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는 있지만 책임자는 없었던 금융사고에 대해 앞으로는 책임 소재가 명확해진다. 앞으로 은행을 비롯한 금융사들은 '책무구조도'를 작성해 최종 책임자를 특정하고, 해당 책임자는 내부통제 관리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이사회의 내부통제 감시역할도 명확해진다. 이사회 내 소위원회로 내부통제위원회 신설 등 이사의 내부통제 감시의무가 구체화된다. 이를 통해 금융사고를 사전에 예방하는 내부통제 제도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22일 금융감독원과 함께 금융권 협회장 간담회를 열고 '금융사 내부통제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방안은 펀드 불완전 판매와 은행 직원의 대규모 횡령 등 잇따른 금융사고에 대응해 금융권의 책임경영 확산을 위해 만들어졌다.
'책무구조도'로 책임자 찾는다
금융위는 내부통제 제도개선 방향으로 사후 제재를 강화하는 대신 사전 예방에 집중하기로 했다. 특히 그동안 금융사고 발생시 '책임자가 없다'는 지적이 반복되면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우선 책무구조도가 처음으로 도입된다. 책무구조도는 금융사 임원이 담당하는 직책별로 책무를 배분한 내역을 기재한 문서다. 지배구조법상 임원이 대상이지만 상근경영진 대비 사외이사의 제약된 정보접근성 등을 감안해 이사회 의장이 아닌 사외이사는 적용대상에서 일단 제외한다.
금융위는 책무구조도상 임원에게 의무적으로 책무를 배분해야 할 업무 영역은 경영관리와 위험관리, 영업 부문 등 3가지로 구분해 시행령에서 예시적으로 열거할 예정이다.
각 임원은 해당 직책별 책무를 수행하기에 적합한 적극적 자격 요건을 갖춰야 한다. 해당 임원 책무가 명확해진 만큼 전문성과 업무경험, 정직성과 신뢰성 등 책무수행의 적극적 요건도 신설한다. 금융사는 신규 임원 선임뿐 아니라 기존 임원의 직책을 변경할 때도 책무구조도상 자격 충족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책무구조도는 대표이사(CEO)가 마련한다. 책무의 중복·공백·누락 등 작성 미흡, 실제 권한 행사자와 구조도 상 임원의 불일치 등 거짓 작성에 대한 책임을 진다.
책무구조도는 이사회 심의·의결을 거쳐 확정된다. 작성 후 금융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감독당국은 적정성 여부를 승인하지는 않지만 필요한 경우 시정요구는 할 수 있다.
내부통제 관리의무 부여…이사회 책임 명확히
임원 등 경영진의 책임소재를 명확히 나누는 것과 동시에 내부통제 관리의무가 부여된다. 책무구조도 상 해당 임원이 소관 책무 범위 내에서 실제로 실행해야 하는 내부통제 관리조치다.
특히 내부통제 전반의 책임자인 CEO의 내부통제 '총괄' 관리의무도 명확히 규율해 책임의식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CEO는 각 사별 사업특성과 경영 환경 변화 등을 고려해 실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전사적인 내부통제 체계를 구축할 의무가 생긴다.
회사 내에서 조직적, 장기간·반복적이거나 광범위한 문제가 발생하는 등 시스템 실패가 발생하면 CEO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동안 금융사고 책임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사회 역할도 명확해진다. 이를 위해 내부통제와 위험관리 정책 수립, 집행에 관한 사항을 이사회 심의·의결 대상에 포함한다. 이사회는 회사 내부통제체계와 운영 전반의 적정성을 점검하는 등 내부통제에 대한 궁극적 책임을 부담한다.
책무구조도상 개별 임원은 영역별로 구체적인 관리조치를 취하고 이사회는 내부통제 체계를 감시하는 구조다.
이에 이사회가 내부통제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이사회 내 소위원회로 내부통제위원회가 신설된다. 위원회는 책무구조도 적용 대상이 수행하는 내부통제 관리업무를 점검하고 미흡한 사항은 개선을 요구할 수 있다.
금융위는 내부통제 관리 조치 의무를 위반한 임원에 대해서는 신분 제재를 부과하기로 했다. 금융사고 발생을 초래한 위법행위에 대한 감독자 책임이 아니라 관리의무 위반행위에 대한 고유의 자기책임이 부여되는 것이다.
다만 금융사고가 발생했어도 상당한 주의를 다해 내부통제 관리조치를 했다고 인정되면 책임을 경감하거나 면제한다. 상당한 주의는 사전적·개관적으로 예측 가능한 수준의 관리조치를 취했는지 여부로 판단한다.
금융위는 관리조치의 구체적인 방법과 수준 등은 각 회사와 업계에서 특성에 맞게 자체적으로 마련토록 하기로 했다. 금융권과 함께 지속적으로 업무영역별 모범 사례를 축적할 예정이다.
이번 제도개선은 향후 공청회와 업권별 설명회 등을 개최해 의견수렴 과정을 지속한 후 속도감 있게 입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르면 연내 입법이 가능하다는 게 금융위 기대다.
개선사항은 법 공포 후 1년 이내 은행과 금융지주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한다. 이후 대형 금융투자회사와 보험회사(공포 후 1년6개월 이후), 일부 지배구조 규율이 적용되지 않는 중소형 금융회사(5년 이내) 순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형식적인 제도 변화가 아니라 조직 전체 구성원 인식과 가치관을 바꿔 실질적인 행태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조직문화 변화의 핵심은 최고경영진 의지와 리더십으로, 제도개선 취지를 직원들이 공감하고 인식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