 열릴지 아직 미정인 상태"라며 "일정이 정해지지 않은 만큼 연내 가능할지, 내년으로 넘어갈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따른 실손보험료 절감효과가 정부의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면서 발표가 늦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건강보험 재정 악화로 건강보험료를 인상해야 하는 상황에서 실손보험료 인상까지 내놓기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것.
보험업계 관계자는 "문케어는 국민들이 보다 많은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병원들이 비급여를 확대하면서 실상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보장이 늘어나는 것을 공짜로 생각하는데 건보재정 악화를 비롯해 실손보험 손해율이 올라가면 이는 결국 가입자가 부담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불필요한 의료쇼핑 등을 억제하는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고위 관계자는 "보험업계 내에서 지급보험금을 줄이고 손해율 관리에도 힘써야겠지만 그럼에도 잡히지 않는 손해율에 대해서는 요율을 적절히 반영해야 한다"며 "요율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것들이 쌓이면 나중에 더 큰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태열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실손보험은 급여의 본인부담금과 비급여를 보장하는데, 급여의 본인부담금이 빠르게 증가하는데 줄어야 하는 비급여 진료비도 점점 늘어나는 상황"이라며 "단순히 실손보험 제도에 한정해 제도개선을 할 것이 아니라 도덕적해이나 진료행위 등 소비자, 의료계에도 초점을 맞춰 함께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