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행진하는 물가 탓에 서민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계란과 같은 식재료는 물론 냉동만두 등 가공식품의 가격까지 들썩이고 있다. 물가 상승의 주원인으로는 국제유가와 곡물가격 급등이 꼽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코로나19에 따른 물류대란 등 국제적 악재가 겹친 영향이다. 작황 부진에 따른 농축산물의 가격 상승도 물가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하반기 전망도 어둡다. 대외 악재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아서다. 고환율 현상도 수입 가격을 높이는 원인이다. 엔데믹이 시작된 만큼 수요 증가에 따른 물가 상승도 예상된다. 물가 잡기에 나선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피부로 느껴지는 '고물가'
"평소 사 먹는 두부가 2개 4500원인데요. 오늘 동네 슈퍼에서 보니까 6500원이더라고요. 마트는 쌀까 싶어서 와봤는데 비슷하네요. 안 오른 게 없어서 살기 팍팍하다고 느끼죠."
지난 7일 오후 8시 서울역 인근의 A대형마트에서 만난 주부 양 모(63·여) 씨의 말이다. 그는 "계란도 비싸고, 우윳값도 들쑥날쑥"이라며 "예전엔 감자 한 박스씩 사갈 만큼 손이 컸는데, 지금은 높은 가격에 꼭 필요한 것들만 조금씩 산다. 남겨 버리는 것도 아깝지 않느냐"고 쓴웃음을 지었다.
양씨의 말처럼 이날 장보기에 나선 주부들의 손길에는 신중함이 묻어났다. 대부분 같은 상품이라도 세심하게 가격표를 비교 해보고 구매를 결정했다. '1+1 제품'만 골라서 담는 사람들도 많았다. 떨이 매대에는 어느새 길게 줄이 늘어섰다. 반값 할인이 시작된 오징어는 순식간에 동이 났다. 과일 코너에는 값싼 바나나 매대만 텅 비어 있었다. 반면 비싼 가격 탓인지 사과와 배 매대에는 발길이 뜸했다. 고물가의 풍경이었다.
주부들은 고물가에 대한 걱정을 늘어놨다. 카트에 과자를 잔뜩 담은 두 아이의 엄마 이 모(43·여) 씨는 "밀가루 가격도 많이 올랐다고 하던데, 과자 가격도 더 오를까 걱정"이라고 했다. 떨이 오징어 구매에 성공한 50대 주부 김모 씨도 "일부러 떨이 상품을 사러 이 시간에 들러봤다. 할인이 붙은 초밥 등 여러 즉석식품을 샀다"며 "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말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앞서 식품업체들은 한차례 가격을 인상했다. 급등한 원재료 가격 부담이 커서다. CJ제일제당과 풀무원, 동원F&B 등은 지난 2월 냉동만두의 제품 가격을 평균 5~6% 올렸다. 과자 가격도 일제히 올랐다. 해태제과와 롯데제과는 각각 지난달 허니버터칩과 빼빼로 등 주요 과자 제품 가격을 인상했다. 농심도 지난 3월 새우깡 등 22개 과자 제품 가격을 평균 6% 올렸다.
주부들의 말처럼 고물가가 살갗에 느껴졌다. 이날 A대형마트의 가격대 역시 높게 형성돼있었다. △사과(4~7개) 1봉 8990원 △배(3~7개) 1봉 1만4900원 △계란 30구 7490원 △두부(풀무원 2입) 5480원 △냉동만두(비비고) 8980원 △배추(1포기) 3690원 △무 2190원 △깐마늘(300g) 4790원 등 이었다. 대형마트 가격임을 감안해도 과거보다 체감 물가가 높다는 것이 주부들의 평가다.
채소·육류 가격도 올랐다
삼겹살 등 돼지고기 가격도 비쌌다. 곡물 가격이 오르며 사료 가격도 크게 올라서다. 여기에 엔데믹 전환으로 수요가 늘어난 것도 돼지고기 가격 인상에 영향을 미쳤다. 이날 A대형마트 축산코너에서는 삼겹살과 목살을 각각 100g당 3980원에 판매했다. 매대 점원은 "2주 전 4580원까지 오르며 근래 가장 비쌌는데 최근 할인 행사로 가격이 내린 것"이라면서 "쌀 때 얼른 사가시라"고 권유했다.
실제로 축산물품질평가원 축산유통정보 통계에 따르면 이날 국산 돼지고기 삼겹살 100g의 평균 소비자가격은 2858원으로 1년 전보다 12% 올랐다. 같은 양의 목심과 앞다리살도 각각 2664원, 1488원으로 9%, 21% 올랐다. 닭고기도 1㎏ 당 5932원으로 11% 상승했다.
채소 가격도 오름세다. 때 이른 무더위와 적은 강수량에 따른 작황 부진이 원인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KAMIS) 가격동향에 따르면 배추의 경우 한포기당 4006원으로 1년 전보다 25.2% 뛰었다. 평년과 비교해 48.5% 올랐다. 청상추(100g)는 975원으로 평년 대비 30.9% 가격이 상승했다. 이 밖에 시금치(8502원·1㎏) 59.4%, 깐마늘(1만2951원·1㎏) 34.9%, 파프리카(1435원·200g) 22.7%, 새송이버섯(597원·100g) 15.9% 등도 평년보다 대부분 가격이 올랐다.
채소 매대에서 양배추를 고르고 있던 주부 김 모(43·여) 씨는 "잎채소들도 반찬이나 국을 끓여보려고 해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면서 "평소 주로 먹는 마늘이나 상추, 시금치, 배추 등의 가격이 주로 올라서 체감상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물가' 하반기에도 계속?
문제는 하반기에도 고물가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각종 대외 악재가 해소되지 않고 있어서다. 우크라이나 사태뿐만 아니라 인도 등 주요 농산물 생산국들이 수출 제한에 나서고 있다. 원재료 수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대응할 방법이 없다. 여기에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것도 문제다. 원화 가치 하락이 수입 가격의 상승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물가는 예상보다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전년 대비 올해 1월 3.6%, 2월 3.7%에서 3월 4.1%로 급등했다. 4월에는 4.8%로 상승 폭이 더 커졌다. 5월에는 5.4%로 5%선마저 넘어섰다. 6~7월에는 6%대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도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기존 2.2%에서 4%대로 수정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향후 물가 전망에 대해 "대외적 물가 상승 요인들이 지금 완화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다음 달에도 물가는 오름세를 지속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내다봤다. 전문가들과 기관들도 물가 안정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도 고물가 잡기에 나섰다. 정부는 물가 안정 범부처 작업반(TF)을 운영하며 물가 관리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식용유와 계란, 돼지고기, 석유류 등의 가격과 수급 동향을 밀착 관리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돼지고기와 식용유, 밀 등 수입품의 관세를 내리기로 했다. 아울러 김치나 고추장, 간장 등 단순가공식료품에 붙는 부가가치세 10%를 내년까지 면제키로 했다.
정부의 이런 조치에도 불구 업계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있어서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수입 돼지고기의 경우 FTA 체결로 이미 관세가 0%인 경우가 많아 큰 효과를 보기 힘들다"며 "일부 관세가 붙는 수입 돼지고기의 경우에도 기존 재고가 소진돼야 효과를 볼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부가가치세 면제 조치도 병과 캔 등에 포장된 가공품들만이 대상이어서 소비자 체감 효과는 크지 않을 같다"면서 "정부의 좀 더 면밀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