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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원금보장 놓고 날선 '대립각'   

  • 2021.08.04(수) 06:30

[은행vs증권 쩐의전쟁②]
은행, 노후생활보장·고객선택권 위해 포함 주장  
금투, 포함 수용했으나 '일부만'…논란 재점화

최근 은행과 증권사 간 영역 다툼이 치열하다.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는 와중에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을 계기로 자본시장으로 머니무브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어서다. 기회를 잡은 증권사들은 공격의 고삐를 죄고 있고, 은행들은 방어에 여념이 없다. 주요 쟁점들을 짚어봤다. [편집자]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 도입과 관련해 원리금보장형 상품 포함 여부를 놓고 은행과 금융투자업계 간 신경전이 치열하다. 

원리금보장 상품을 포함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온 금투업계가 최근 신속한 법안 통과를 위해 수용 의사를 밝혀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100%가 아닌 '일부 수용'이라는 입장이 전해지며 쟁점이 다시 불붙는 모습이다. 수용 의사를 밝힌 나재철 금융투자협회장은 "수익률 제고라는 본래 취지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는 단서를 달았다. 

은행은 노후보장 재원의 안전성과 고객의 선택권 보장을 위해 원금보장형 상품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수용이나 부분 도입은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제도 도입 법안이 논의 중인 국회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일부는 원리금보장 상품 포함을 찬성하는 분위기지만 일부는 DC형 구조 자체가 가입자가 아닌 은행에 이익을 몰아주는 구조라며 반박하고 있어 어느 쪽으로 추가 기울지 귀추가 주목된다. 

은행, 퇴직연금 머니무브 방어 '2차전' 돌입

대출 규제 강화, 빅테크의 은행업 진출로 시중 은행들은 기존 시장 사수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특히 매년 30조원씩 성장하고 있는 퇴직연금은 빼앗길 수 없는 시장이자 미래 먹거리다.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그러나 최근 증시 활황을 타고 증권사로 퇴직연금 머니무브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증권사들이 은행권 경쟁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주식매매가 가능한 중개형 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등장과 상장지수펀드(ETF)의 인기로 퇴직연금 자산이 증권사로 몰리고 있어서다.

은행들은 퇴직연금 고객과 자금 유출을 막기 위해 올해 초부터 ETF 실시간 매매 허용을 당국에 요청했으나 좌절됐다. 투심을 키운 고객잡기 전략이 이미 한차레 타격을 입은 셈이다. 

여기에 디폴트옵션이 도입되면 머니무브 가능성은 더 커진다. 은행들이 원리금보장상품을 내걸며 퇴직연금 시장 사수 2차전에 나선 이유다. 

51:20, 시장선점에도 낮은 수익률에 주도권 빼앗길라

지난해 퇴직연금 적립금은 255조5000억원으로 은행이 전체의 51%를 차지하며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어 생명보험 22.3%, 금융투자 20.2%, 손해보험 5.2% 순이다. 

이중 적립금 운용방법을 근로자가 직접 결정하는 확정기여형(DC)은 67조2000억원으로 이중 은행 비중이 63%다. 금융투자는 15.9%, 생명보험 13.8%, 손해보험 2.5% 순이다. 

디폴트옵션은 이러한 DC형에 별도로 운용지시를 내리지 않으면 사전에 회사와 근로자가 정한 운용방법대로 연금자산을 투자하도록 한 제도다.

그동안은 운용지시가 없으면 1%대 원리금보장 상품(예금)에 자동편입돼 수익률이 저조한 상태로 방치된다는 문제가 지적돼 왔다. 디폴트옵션은 이를 개선해 수익률을 끌어올리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실제 DC형 적립금(67조2000억원)의 83.3%인 56조원이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투입돼 있다. DC형의 최근 5년간 연환산 수익률은 2.14%, 이중 원리금보장형은 1.78%에 그쳤다. 

디폴트옵션 도입이 함께 논의되는 개인형퇴직연금(IRP)도 상황은 비슷하다. 총 34조4000억원 가운데 73.3%인 25조2000억원이 원리금보장형에 투입돼 있다. 최근 5년간 연환산 수익률은 1.92%, 원리금보장형은 1.32%를 기록했다. 

회사가 정해진 수익을 보장해주는 확정급여형(DB)까지 포함하면 전체 원리금보장형에 투입된 퇴직연금 적립금 비중은 89.3%에 달한다. 

금투업계는 이를 퇴직연금 수익률이 낮을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로 지목한다. 그러나 은행과 보험업계는 디폴트옵션에도 원리금보장 상품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후생활 보장을 위한 재원인 만큼 안전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별도 운용지시를 하지 않을 경우 원금손실이 가능한 펀드에 투자될 수 있는 만큼 원리금보장이 가능한 상품에 대한 선택권을 줘야한다는 입장이다.

최근 금투업계가 발표한 부분수용에 대해서도 반대의견을 내비쳤다. 

은행권 관계자는 "원리금보장 상품을 일부만 포함하거나 수용하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아니며 금융소비자보호법상 적정성원칙 등을 고려하면 법리상으로도 맞지 않아 보인다"라며 "원리금보장 상품은 결국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국회서도 의견 분분 …승기는 누가쥘까? 

현재 디폴트옵션 관련 발의된 법안은 총 3건으로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안은 원리금보장상품을 포함했고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안과 안호영 의원안은 원리금보장형을 제외했다. 디폴트옵션 도입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만 원리금보장상품 도입 여부에는 의견이 갈리는 모양새다. 

지난 6월말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심사소위에서 정부는 원리금보장 포함 쪽의 손을 들어줬다.  

박화진 고용노동부 차관은 "수익률 제고 차원에서 보면 펀드형 상품만 추기하고 원리금보장상품은 근로자가 직접 운용지시를 하면 된다"면서도 "다만 펀드상품이 중장기 투자에 적합하고 규모가 작은 사업장의 근속기간이 짧고 고용이 불안정한 문제가 있어 선택권 보장 차원에서 원리금보장 상품 추가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반면 안호영 의원측은 디폴트옵션에 원리금보장상품이 포함되면 현재와 동일한 상태가 반복되며 해외에서 원리금보장상품을 편입한 사례는 일본이 유일한데 실폐 사례로 꼽힌다고 지적했다. 디폴트옵션을 도입해도 원리금보장상품 선호 가입자는 디폴트옵션 적용 전 원리금보장상품을 직접 선택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은행, 보험업계의 DC형 이익구조를 문제 삼는 지적도 나왔다.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DC형은 굉장히 수익률이 낮은 원리금보장 상품에 대부분 들어있는데 은행, 보험이 이를 받아 운용해 정해진 이자만 주고 나머지 마진을 먹는다"라며 "은행이 DC에서 벌어들인 수수료만 올해 2000억정도, 이를 운용해서 번 돈이 6000억원으로 8000억원 정도의 수익을 냈다"고 말했다. 이어 "DC형은 DB형처럼 은퇴 직전 평균임금이 아닌 현재시점의 연봉 기준이다 보니 급여 자체도 줄고 근로자들이 가져가야 할 이익을 은행과 보험사가 가져가는 구조"라며 DC형 폐지 방향을 주장했다. 

사업주 입장에서는 본인의 돈이 아니고 근로자도 당장 받을 돈이 아니어서 관리가 잘되지 않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퇴직연금 수익률 가치를 높일 수 있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회는 양대 노조 의견 등을 추가로 듣고 이후 논의를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안호영 의원실 관계자는 "소위에서 근로자의 노후보장을 위해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는 쪽으로 가자는 원칙에는 의견이 모아졌는데 양대 노조측 의견을 추가로 듣기로 했다"라며 "다만 금융업권 간 디폴트옵션에 원리금보장 상품을 넣느냐에 대한 의견이 갈리는데 최근 금투업계 쪽에서도 동의하는 것으로 전해져 업권간 합의된 의견이 전달되면 절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김병덕 한국금융연구원 박사는 "디폴트옵션은 본인이 의사표시를 하지 않을 경우 자동적으로 투자되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디폴트옵션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라며 "다만 위험선호도에 따라 다수가 생길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본래 디폴트옵션에 원리금보장형상품이 들어가는 것은 원론적 취지에는 맞지 않을 수 있다"면서도 "현실적으로는 필요한 사람이 있을 수 있어 법으로 하나의 형태나 원리금보장 비중을 정해 고집하기보다 어느 업권에 가입했느냐에 따라 해당 업권의 디폴트옵션이 달라지는 방법으로 제공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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