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을 두고 '개혁'인지 '개악'인지 논란이 뜨겁다. 의료계와 보험 소비자들은 반대 목소리를 강하게 내고 있고, 보험업계에선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진일보했다는 평가다. 정부가 실손보험과 비급여 체계 개편에 나선 이유와 개편안 적용 시 보험료, 의료비 부담 등 영향을 알아보고 정부 방안의 현실화 가능성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
가입자 3600만명의 '제2의 국민보험'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이 4번째 변화를 맞게 됐다. 비급여 항목을 과도하게 보장해 도덕적 해이를 낳는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다.
정부는 과잉진료→비급여 의료비 증가→보험사 손해율 악화→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번에야말로 끊어내겠다는 방침이다.
비급여 실손서 보장… 과다 보상·필수의료 인력 기피
우리나라 건강보험 체계는 의료비를 급여와 비급여로 구별하고 있다. 급여는 건보에서 지원을 해주는 의료비고, 비급여는 건보에서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는 의료비를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비급여 관리를 하고 있지 않다. 이는 의료기관과 환자 간 사적 계약 형태로, 의료기관이 가격을 설정하고 환자가 이를 따르는 방식이다. 반면 급여는 정부가 통제해 행위 기준과 수가(건보공단이 병원에 제공하는 의료 행위 비용)가 정해져 있다.
현 체제에서는 의료기관이 가격을 어떻게 책정하든 실손보험이 이를 보장해준다. 따라서 비용 의식이 점점 없어지고, 실손보험이 비급여 증가의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되는 것이다. 또 문제가 되는 비급여 보장을 줄여도 다른 비급여로 옮겨가는 이른바 '풍선효과'가 발생하고 건보에서 지원하지 않는 새로운 의료기술이 등장하면서 비급여 항목은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다.
또 의료인력이 실손보험에서 과다 보상하는 비급여로 이동하면서 필수의료 기피 현상이 불거졌다.
예를 들어 지난해 도수치료의 산재보험 수가는 3만6080원에 불과했지만, 건강보험 비급여 진료비 중간값은 10만원이고, 최고금액은 28만원이었다. 비급여라 100% 환자 부담이다. 그러나 실손보험 가입자라면 대부분을 보험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 실제 자기부담금은 5000원(1세대)에서 3만원(3~4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의료기관이 비싼 값을 책정해도 실손보험이 이를 보장해줘 환자가 부담하는 금액이 적으니 치료에 대한 부담이 없다. 이를 일부 의료인이 악용해 의료효과가 적은데도 이익을 위해 과잉 진료를 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또 가입자 중 다수는 보험료만 납부하고, 소수만 보험금을 많이 지급받는 구조가 공정하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전체 실손보험 가입자 3578만건 중 65%는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았다. 반면 상위 9%의 가입자는 전체 보험금의 80%를 수령한 것으로 집계됐다.
손해율, 수치만 보면 1·2세대 낮은데…
일각에서는 1·2세대 실손보험의 손해율이 높아 보험사의 건전성에 영향을 미치고, 보험료 인상으로 직결돼 계약자들의 부담이 커졌다는 점을 실손보험 개편의 주 요인으로 본다. 그러나 실제 1·2세대 실손보험 손해율은 3·4세대보다 낮아 소비자들이 이를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다.
실제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실손보험 위험손해율은 △2022년 117.2% △2023년 118.3% △2024년 상반기 118.5%로 꾸준히 증가했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위험손해율은 △1세대 114.7% △2세대 112.4% △3세대 149.5% △4세대 131.4%로 나타났다. 위험손해율은 산정 시 사업비가 포함되지 않아 100%를 넘으면 보험사가 손실을 보는 것으로 판단한다.
문제는 1·2세대와 3·4세대 실손보험 손해율을 단순히 숫자만 놓고 비교하면 안 된다는 데 있다. 3·4세대 실손보험 손해율이 1·2세대보다 높은 이유는 보험료 인상이 몇 차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7년 출시된 3세대는 2023년 처음 보험료를 인상했고, 4세대는 2021년 출시돼 올해 처음으로 보험료가 올랐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1세대의 경우에도 손해율이 높은 편인데 3·4세대가 너무 높은 것"이라며 "3·4세대는 보험료를 조정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험료와 보험금 지급까지의 시차를 고려하면 3·4세대의 손해율이 더 1·2세대보다 높은 것이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또 "1·2세대 손해율이 안정화된 이유는 백내장 수술에 대해 '입원 치료 필요가 없다'는 대법원 판례로 누수 항목이 제어됐기 때문"이라며 "1세대 상품의 보험료가 내려간 것도 그 이후"라고 덧붙였다.
더 중요한 건 '상품 구조'
앞서 살펴봤듯 단순히 '손해율이 높다'는 것만으로는 실손보험 개혁을 설명하기 어렵다. 근본적으론 1·2세대 실손의 '상품 구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정부도 이 같은 실손보험의 구조적 한계(과다보장)를 보완하기 위해 3차례 실손보험 개선(1→4세대)을 추진했다. 그러나 비급여 관리수단이 부족한 가운데 비급여 확대, 필수의료 기피 등 건강보험의 효과가 저해되는 현상이 지속하는 실정이다.
1세대 실손보험은 손해율이 3·4세대보다 낮지만, 재계약 주기가 없고 비급여 항목 100%(자기부담률 손보 0%·생보 20%)를 보장받는다. 또 적용 횟수에 제한이 없어 무제한으로 비급여 치료를 받을 수 있어 도덕적 해이가 가장 크게 우려된다는 것이다. 2세대 역시 자기부담률이 10~20%로 낮은 편에 속하며 비급여 통원 적용 횟수는 180회다.
3세대 실손보험부터는 비급여 도수치료·체외충격파·증식치료, 비급여 자기공명영상진단(MRI), 비급여 주사료를 '3대 특약'으로 분리했다. 이는 비급여 중 손해율이 높은 항목을 따로 빼놓은 것이다. 3세대는 비급여 20%, 3대 특약 30%의 자기부담률을 적용한다. 4세대는 비급여와 3대 특약 자기부담률이 30%로 동일하다.
3·4세대에서 3대 특약의 총 치료비용 한도는 350만원, 횟수는 50회로 제한돼 있다. 다만 4세대의 경우 10회 진료 후 효과를 입증해야 보험금을 추가로 청구할 수 있다.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 따르면 비급여 규모는 2014년 11조2000억원에서 지난해 2023년 20조2000억원으로 약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주목할 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한 2020년 비급여 규모(15조6000억원)가 유일하게 전년(16조6000억원)보다 감소했다는 점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코로나19 시기 비급여 규모 감소는 이 치료가 그만큼 필수적인 의료가 아니었다는 반증으로 볼 수도 있다"며 "보험 계약자 선택에 의한 비급여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1세대 실손보험은 재계약 주기가 없어 선택적으로 과도하게 비급여를 이용하는 계약자들이 다른 세대보다 더 많을 것"이라며 "물론 1·2세대 가입자들의 연령대가 높아졌기도 하지만, 소수의 가입자가 지급보험금의 대다수를 가져간다는 것을 봤을 때 비급여 제한이 없는 1·2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클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