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에 들어온 신입사원이 사실은 그룹 회장 아들이라고 합니다. 일반 직원들은 대부분 눈치채지 못했지만 관리자들은 대부분 알아차린 듯합니다. 회식자리에서 술에 취한 직원이 회사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을 즈음이면 슬그머니 그 신입사원의 눈치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도 원래 얌전한 건지 아니면 얌전한 척을 하는 건지 회장 아들은 일단 사내 분위기에 잘 녹아든 듯합니다.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이야기의 무대는 서울 구로구에 있는 웰컴금융그룹. 주인공은 손종주 웰컴금융그룹 회장의 장남 손대희 씨입니다. 1983년 생인 손 씨는 해외 MBA를 마치고 현재 그룹 내 주력 계열사에서 해외사업을 담당하는 팀장급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오너 2세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일터에선 소박하고 조용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라는군요.
손 씨 일화는 또 있습니다. 웰컴금융그룹은 여러 계열사 팀장급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현안을 논의하는데요. 손 씨는 이 자리에서도 조용히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참석자 모두가 손 씨가 오너 2세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 기세등등할 법도 한데 테이블 끝에 조용히 앉아 주로 다른 팀장들의 의견을 경청한다고 합니다.
손 씨의 일거수일투족은 손 회장의 지침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괜한 오해에 따른 사내 불화를 차단하고, 바닥부터 경영 능력을 다지라는 주문이 있었을 것이란 추측입니다. 손 회장이 2017년 웰컴저축은행 대표직을 내려놓은 후 손 회장 일가 중 경영 일선에 나선 인물이 없었다는 걸 보면 오너 역할에 충실하려는 의지가 엿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실 손 씨의 '경영권' 승계는 대부분 교통정리가 끝났습니다. 손 씨는 계열사 대부분의 지분을 갖고 있는데요. 우선 디에스홀딩스 지분 전량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디에스홀딩스 산하에는 렌탈업체 웰릭스렌탈과 대부업체 웰릭스에프앤아이 등이 포진해 있습니다. 웰릭스렌탈은 2016년 말 자본금 50억원으로 설립돼 지난해 순이익 218억원을 내면서 흑자 전환에 성공했습니다.
웰릭스파이낸셜그룹 지분 55%도 갖고 있습니다. 웰릭스파이낸셜그룹은 웰컴에프앤디(40%), 애니원캐피탈대부(42.86%), 웰컴크레디라인대부(13.79%), 케이엠엘벤처스(11.6%) 등 그룹 계열사 지분을 골고루 가진 투자회사입니다. 2017년엔 50억원을 출자해 전자지급결제업체 웰컴페이먼츠를 세우기도 했죠. 올해로 설립 3년째를 맞는 웰컴페이먼츠는 아직 적자 상태입니다.
그룹 내 노른자 계열사도 간접적으로 지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손 씨는 웰컴저축은행과 웰릭스캐피탈 등을 자회사로 둔 웰컴크레디라인대부 주주명단에 있는 디에스홀딩스와 웰릭스파이낸셜그룹, 케이엠엘벤처스 등 계열사 지분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요. 직접 지분을 가지고 있거나 한 다리 건너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죠.
물론 손 회장이 갖고 있는 그룹 계열사 지분이 아직 상당한 까닭에 승계작업이 마침표를 찍었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손 씨가 손 회장 못지않은 지분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외적 요건을 갖췄다면 이제 필요한 건 내적 능력일 터. 웰컴금융그룹의 기존 지배구조가 앞으로 계속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 분명해집니다.
웰컴금융그룹은 2014년 옛 예신저축은행과 예솔저축은행을 인수해 웰컴저축은행으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금융당국에 그룹 산하 대부업체를 2024년까지 모두 정리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최근 3~4년 사이 웰릭스렌탈, 웰컴페이먼츠 등 신생회사를 만들고, 웰컴크레디라인대부 산하에 캄보디아, 필리핀 법인을 잇따라 세우고 있는 것도 대부업 철수 이후 먹거리 확보에 대비한 행보입니다.
웰컴금융그룹 관계자는 "대부업체 청산 이후 남는 계열사들이 그룹의 핵심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지배구조의 정점에는 손 씨가 있는 거죠. 지금까지는 손 회장과 함께 그룹을 일으킨 금영섭 전무 등이 그룹 살림을 챙겨왔지만 2024년 이후 새로운 상황이 닥치면 본격적인 세대교체와 함께 강력한 컨트롤타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그룹 오너의 의중에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한 수순인데요. 그러다 보니 손 씨가 조만간 그룹 계열사 임원에 오르면서 경영 일선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그룹 재편의 신호탄이 될 것이란 전망도 조심스레 제기됩니다. 손 씨가 직접 지배하고 있는 웰릭스렌탈과 웰컴페이먼츠가 어떤 성과를 낼지도 관심사입니다.
손 씨가 현재 계열사 해외사업을 직접 챙기고 있다는 사실도 같은 맥락인데요. 그룹 차원의 신사업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죠. 손 회장을 비롯한 기존 중진들이 대부업을 기반으로 그룹의 기초를 닦았다면 2세대의 과제는 그룹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키는 일일 텐데요. 바닥부터 차근차근 경영수업을 쌓고 있는 손 씨가 과연 이 숙제를 잘 감당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