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의 성장을 가로막았던 유통 규제가 완화될 지 여부에 관심이 모인다. 현재 정부는 의무휴업일에 대형마트의 온라인 배송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소비의 '권력'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 간 영향이다. '시장 자율'을 강조한 새 정부가 들어선 만큼 실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많다. 일각에서는 대형마트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규제 폐지 이야기도 나온다.
정부가 규제 완화를 검토하는 배경에는 '민심의 변화'가 있다. 과거에는 대형마트와 재래시장의 대결 구도였다. 하지만 코로나19를 거치며 소비자들의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라는 새 구도가 형성됐다. 대형마트 업계는 소비 트렌드가 변화한 만큼 규제 역시 바뀌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심' 변화…정부도 움직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형마트의 규제 완화를 추진 중이다. 대형마트가 의무휴업일·심야시간에도 온라인 배송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의 영업 가능 시간을 오전 10시부터 자정까지로 제한하고 있다. 이외에도 매월 2일씩 의무 휴업일을 지정하도록 했다. 의무 휴업일에는 대형마트의 온라인 배송도 금지된다. 이 때문에 대형마트 업계는 그동안 배송 서비스에 적극적이지 못했다.
의무 휴업과 영업시간 제한이 아예 폐지될지도 관심사다. 새 정부는 시장 자율을 경제 정책 기조로 내세우고 있다. 골목상권 보호를 앞세웠던 지난 정부 때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홍준표 대구시장 등 지방자치단체장들은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옮기는 것에 대한 여론을 수렴 중이다. 정치권에서도 대형마트의 과도한 규제를 지적하고 있어 규제 폐지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이처럼 정부 등에서 규제 완화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이유는 소비자들의 인식이 변했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대형마트 영업규제' 인식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67.8%는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현행 유지'와 '규제 강화' 응답은 각각 29.3%와 2.9%였다. 규제 완화 방식으로는 '규제 폐지'(27.5%)와 '지역 특성을 고려한 의무휴업 시행'(29.6%), '의무휴업일수 축소'(10.7%) 등을 꼽았다.
민심 변화에는 근본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이 큰 영향을 줬다. 온라인 소비가 늘면서 대형마트와 재래시장 모두 소비자들의 발길이 줄었다. 반면 쿠팡, 마켓컬리 등 이커머스 업체들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 때문에 이커머스 업체들이 반사이익을 누렸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업계뿐만 아니라 소비자들도 유통산업발전법이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10년간 발목 잡아온 '족쇄'
의무 휴업 등 10년간 규제는 대형마트 쇠퇴의 시작이었다. 대형마트 업계는 규제가 본격화된 2012년을 기점으로 성장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대형마트 업계의 전년 대비 매출 증가율은 2010년 8%, 2011년 9.1%였지만 2012년부터는 1%대로 뚝 떨어졌다. 2019년에는 대형마트 3사(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의 매출보다 편의점 3사(CU·GS25·세븐일레븐)의 매출이 더 많은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반면 2012년부터 이커머스는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기존 대형 유통사들의 발이 묶이면서 생긴 빈틈을 파고 들었다. 쿠팡은 2014년 로켓배송을 처음 시작했다. 새벽배송으로 유명한 마켓컬리도 2015년 창업했다. 기존 맞벌이 부부나 직장인들의 쇼핑 수요는 재래시장이 아닌 온라인으로 몰렸다. 이커머스는 경쟁자가 사라진 배송 시장을 빠르게 선점해 나갔다.
대형마트 업계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롯데쇼핑은 지난 2020년 부실 점포를 중심으로 전체 700여 개 점포 중 30%인 200여 개 점포를 폐점하기로 했다. 대부분 마트와 슈퍼였다. 이마트도 2019년부터 기존 점포의 30% 이상을 리뉴얼하고 전문점 사업을 재편하는 등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일자리 감소와 지역경제 쇠락 등 여러 우려가 나왔다.
'기대감' 부푼 대형마트 업계
최근 들어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대형마트 업계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온라인 배송 규제가 개선되면 대형마트들도 점포를 거점으로 삼아 새벽 배송 등에 나설 수 있게 된다. 배송 권역을 단숨에 전국으로 넓힐 수 있다. 의무 휴업, 영업시간 규제가 아예 해제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영업 방식에도 새로운 전략을 시도할 여지가 생긴다. 쿠팡, 마켓컬리 등과 본격적인 승부를 벌일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역량은 충분하다. 이마트의 점포형 물류센터는 120여 개에 달한다. 촘촘한 물류망을 활용하기 시작한다면 쿠팡과의 직접 경쟁도 가능할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홈플러스도 전국에 470여 개의 점포를 갖고 있다. 이 중 80%를 현재 물류 거점으로 활용 중이다. 규제만 풀린다면 기존의 마트 직송 서비스를 새벽배송으로 확대할 수 있다. 롯데마트도 사라졌던 롯데온의 새벽배송 서비스를 부활시켜 시너지를 모색해 나갈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규제 개선이 이뤄진다면 기존 점포 물류망으로 배송 경쟁력을 한 층 더 높일 수 있게 된다"며 "이커머스와의 본격적인 경쟁이 펼쳐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형마트 규제 취지는 소상공인을 보호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온라인 쇼핑이 대세가 된 상황에서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면서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법은 과감히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