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는 기업의 가치에 비해 저평가되어있는 주식을 사서 적정가치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업(業)이다. 투자자는 머리가 아닌 엉덩이로 수익을 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 기다림은 고달프다."
머스트자산운용이 2009년 8월 초 홈페이지 에세이란에 공개한 글의 일부분인데요. 해당 글은 투자 성과를 기다리는 투자자 유형 세 가지를 소개하면서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글을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나 자신이 사회 속에서 저평가 받을 때 어떻게 대처했는가? 세상에서 나의 가치(능력)를 알아줄 때까지 노력하며 기다리지 않았던가? 고달팠던가? …훗날 성공의 큰 밑바탕이 되는 기간이 아니었던가?"
고독함과 비장함이 엿보이는 이 글은 김두용 머스트자산운용 대표이사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1979년생인 김 대표는 우리나라 자산운용 업계에서 가치투자에 정통한 인물 중 한 명으로 거론되곤 합니다.
그는 서울대 주식연구동아리 출신으로 소개되곤 하는데요. 강성부 KCGI 대표, 황성환 타임폴리오자산운용 대표 등이 이 동아리를 거쳤습니다. 김 대표의 부인인 구은미 머스트홀딩스 대표와도 이곳에서 만났다고 전해집니다. 구 대표가 이끄는 머스트홀딩스는 현 머스트자산운용의 모태이기도 한데요. 머스트홀딩스의 옛 이름은 머스트인베스트먼트이었습니다.
김 대표와 구 대표가 머스트인베스트먼트를 설립한 해는 2006년. 이 부부는 올해로 경영 15년째를 맞습니다. 이들이 과거에 느꼈던 '투자의 고달픔'은 어느정도 해소가 됐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현재 머스트홀딩스 산하에는 3개 회사가 포진해 있습니다. 2015년 머스트홀딩스 투자일임·자문업이 분할돼 탄생한 머스트자산운용이 주력 회사입니다. 지난해 교육업체 북산을 인수해 머스트리드로 재편했습니다.
나머지 한 곳은 머스트삼일저축은행입니다. 머스트홀딩스는 2016년 61억원가량을 들여 포항 소재 삼일상호저축은행 지분 60.5%를 취득했는데요. 이후 지분매매와 유상증자 등의 과정을 거쳐 현재 지분 66.3%를 갖고 있습니다.
실적을 살펴볼까요. 현재 4300억원(AUM, 설정원본+계약금액) 가량을 굴리는 머스트자산운용은 독립 출범 이후 매년 많게는 110억원, 적게는 40억원의 순이익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머스트리드의 지난해 순익은 68억원입니다.
반면 머스트삼일저축의 실적은 상대적으로 초라합니다. 머스트홀딩스 산하에 들어온 이듬해 순이익 13억원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그 다음해도 14억원을 냈는데요. 작년엔 4억원으로 급감하고 올해 1분기엔 적자로 돌아섰습니다.
재무상황도 녹록지 않습니다. 머스트삼일저축은 2000년 2분기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습니다. 2003년 1분기 자본잠식 상태가 잠깐 해소되기도 했지만, 그 이후 현재까지 무려 20년 동안 만성적 결손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저축은행이 자본잠식에 빠졌다고 특별한 불이익이 따르는 건 아닙니다. 머스트삼일저축은 자본잠식 상태에서도 영업활동을 전개해 왔고요. 머스트삼일저축과 같은 지역에 있는 대아상호저축은행 역시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있는 등 재무구조가 좋지 않은 저축은행이 여럿입니다.
머스트홀딩스는 가치투자 차원에서 머스트삼일저축에 투자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언젠가 빛을 보게 될 날이 올 것으로 봤다는 것이죠.
그러다 최근 변화의 조짐이 감지됐습니다. 이달 초 무상감자 계획을 발표한 건데요. 액면가 5000원 보통주 2.8주를 1주로 병합하는 내용입니다. 올해 3월말 현재 176억원에 달하는 결손금을 해소해 자본잠식 상태를 벗어나겠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지금일까요. 머스트홀딩스가 머스트삼일저축의 지분을 취득한 후 새 경영진이 자리 잡은지 올해로 4년째입니다. 김홍천 머스트삼일저축 대표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회사의 재정 상태를 바로잡고 향후 잠재적 신규 투자자를 유치하려는 것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김 대표는 머스트삼일저축의 지분 25.0%를 갖고 있는 2대주주이기도 합니다.
주주들이 손실을 감내하면서 무상감자에 나설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텐데요. 신규 투자자를 받아 유상증자를 추진한다면 새로운 주주와 합의와 조정 등의 과정 등이 필요해집니다. 증자과정에서 경영권을 넘길 수도 있고요.
만약 매각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머스트홀딩스가 저축은행의 성장 가능성을 여기까지로 봤다는 방증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최근 저축은행 업계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습니다. 지역 경기가 악화일로로 치달으면서 소형 저축은행의 수익성은 급격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신협의 대출 영업 범위가 광역으로 넓어지면서 기존 업권 유지에도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올 하반기에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자산 건전성 문제가 올 하반기 불거질 것이란 우려도 나옵니다. 올해 초 금융당국이 저축은행 인수합병(M&A) 규제 완화도 거론한 상태라 업계 판도 변화도 예상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김두용 대표는 직접적 언급을 피했습니다. "설령 신규 투자자를 정해놓았다고 해도 내용을 밖에서 거론하는 게 적절치 않고, 정상적 경영활동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관련 가능성을 직접 거론하는 것도 부담스럽다"라는 이유에서입니다.
한가지 분명한 건 4년 전 인수 당시엔 가치가 더 오를 거라 생각했을 것이란 점입니다. 그렇다면 김 대표는 머스트삼일저축이 적정가치까지 올라오길 기다리고 있을까요, 아니면 다 올라왔거나 더 올라가긴 힘들다고 보고 있을까요.
머스트자산운용의 사훈은 '투자에 지속가능한 불로소득은 없다'입니다. 끊임없이 기회를 찾고 고민을 해야 한다는 의미겠지요. 과거 구구절절하게 표현했던 투자의 고달픔이 적어도 저축은행 투자에 있어선 현재 진행형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