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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금융]⑥차별 말랬더니…보험은 지워버렸다

  • 2024.01.01(월) 08:00

[신년기획]말뿐인 장애인 차별금지…인수심사서 솎아내
겨우 가입해도 부담보·보험료 할증 감수해야
장애인 전용보험도 '시늉뿐'…보장범위 좁아

딸: "엄마, 엄마 성함 ㄱ○○(가명) 말씀하시면 돼요. 전화번호는 0××-414-7×××..."

엄마: "ㄱ○○...."

지적장애인 ㄱ○○씨는 지난 2020년 초 치아보험 가입을 거절당했습니다. 보험 인수심사(언더라이팅) 과정에서 딸이 불러주는 대로 이름, 주민번호, 전화번호 등을 얘기한 게 화근이 됐죠. 보험사는 "낮은 인지능력을 가진 ㄱ○○씨는 보험가입 등 법적으로 유효한 동의를 할 수 없다"고 반려이유를 댔습니다.

ㄱ○○씨 측은 장애를 이유로 보험가입에 차별을 받았다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습니다. 조사에 나선 인권위 역시 차별이라고 판단했죠. 치아보험 등 상해보험 가입은 반드시 피보험자(보험사고 대상자)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는 점, 지적장애인이 보험에 쉽게 가입할 수 있는 인적·물적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은 채 '의사능력이 없다'는 판정을 한 점 등이 주된 근거였고요.

/그래픽=비즈워치

수년째 방치된 '권리'

장애인 보험가입 권리 개선은 수십 년째 방치된 해묵은 숙제입니다. 보험사들은 "보험업법 및 장애인차별금지법,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따라 장애인 보험가입을 제한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2018년부터 장애인 여부를 고지하지 않으며 해결된 문제"라고 설명하죠.

그런데 ㄱ○○씨처럼 실상은 달라진 게 없습니다. 장애인 가입자가 작성한 청약서상 고지의무 내용이나 건강진단 결과 등을 토대로 한 인수심사에서 대거 걸러지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진행하는 장애인들의 보험은 심사조차 너무 까다로웠다. '건 바이 건'으로 현재 장애 상태에 따라 승인 상태가 다 달랐다. 오래 걸리는 심사는 석 달씩 걸리기도 했으며 그 중에서는 심사가 안되는 경우도 많았다. 

-『장애인 보험을 만들다』-황선우, 29쪽.

장애인의 일상생활 사고위험이 높은 건 사실입니다. 단적인 예로 화재사고 시 사상자 중 사망자 비중이 장애인은 57.4%로 비장애인(12.1%)보다 5배가량 더 높았습니다(보험연구원, 2017년). 하지만 장애요인과 사고위험 간 '인과성'을 검증하는 통계 및 의학적·과학적 근거는 아직 없습니다. 보험사 자의적인 판단이나 편견에 의해 가입을 꺼리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죠.

보험사들은 자체적인 인수심사 기준을 따르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그 기준에 대해선 '영업비밀'이라며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문턱 넘어도 '험난'

가까스로 가입심사 문턱을 넘어도 이후 과정은 더 험난합니다. 표면적으로 차별이 없다 보니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일한 보험요율을 쓰고 있죠. 보험사들은 보통 유병자들에게 진단·치료받은 부위의 질병을 보장하지 않는 부담보나 보험료 할증을 붙입니다.

문제는 우리나라 장애인 소득이 비장애인 대비 70% 정도인 데다(장애통계연보, 2022년) 대부분 중·고령기에 후천적으로 장애를 얻는다는 점입니다. 소득 수준이 낮은 데도 상병과 나이 탓에 더 비싼 보험료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죠.

장애가 심한 부위엔 아예 보장을 못 받을 수 있습니다. A보험사 한 관계자는 "(장애인의 경우) 병에 걸릴 확률이 높은데 보험료를 낮추거나 인수를 완화하면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항변합니다. 비장애인에 대한 역차별이 될 수 있다는 말이죠.

장애인 전용 보장성보험은 일반 보장성보험보다 3.3%포인트 세액공제율을 높이고 보험사별 전용 온라인 상담창구를 마련해 놓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정작 장애인을 위한 기본적인 점자·음성 청약서나 약관을 갖춰놓은 곳은 찾기 힘듭니다.

이렇다 보니 시각장애인은 청약 시 보호자가 손을 잡고 서명을 같이하는 불편한 방법을 주로 써야 합니다. 가입 이후에도 보장내용을 제대로 확인하기 어렵고 계약취소·부활이나 보험계약대출 등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권리도 제대로 누리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보호자나 비장애인 도움 없이는 보험료가 싼 온라인보험 가입은 꿈도 못 꾸죠.

건강검진 결과, 운동목표 등을 토대로 한 일반적인 보험료 할인 혜택은 비장애인 등 건강체만 대상입니다. 이들에 대한 무관심을 틈타 배려보단 기계적 평등을 강조하면서 보험사들이 차별금지법을 장애인들을 지워버릴 구실로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장애인 외면받는 전용 보험 

장애인보험 현황/자료=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실

장애인 전용 보험은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삼성·한화·교보생명 등 대형 3사가 팔고 있는 장애인 전용 보장성보험인 '곰두리보험'의 지난해 신계약 건수는 285건입니다. 2018년(876건)에 비하면 4년 새 3분의 1도 되지 않죠. 세 회사에서 한 달 평균 10건이 팔리지 않는다는 얘긴데요. 일반 보험상품이 평균 수천 건씩 팔리는 것과 대조됩니다.

특히 한화생명은 지난해 계약이 단 1건에 그쳤습니다. 사실상 단종된시킨 것과 마찬가지죠. KDB생명과 NH농협생명은 일반연금보다 생존기간 중 연금액을 더 지급하는 장애인 전용 연금보험 판매를 중단했고요.

가입대상인 장애인들에게는 보장 혜택이 적어서, 판매자인 설계사들에게는 수당이 적어서 외면받고 있다는 게 보험업계의 설명입니다. 보험사로서도 적극적으로 판촉을 장려할 동력이 부족합니다. 실제 한 생보사의 2021년 어린이보험 수익성지표는 5%인 반면, 장애인 전용 보험은 0.1%에 불과했습니다. 

장애인들마저 전용 보험을 반기지 않습니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일반보험보다 보장이 상대적으로 약한 전용 보험으로 장애인 선택권이 제한될 수 있다"며 "전용 보험 활성화보다 일반보험의 장애인 가입 문턱을 더 낮추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곰두리보험의 경우 2001년 출시 초기부터 장애인의 눈높이에서 설계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 상품은 보험료가 일반상품 대비 20~30%가량 싸지만 장애인에게 꼭 필요한 실손·상해·배상책임은 보장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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