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이사회 의장인 파완 쿠마 고엔카 마힌드라 사장이 한국을 찾아 일자리위원회·산업은행 등 정부 관계자를 만나 손을 벌렸다. 그만큼 쌍용차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의미다.
쌍용차는 11분기 연속 적자가 지속되면서 자본잠식에 빠졌고 빚을 갚을 능력은 떨어지고 있다. 2009년 '쌍용차 사태' 직전의 재무상황보다도 더 악화된 상태다.
◇ 불안한 유동비율
작년 3분기 기준 쌍용차의 자본잠식률은 25.6%다. 영업악화로 쌓인 결손금(2711억원)이 자본금(7492억원) 일부를 갉아 먹었다는 얘기다. 작년 1~3분기 영업손실은 1821억원으로 적자가 11분기 연속 이어지고 있다. 부채비율(부채/자본)은 285.5%까지 상승했다.
단기부채 상황능력을 보여주는 유동비율은 52.9%에 머물렀다. 일년안에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유동자산)과 일년안에 갚아야할 빚(유동부채)을 나눈값으로 재무상황이 건전한 기업은 보통 100%가 넘는다. 작년 3분기 현대차 유동비율은 139.8%다. 쌍용차 부채 상환능력에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쌍용차의 재무상황이 얼마나 나빠졌는지는 '쌍용차 사태' 1년전인 2008년 재무상황과 비교해도 알수 있다. 2008년 3분기 쌍용차의 유동비율은 84.7%였다. 단기부채 상황능력이 11년전보다 더 떨어졌다는 얘기다. 당시 쌍용차의 영업손실은 1083억원 수준으로 실적도 더 나빠졌다. 당시는 자본잠식 상태도 아니었고 부채비율은 167.8% 수준으로 안정적이었다.
2008년말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쌍용차의 재무 건전성은 급속도로 악화됐다. 2008년 연간 당기순손실 3478억원이 발생했고 2008년 4분기 유동비율은 53.2%까지 떨어졌다. 자본잠식률은 84.5%에 이르렀다. 2009년 1월 쌍용차는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했고 그해 5월 쌍용차 사태로 이어졌다.
아직 작년 4분기 실적이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쌍용차 판매기록을 보면 고엔카 사장이 긴급하게 방한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작년 4분기 쌍용차 국내외 판매대수는 3만3872대로 전년동기대비 17.5% 감소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외부변수가 터지지 않았지만 구조적 불황에 빠진 국내 차 시장을 감안하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판매 부진으로 매출은 떨어지는 가운데 비용 부담은 오히려 늘고 있다. 만성적자 원인 중 하나다. 특히 기계·설비투자나 개발비 등을 여러해 나눠 비용으로 인식하는 상각비용 부담이 큰 상황이다. 쌍용차의 감가상각비와 무형자산상각비 총액은 2016년 1559억원, 2017년 1790억원, 2018년 2124억원, 2019년 3분기 1933억원 등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 명분 없는 채권자 산은
쌍용차의 대주주인 마힌드라는 한국GM과 비슷한 전략으로 정부에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해외 대주주가 한국을 찾은 점, 대주주와 함께 산은의 동반 지원을 요구한 점 등이다.
마린드라 측은 산은이 2700억원을 지원하면 자신들도 23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자금지원 계획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한국GM과 같은 방식으로 쌍용차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산은은 한국GM의 '주주'이면서 '채권자'였지만 쌍용차는 '채권자'일 뿐이다.
산은은 한국GM의 지분 17% 가량을 보유한 주주로, 부실경영에 지분만큼 책임을 지고 회사 정상화를 위해 자본금을 추가로 투입해야한다는 '투자 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쌍용차는 상황이 다르다. 산은은 쌍용차에 단기대출 1000억원과 장기대출 1500억원을 빌려준 채권자일뿐이다. 쌍용차 주식은 단 한주도 갖고 있지 않다. 최악의 경우에도 산은은 주주보다 우선해 채권을 회수하면 된다. 마힌드라 요구대로 혈세를 지원할 명분이 없는 셈이다.
정치적 셈법에 따라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산은이 쌍용차 지원에 나서게 되면 한국GM때보다 '혈세를 퍼준다'는 역풍이 더 거세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