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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손보험료 9% 올리면 뭐하나"…보험업계 불만 왜?

  • 2020.01.09(목) 14:44

손보사들 표준화 실손·신실손 요율 조정 중
비중 큰 표준화실손 9%대 인상-신실손은 인하
인상폭 당국 의견 반영..업계 "적자 비해 인상폭 적다"

보험업계가 실손 보험료 조정 작업에 한창이다. 2009년 하반기부터 2017년 상반기까지 8년여간 판매된 이른바 표준화 실손보험 요율은 올리고 그 이후에 출시된 신(新)실손보험 요율은 내리는 게 골자다. 주요 보험사들은 현재 관련 작업을 마쳤거나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실손보험 요율조정은 만성적 적자 상태를 개선하고 과잉진료에 따른 실손보험금 과다청구 등의 문제를 해결해 궁극적으로 소비자 혜택을 확대하겠다는 금융당국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보험업계는 실손보험 적자상태를 감안하면 인상폭이 적다며 불만이다.

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화재·메리츠화재·DB손해보험·현대해상·KB손해보험 등 국내 주요 손해보험사 대부분은 이달초 표준화 실손 요율 인상 작업을 마무리했다. 인상 폭은 상품마다 제각각이지만 대체로 9% 후반대인 것으로 파악됐다.

아울러 신실손보험에 대해서는 요율을 인하하거나 보험 운영에 드는 사업비용 축소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업계는 올 4월부터 구(舊)실손보험 요율도 9%대 선에서 인상하겠다는 계획이다.

실손보험은 세가지로 구분한다. 2009년 10월 이전 출시된 구실손보험, 2009년 10월 등장한 표준화 실손, 2017년 4월 나온 신실손 등이다. 대개 오래된 상품일수록 보장범위가 넓고 자기부담금 비중이 작아 가입자에겐 유리하지만, 과잉진료에 따른 보험료 과다 청구 등의 문제로 보험사에 불리한 경우가 많다.

세가지 실손상품 중 현재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표준화 실손이다. 손보사 대부분은 현재 신실손 판매에 주력하고 있지만 판매 실적이 미미해 표준화 실손과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문제는 보험사가 구실손과 표준화 실손을 팔아 적자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실손보험은 주기적으로 갱신하도록 설계됐기 때문에 보험사는 꾸준히 보험료 재산정과 고객 안내 등에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여타 보험에 비해 청구율도 높아 주머니에 남는 돈이 별로 없다.

실제 지난해 보험연구원이 집계한 전체 실손보험 손해율은 지난해 상반기 기준 129.1%에 달한다. 신실손은 흑자를 내고 있지만, 전체 실손 내 비중이 미미해 신실손을 배제해도 전체 손해율은 120%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통상 손해율이 100% 이상이면 적자가 났다고 본다. 손해율은 2010년 100%대에 올라 2016년 131.3%까지 치솟은 뒤 이후 현재까지 120%대를 유지하고 있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최근 10여년 간 적자 상태가 지속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업계는 실손보험과 같은 장기보험의 경우 손해율만큼 보험료를 올려 수지를 맞춰야 한다는 데 입을 모은다. 손해율이 129.1%라면 100%를 초과하는 29.1%만큼 보험료를 올려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에 따라 손보업계는 지난해 표준화 실손 요율 인상률을 20% 안팎 수준으로 제시해왔다. 하지만 금융 당국 측은 업계가 스스로 산출한 손해율이 높다는 이유로 보험료를 올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보고 작년말 가이드라인을 통해 인상률을 9%대로 유지할 것을 제안했다.

다만 현재 건전성 이슈와 수익성 부진 등의 이유로 경영개선조치를 밟고 있는 MG손해보험·한화손해보험·흥국화재 등에는 예외적으로 두자릿수 인상을 허락했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 말을 종합하면 해당 손보사의 표준화 실손 요율 인상 폭은 두자릿수인 것으로 보인다.

손보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은 결국 허리띠를 조이라는 뜻"이라며 "아무리 두자릿수 인상이 필요하다고 해도 금융당국 뜻을 거스르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회사마다 사정이 다르고 상품도 제각각인데 인상률이 대부분 9%대에 머문 것 자체가 당국 눈치를 봤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요율 조정을 성급하게 밀어붙였다는 푸념도 나온다. 실손보험료의 산정 기준이 되는 참조요율은 통상 9월에 발표되는데 지난해의 경우 정책협의체 운영으로 발표 시기가 두달가량 늦어지면서 업계와 당국 사이 요율 산정 협의가 촉박하게 진행됐다는 주장이다.

작년말부터 올해초까지 업계에서는 NH농협손해보험이 실손 상품 요율조정에 차질을 빚어 일부 상품 판매를 중단했다는 이야기가 도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농협손보 측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그만큼 업계가 불안했다는 방증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이번 요율 변경을 통해 가입자가 혜택을 볼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표준화 실손 요율 인상과 신실손 요율 인하로 표준화 실손 가입자가 신실손으로 이동해야 보험료를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신실손은 주사 MRI 도수치료 등 과잉진료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항목을 특약으로 분리하고 자기부담금 비중을 높여 보험료를 대폭 낮춘 것이 특징이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손해보험연구실장은 "계약자와 보험사 모두 실손 상품은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밖에 없어 이번 조치가 업계 안팎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 향후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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