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상승에 적극 대응하는 것이 긴 안목에서 경제의 안정적 성장 기반을 다진다고 생각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 의장 첫 데뷔전부터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했다. 경제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현 시점에서 물가 안정이 최우선 과제라는 판단에서다.
특히 이 총재는 향후 몇 개월 동안 물가 상승률은 전년대비 5% 이상 오르는 상황이 불가피하고 연말이 돼서야 조금씩 안정을 찾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 만큼 향후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올해 물가상승 전망 4.5%, 14년만 최고
금통위는 26일 기준금리를 1.75%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이와 함께 올해 물가 상승률은 4.5%, 경제 성장률은 2.7%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올초만 해도 물가와 성장률 모두 3% 수준을 예상했지만 물가는 더 오르고 성장률은 떨어질 것으로 전망치를 수정했다.
특히 물가 상승률 전망치 4.5%는 2008년 7월에 발표했던 4.8%(2008년 연간 성장률 전망치) 이후 13년10개월 만에 최고치다. 4%대의 전망치가 제시된 것 역시 2011년 7월(4%) 이후 10년10개월 만이다.
대내외 적으로 물가 상승 요인이 산적하다. 외적으로는 글로벌 원자재 공급망 교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되고 있다. 이 영향으로 국제유가는 물론 곡물가격 상승폭이 가파르다. 국내 요인으로는 코로나19 손실보상을 위한 39조원 규모 추가경정예산안(추경) 등이 상승 요인으로 꼽힌다.
이에 반해 경제는 상승보다 하락 압력이 더 세다. 내부적으로는 추경을 통한 성장과 삼성과 현대차 등 대기업들의 대형 투자 계획 등 상승 요인이 있지만 미국의 통화긴축, 중국의 도시 봉쇄 등 글로벌 경기 둔화 여파 등 부정적 요인이 더 큰 영항을 줄 것으로 분석된다.
이같은 상황에서 금통위가 경제 성장 속도를 더디게 하는 금리 인상을 단행한 것은 물가에 대한 부담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창용 총재는 "앞으로 수개월 동안 물가 상승률은 5% 이상 기록할 것이 확실시 된다"며 "연말 쯤 국제유가가 지금보다 떨어져도 곡물 가격 상승이 지속돼 내년에도 상당 기간 4%대의 상승률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금통위가 연내 서너 차례 추가 금리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창용 총재는 오는 7월로 예정된 금통위에선 그 사이 발표될 주요 경제 지표 등을 토대로 인상 여부를 결정한다는 입장이지만 시장 전망치인 연말 예상 기준금리(2.25~2.5%)에 대해선 합리적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 총재는 "물가 관련 데이터와 7월 발표될 2분기 GDP,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결정 등을 참고하겠지만 당분간은 물가 중심 통화정책을 이어나갈 것"이라며 "물가 상승 전망치가 높아져 이를 반영한 시장의 금리 전망치는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한미 금리역전 불가피
이처럼 물가 안정에 통화 정책을 집중하겠다는 계획이지만 빅스텝 가능성에 대해서는 다소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이창용 총재는 지난 16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오찬을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빅스텝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놨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창용 총재는 "물가와 경제 성장 등 주요 지표, 대내외 요인 등이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 통화정책을 운영할 때 모든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이라며 "빅스텝으로 해석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한미 금리역전에 대해서도 현 상황에선 당연한 수순으로 평가하고 있다. 미국 물가 상승률은 8%가 넘고 경제 성장률도 견고한 수준이라 연준이 앞으로 두 차례 정도 빅스텝을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보다 인상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창용 총재는 "미국보다 국내 기준금리가 높은 게 자연스럽긴 하지만 단기적 관점에서 보면 역전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며 "현 상황을 보면 곧 한미 금리차가 역전되겠지만 대규모 자금유출 등에 대한 우려는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물가 안정을 위한 금리 인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취약계층의 금융비용 부담은 이 총재의 또 다른 고민거리다. 이 총재는 취임사에서도 한국은행이 가계부채 관리에 있어서도 역할을 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인상되면 가계 이자부담은 3조원 이상, 기업도 2조7000억원 가량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총재는 "한은 입장에서 금리 인상 결정과 함께 취약계층 위험에 대한 정책적 대응도 필요하다"며 "소상공인과 영세업자에 대해선 이자를 올리지 않는 등 금융중개 지원 정책을 정부 재정 정책과 공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금리 인상으로 취약계층 어려움이 있겠지만 물가 상승이 확산되면 금융 불안정 등이 확산돼 취약계층이 더 큰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며 "취약계층은 정부와 정책 공조를 통해 지원하고 통화정책은 물가 상승에 적극 대응하기로 결정한 이유"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