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서 대출 빗장이 풀렸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 은행에 갔다가 대출이 승인될지 알 수 없다는 답변을 듣거나 생각보다 적은 한도에 당황했다는 반응도 많은데요. 대출 정책이 완화되긴 했지만, 아직 '가계대출 관리'라는 큰 틀 안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출 문턱이 낮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실수요자'에 한해서 운영하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다주택자는 주택구입 목적이든 생활안정 목적이든 대출이 어려운 곳이 많고, 신용대출의 경우도 아직 소득을 기준으로 한도를 유지하는 곳이 있습니다.
주택대출은 '실수요자' 위주
주택담보대출은 한도가 소폭 늘었습니다. 신한·KB국민·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이 신규 주담대 모기지보험(MCI·MCG) 가입을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모기지보험에 가입하면 소액임차보증금을 제외하지 않고 최대한도로 대출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공제액은 지역마다 다른데, 서울시의 경우 5500만원을 추가로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생활안정자금 목적의 주담대 한도도 여유로워졌습니다. 신한·우리·농협은행은 생활안정자금 목적 주담대 한도를 기존 1억원에서 2억원으로 상향했습니다.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아예 한도를 없앴습니다.
수도권 내 다주택자는 이런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현재 1주택자는 하나·농협은행에서만 주담대를 내주고 있습니다. 우리은행은 유주택자에 대한 주담대 취급을 제한하고 있고, 국민·신한은행은 1주택자가 기존 주택을 매도하는 조건에서만 대출이 가능합니다. '집 갈아타기'만 허용하는 겁니다.
상호금융권까지 고려한다면 수도권 내 다주택자도 주담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새마을금고가 이달부터 경기·인천의 다주택자에 주담대를 허용했고, 생활안정자금 대출한도도 폐지했습니다. 다만 서울 지역의 주택구입자금 대출 제한은 그대로고, 생활안정자금만 한도가 2억원으로 올랐습니다.
비대면 풀린 신용대출, 한도도 대부분 폐지
신용대출은 올해 들어 폭넓게 허용되는 모습입니다. 신한·하나·농협은행은 올 초 비대면 신용대출 규제를 일제히 해제했습니다. 국민은행은 애초에 비대면 대출을 막지 않았으니 이제 5대 시중은행 중 비대면 신용대출이 불가능한 곳은 우리은행뿐입니다.
한도도 대부분 완화됐습니다. 신한은행은 기존 연 소득 100%까지만 가능하도록 했지만, 올해부터 제한이 없습니다. 하나·농협은행은 쭉 제한을 두지 않았고, 국민은행은 1억~1억5000만원까지 내주고 있습니다. 우리은행은 연 소득 100% 한도를 유지합니다.
물론 금리가 여전히 부담스러운 상황이긴 합니다. 15일 기준 주요 은행들의 신용대출 금리는 △신한은행 4.62~5.52% △KB국민은행 4.18~5.18% △우리은행 4.63~5.83 △하나은행 4.53~5.13% 등으로 기준금리 인하 전보다 0.2~0.35%포인트 감소했습니다. 작년 10~11월 두 달에 걸쳐 기준금리가 총 0.5%포인트 낮아진 것과 비교하면 아직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출 제한 해제로 천천히 움직이는 금융권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연말연초 금융당국이 사실상 가산금리 인하를 종용하면서 금리가 조금씩 낮아지는 추세란 겁니다. 신한은행이 지난 14일부터 가계대출 가산금리를 0.05~0.30%포인트 인하했고, 기업은행은 오늘(17일)부터 0.2~0.3%포인트 내리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6일 "가계·기업이 종전 2차례 금리인하 효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대출 금리 전달 경로와 가산금리 추이를 면밀히 점검하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대출자격과 금리, 투트랙으로 가계대출을 관리하다 보니 차주에 따라 대출 문턱에 대한 체감도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세세하게 대출 자격과 한도를 나누는 것은 소비자에게 혼란스럽고 은행으로서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한 은행 관계자는 "통상 금융권은 연초에 대출을 풀어 연중 고정 이자수익을 확보하는데, 올해는 평소보다 주춤한 경향이 있다"며 "대출 심사를 조이면서 창구에서 불만이 많고, 영업 일선에서도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기준금리 추가인하 등 유동성을 푸는 방향으로 가게 되면 대출 제한을 차차 풀 수 있을 것"이라며 "가산금리 인하도 너무 빠르지 않게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