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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돈의 가격표' 리보금리, 역사속으로…

  • 2021.12.28(화) 08:05

스캔들로 신뢰 와르르…내년 산출 순차종료
각국 대체지표 준비…한국 'KOFR' 신뢰 확보

'리보(LIBOR) 금리'라고 들어보셨나요? 생소하다는 분도 있겠지만 오랜 기간 국제 금융시장과 자본시장의 기준점 역할을 해왔던 금리랍니다.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60년이나 되는 긴 역사를 가진 중요한 경제지표죠. 세계 금융시장에서 '기준금리의 기준금리'라 불려왔습니다.

그런데 이 리보금리가 내년부터 점진적으로 산출이 종료됩니다. 내년 7월이면 더는 찾아볼 수 없게 된다는 얘깁니다. 어쩌다 6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기준이 됐던 리보금리가 사라지게 된 걸까요? 이게 없어져도 금융시장은 돌아갈까요? 대체할 만한 건 있을까요? 리보금리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 전, 그 사연을 되짚어 보려 합니다.

리보금리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오랜 기간 기준금리 역할을 해왔다. 사진은 하나은행 트레이딩룸 전경. /이명근 기자 qwe123@

국제경제뉴스 '단골'이었던 리보금리

우리가 대출을 받거나 예금이나 적금에 가입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금리입니다. 대출을 받은 이후 납부해야 하는 이자는 얼마인지, 예금이나 적금 만기 이후 내가 손에 쥘 수 있는 목돈은 원금과 이자를 합해 얼마인지를 결정해 주는 것이 바로 금리죠. 

금리는 대출과 예·적금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금융상품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모든 자금이 이동할 때 금리가 따라붙습니다. 예를 들어 A라는 기관이 B라는 기관으로부터 돈 혹은 돈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들(채권이 대표적입니다)을 가져다 쓰면 이에 따른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이 비용을 매기는 수치가 바로 금리입니다. 

그렇다면 여러 화폐에 대한 '가격표'도 필요하겠죠. 화폐 간 '가격표' 역할을 하는 것은 각국의 중앙은행이 결정하는 기준금리입니다. 우리나라의 금융회사들도 국내에서 거래할 때에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정한 기준금리를 기준점으로 삼죠. 기준금리가 올랐기 때문에 대출금리가 올라간다는 얘기는 돈에 붙은 가치가 올랐으니 그만큼 더 이자를 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국제 금융시장 참가자들도 돈을 매개로 거래를 하기 때문에 기준금리와 같은 '기준'이 필요했습니다. 다만 어느 한 나라의 기준금리를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었습니다. 나라마다 경제 사정이 달라 기준금리도 달랐고 유통되는 통화도 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기준점 역할을 하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입니다. 기준금리가 그 나라에서 돈의 가격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도 돈을 발행하는 중앙은행이 결정하는 만큼 신뢰도가 높다는 점이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리보금리가 '기준금리의 기준금리'가 될 수 있었던 건 '태생' 때문입니다. 리보(LIBOR)라는 명칭 자체도 '런던 은행 간 제공금리(London inter-bank offered rates)'의 약자죠.

영국 런던은 근대 이후 오랜 기간 글로벌 금융 중심지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 만큼 런던 금융기관이나 이들 사이에 이뤄지는 거래는 시장에서의 신뢰도가 가장 높았다고 여겨져 왔습니다. 이 때문에 세계의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영국의 은행들이 서로 자금을 이동할 때 주고받는 이율을 기준으로 잡고 자신들의 거래 조건을 정했죠. 

이것이 리보금리가 지금도 여러 다른 환경의 교역이나 거래에서 기준이 돼온 이유입니다. 지금까지도 리보금리를 산출하고 관리하는 곳이 영국 금융감독청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사라질까

그런 리보금리가 내년부터 산출이 중단됩니다. 지금까지 이용해 온 돈의 가격표가 사라지게 된다고 보면 되는 거죠. 그렇다면 리보금리는 왜 사라지는 것일까요?

일단 1990년대 들어 리보금리가 돈에 대한 '가격표'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느냐에 대한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은행의 자금조달 방법이 다양해지자 은행 간 자금거래가 서서히 줄어든 것이 배경입니다. 리보금리는 은행 간 자금거래에서 발생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산출하는데, 은행 간 자금거래가 줄어들자 리보금리가 시장을 즉각 반영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부각된 겁니다.  

앞서 말했듯이 '가격표'의 역할을 하려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신뢰입니다. 신뢰가 떨어지면 더 이상 가격표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되니까요. 리보금리가 사라지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이 신뢰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A라는 상품이 있다고 치죠. 그리고 이 상품은 B, C, D 등의 회사에서 공급합니다. 정부에서는 A라는 상품의 가격은 시장 상황, 단순한 경제이론으로 접근한다면 수요와 공급에 따라 정해지도록 엄격하게 규정해놨습니다. 그런데 B, C, D 회사가 몰래 짜고 A의 가격을 조작한다면 어찌 될까요? 소비자들은 A에 붙은 가격표를 더 이상 신뢰하지 못할 겁니다.

리보금리가 퇴출 당하는 결정적 요인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해서입니다. 지난 2012년 리보금리의 정보를 제공하는 바클레이, 제이피모건, 도이체방크, 소시에테제네랄 등 주요 호가은행들이 이 금리를 조작한 것이죠.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 하기 위해 리보금리 산출 시 제공하는 정보를 거짓으로 꾸민 것입니다.

금융시장 참가자들이 신뢰를 바탕으로 리보금리를 사용해 왔는데, 정작 이 리보금리 산출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는 은행들이 시장을 왜곡한 것입니다.

이 거대한 스캔들이 터진 이후 국제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더는 리보금리를 믿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각국의 금융시장을 관할하는 금융감독당국과 금리를 관할하는 통화당국 등이 새로운 기준점을 만들기에 돌입했습니다. 그리고 리보금리를 대체할 새로운 기준들이 제시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SOFR', 영국의 'SONIA', 일본의 'TIBOR' 등이 대표적입니다. 

금융위원회(위원장 고승범·사진)는 원화지표 거래시 리보금리를 대체할 새로운 지표금리로 KOFR을 만들었다.

우리나라 준비상황은?

우리나라 금융기관 역시 국제 금융거래 시 리보금리를 기준으로 활용했습니다. 국제 금융거래뿐만 아니라 국내 가계대출 등에서도 리보금리를 기준으로 대출금리를 산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리보금리는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중요하게 활용됐던 기준이라는 얘깁니다.

리보금리가 퇴출되는 만큼 우리나라 금융당국과 통화당국도 준비는 해왔습니다. 일단 그간 리보금리로 거래되던 계약을 대체금리로 전환하도록 유도했습니다. 다시 말해 리보금리라는 가격표를 떼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금리체계를 선택해 새로운 가격표를 붙이도록 금융회사를 도와 왔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이를 위해 금융당국, 한국은행, 은행연합회, 시중은행 등이 올해부터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 오기도 했습니다. 

한 은행 자금 운용 부서 관계자는 "리보금리 산출 중단을 앞두고 올해부터 금융당국,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대체 금리를 활용하는 방안을 논의해 왔고 이에 따른 전산 교체 등의 업무 등이 대부분 완료된 상황"이라며 "기존에 리보금리로 체결된 계약은 계약서에 명시된 통화 발급 국가에서 내놓은 새로운 금리체계에 따라 전환이 대부분 이뤄졌다"고 설명했습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11월 말 기준 약 4만7904건(1065조8000억원 규모)에 대한 리보금리 활용 거래는 리보금리를 대체하는 거래로 전환이 완료됐습니다. 전체 금융거래 중 88%가 넘습니다. 남은 거래는 5653건에 대해서도 완전 산출이 종료되는 내년 7월까지 전환을 완료한다는 계획입니다.

동시에 원화를 바탕으로 하는 거래 때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금리지표 'KOFR(Korea Overnight Financing Repo Rate)'를 만들었습니다. 국채와 통안증권(한국은행이 시중 통화량을 조절하기 위해 발행하는 유통증권을 말합니다)을 담보로 하고 익일물 RP금리를 통해 산출하는 구조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초단기거래에서 활용되는 금리를 바탕으로 활용해 시장 상황이 빠르게 반영되면서도 신뢰도가 있는 국채와 통안증권을 담보로 하는 만큼 신뢰도 역시 갖춘 지표란 겁니다. 

금융당국은 KOFR이 성공적으로 안착해 원화지표를 상징하는 '가격표' 역할을 할 수 있게 한다는 계획입니다. 금융시장에서 원화 이자율을 바탕으로 하는 거래 규모가 7000조원 규모에 이른다고 하니 KOFR의 시장 정착은 곧 우리나라 금융의 신뢰도와 경쟁력 상승으로 연결되는 셈이죠. 당장 내년 금융위원회의 업무계획에 'KOFR의 시장 활성화'가 포함되기도 했습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앞으로 글로벌 금융거래에 사용되는 원화지표금리는 실거래를 기반으로 하는 KOFR가 국제표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내년 중에는 KOFR 선물시장 개설, KOFR 기반 금융상품 및 거래 확대 등을 통해 단기자금시장 지표금리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의 KOFR이 국제 금융시장에서 과거 리보금리만큼 신뢰도가 높아져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이 한 층 더 높아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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