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품 플랫폼 발란이 기업회생 절차에 돌입했다. 그러자 동종 업계인 트렌비와 머스트잇이 입점업체들을 대상으로 선정산 지원책을 내놨다. 하지만 경기침체로 소비자들의 명품 수요가 감소한 상태에서 이들 명품 플랫폼들이 어떤 방식으로 재무안정성을 유지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업계 1위의 몰락
발란은 팬데믹 기간 급성장했다. 실제로 지난 2023년 발란의 기업가치는 3200억원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현재 기업가치는 10분의 1로 떨어진 상태다. 업황이 악화된 데다, 투자 유치가 지연되면서 단기 유동성 위기를 겪었다. 최근에는 입점업체들이 최형록 발란 대표를 고소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발란은 누적된 적자 탓에 2023년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결국 지난 3월 말 발란은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법원은 지난 4일 발란의 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했다. 발란이 오는 18일까지 채권자 목록을 제출하면 법원은 회생 인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사실 지난달 중순만 해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발란은 실리콘투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총 150억원을 투자받기로 했다는 소식을 밝혔다. 75억원을 먼저 받고 나머지 75억원은 실리콘투가 내건 조건을 충족시키면 지급될 예정이었다.
조건은 이랬다. 올해 11월 1일부터 내년 5월 1일까지 매월 1일 기준으로 직전 2개월 간 모두 매월 매출액 중 직매입 매출 비중이 50% 이상이어야 한다. 또 같은 기간 직전 2개월 연속으로 매월 영업이익이 흑자를 달성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결국 발란은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발란 측은 "올 1분기 내 계획했던 투자 유치를 일부 진행했지만, 당초 예상과 달리 추가 자금 확보가 지연되면서 단기적인 유동성 경색에 빠지게 됐다"고 밝혔다.
발란의 미정산 금액 규모는 130억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2023년까지 발란의 누적 결손금은 785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적자가 발생했다면 결손금 규모는 한층 더 늘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발란이 실리콘투로부터 추가 투자금을 받는다고 해도 사실상 미정산금 해결은 어려웠을 것이란 분석이다.
발란은 회생절차를 신청하기 전 정산금을 입점업체들에 지급하지 못해 논란이 일었다. 발란은 지난달 24일 일부 입점사에 대한 판매대금을 지급하지 못했다. 당시 발란은 자체 재무점검 과정에서 정산금 과다 지급 등의 오류가 발생해 정산 일정을 미뤘다고 해명했다. 이에 따라 같은 달 28일까지 재개 일정을 재공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발란의 결제 서비스는 결국 모두 중단됐다. 같은 달 31일 최형록 발란 대표는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선정산=자금 여유?
국내 명품 플랫폼 1위를 자처하던 발란이 회생절차를 밟으면서 명품 플랫폼 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이후 트렌비, 머스트잇 등 경쟁 플랫폼들은 재무안전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발란과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선 셈이다. 정산금 지급일을 앞당기는가 하면 특정 사업으로 수익성이 좋다는 등의 자료를 쏟아냈다. 불확실한 업황 전망에 입점판매자들의 이탈을 최대한 방지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머스트잇은 오는 14일부터 판매자 대상 정산주기를 기존 3~9영업일에서 1~7영업일로 단축하기로 했다. 단기적인 운영이 아닌 상시 운영이다. 트렌비는 이달 기존에 2~3주 걸리던 정산금액을 1~2주 안에 지급하기로 했다.
투자 유치 계획도 강조했다. 머스트잇은 지난 4일 삼정KPMG를 주관사로 선정하고 시리즈C 단계의 전략적 투자 유치 절차를 본격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머스트잇은 "단기 유동성 확보가 아닌, 유의미한 지분 참여를 전제로 장기 성장 파트너십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일각에서 제기된 매각설에 대해서도 거리를 뒀다. 머스트잇 측은 "머스트잇은 안정적인 재무 구조와 여유 자산을 기반으로 외부 인수 제안을 받아온 것은 사실이나,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협의 중인 사안은 없다"고 말했다.

트렌비는 중고명품 사업 강화와 글로벌 플랫폼의 성장으로 흑자전환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트렌비 측은 "경쟁사와 달리 수익성을 확보하고 안정적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차별화된 기반을 갖추고 있음에도, 여전히 동일한 범주로 거론되는 것에 대해서는 선을 긋고 싶다"고 밝혔다.
트렌비는 2023년부터 중고명품 사업을 본격화했다. 지난해엔 중고 명품을 직접 보고 구매할 수 있는 '보고구매' 서비스를 시작했다. 초기에병행수입 기반의 신상 명품에 집중했던 것과 달리, 이후엔 가격 경쟁 심화에 따른 수익률 저하를 막기 위해 중고명품 사업에 집중키로 했다. 하지만 트렌비는 지난해 흑자 전환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렌비 관계자는 "분기별 영업 손실 비중을 보면 지난해 3분기까지가 전체 영업손실의 90%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적자를 지속 개선 중인 만큼 올해는 흑자 전환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명품 플랫폼 젠테의 경우 시리즈B 라운드 투자 유치에 난항을 겪고 있다. 젠테는 발란·트렌비·머스트잇과 달리 부티크로부터 직매입하는 구조다. 그런 만큼 수수료를 받고 중개하는 형태의 오픈마켓보다 재고부담이 더 크다. 이 때문에 지난 2023년 나홀로 매출은 늘었지만 적자 폭 역시 나홀로 확대됐다.
이에 업계에서는 업황이 악화한 만큼 투자자들의 지갑을 열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명품 업계 관계자는 "경기가 좋지 않아서 백화점 명품 매출도 줄어들고 있는데 온라인 명품 수요가 유지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며 "혁신적인 전략과 내부 구조 개선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