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는 물론 글로벌 세포·유전자치료제(CGT) 시장은 지난 몇 년간 극심한 냉각기를 겪었습니다. 관련 기업들이 임상 실패와 투자 위축으로 잇따라 사업을 축소하고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시장에서의 기대감이 크게 꺾인 상태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면역세포치료제 개발기업 바이젠셀이 희귀 혈액암인 'NK-T세포 림프종' 세포치료제로 의미있는 임상 결과를 발표해 주목받고 있습니다. 임상 2상에서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했다는 소식 때문인데요.
기평석 바이젠셀 대표는 전날(2일) 열린 기업설명회에서 "이번 임상을 통해 세포치료제가 실제 치료제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번 성적표가 그동안의 침체를 털어내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바이젠셀, 새 최대주주 맞아 '새 판짜기'
바이젠셀은 2013년 가톨릭대 기술지주회사 1호 자회사로 출발했습니다. 혈액에서 채취한 T세포(면역세포포의 한 종류)를 항원 특이적 세포독성 T세포(CTL)로 분화·배양하는 '바이티어(ViTier)' 플랫폼을 바탕으로 혈액암 등 난치성 질환 치료에 도전해 왔습니다.
설립 초기부터 기술 잠재력을 높게 본 보령제약이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해 최대주주 자리를 지켜왔고, 2021년에는 기술특례 상장을 통해 코스닥에 입성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뚜렷한 임상·사업 성과가 나오지 못하면서 주가 흐름은 부진했고, 시장의 관심도 점차 식어갔습니다.
분기점은 올해 초였습니다. 가은병원을 운영하는 가은글로벌이 보령이 보유한 지분을 인수해 새로운 최대주주로 올라섰습니다. 가은글로벌은 유도만능줄기세포(iPSC) 기반 CAR-NK 등 최첨단 세포·유전자치료제를 개발하는 테라베스트의 최대주주이기도 합니다. 바이젠셀의 기존 임상 파이프라인(현재)에 테라베스트의 iPSC CAR-NK 파이프라인(미래)이 더해지면서, 양사 간 시너지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습니다.
VT-EBV-N 2상 임상 결과는
이런 가운데 나온 것이 바이젠셀의 야심작이자 세포 치료제인 'VT-EBV-N'의 2상 결과 입니다. 무려 7년간의 임상 끝에 나온 것입니다.
VT-EBV-N은 엡스타인-바 바이러스(EBV) 항원을 특이적으로 인식하는 자가 T세포(CTL)를 환자에게 투여하는 면역세포치료제입니다. 바이젠셀의 'ViTier' 플랫폼을 통해 제조한 제품으로, 적응증은 NK-T세포 림프종입니다.
이번 2상은 1차 항암·방사선 치료 이후 완전관해(Complete Remission, CR)에 도달한 환자 48명을 대상으로 무작위배정·이중맹검·대조군 시험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관해 후 재발을 막기 위한 유지요법으로 VT-EBV-N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평가하기 위한 것입니다. 영상·혈액검사상 암이 보이지 않는 상태지만, 통상 2년 내 재발 위험이 높은 고위험 관해 환자군입니다.
임상의 성패를 좌우하는 1차 평가변수인 2년 무질병생존율(DFS)은 시험군 95.0%, 대조군 77.6%로 나타나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했습니다. 재발·사망 등 이벤트 발생률도 시험군 4.8%, 대조군 32%로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2차 평가변수인 전체생존(OS)은 시험군에서 사망 사례가 보고되지 않았으나, 환자 수와 관찰 기간의 한계로 통계적 유의성 기준에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안전성 측면에서는 중대한 이상반응이 보고되지 않았다고 회사는 설명했습니다.
조건부 허가, 문은 얼마나 열렸나
바이젠셀은 이번 2상 결과를 바탕으로 내년 조건부 품목허가 신청에 나서 2027년 상업화를 추진하겠다는 로드맵을 제시했습니다.
VT-EBV-N이 겨냥하는 NK-T세포 림프종은 1차 항암·방사선 치료 후에도 2년 내 재발률이 높은 희귀 혈액암으로, 관해 후 표준 유지요법이 없는 영역입니다. VT-EBV-N은 개발단계 희귀의약품 지위를 바탕으로, 임상 2상 결과만으로도 식품의약품안전처 신속심사 및 조건부 품목허가 신청이 가능한 적응증에 속합니다. 조건부 품목허가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가질 수 있는 부분입니다.
다만 대상 환자 수가 48명으로 많지 않고, 2차 지표인 전체생존(OS)에서 통계적 유의성이 확인되지 않은 점은 규제 당국이 면밀히 들여다볼 부분입니다. DFS 개선과 재발 억제 효과를 어느 수준까지 '임상적 유의성'으로 볼 것인지, 제한된 규모의 임상 데이터를 조건부 허가 근거로 삼기에 충분한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바이젠셀은 VT-EBV-N으로 2027년 78억원을 시작으로 2031년까지 약 1200억원의 누적 매출을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국내 환자 수와 희귀질환 특성 등을 감안하더라도 다소 도전적인 목표로 평가됩니다.
VT-EBV-N이 조건부 허가를 받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을 확보하려면 건강보험 진입이 사실상 필수입니다. 관해 후 재발을 막기 위한 유지요법이라는 특성상, 고가 세포치료제를 추가로 투여했을 때 얻는 임상적 이득과 비용효과성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입증할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
희귀질환이고 표준 유지요법이 없는 영역이라는 점은 긍정적인 요소지만, 소수 환자를 대상으로 한 2상 데이터만으로 건강보험 재정 부담의 정당성을 설명해야 한다는 한계도 동시에 안고 있습니다.
간암 수술 후 보조요법(Adjuvant therapy)으로 허가를 받은 지씨셀의 '이뮨셀엘씨' 역시 아직 건강보험 급여권 밖에 머물러 있습니다.
유도만능줄기세포 기반 치료제, 미래 될까
이제 바이젠셀의 '다음 단계', 즉 미래 파이프라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평석 대표는 "혈액암을 넘어 고형암까지 세포치료제로 공략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환자 수와 시장 규모 측면에서 혈액암보다 월등히 큰 고형암 영역을 공략해야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 핵심이 테라베스트와 공동 개발하는 iPSC(유도만능줄기세포) 기반 CAR-NK 플랫폼을 활용한 뇌종양(교모세포종), 간세포암 치료제입니다. 바이젠셀은 iPSC 플랫폼을 통해 지속력, 침투력, 면역회피능력을 가진 CAR-NK 치료제를 생산합니다.
iPSC 유래 NK세포는 균일한 품질로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환자 개개인의 세포를 사용하는 맞춤형 자가세포치료제에 비해 원가·공급 측면의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앞서 페이트 테라퓨틱스, 센츄리 테라퓨틱스 등 글로벌 선도 기업들이 iPSC·CAR-T·CAR-NK를 앞세워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가 상업화의 장벽을 넘지 못해 구조조정에 나선 사례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플랫폼 자체의 잠재력과는 별개로, 실제 환자에서 일관된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하고, 제조·공급 체계를 비용 효율적으로 구축하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바이젠셀 김신일 전무는 "페이트 테라퓨틱스 등이 극복하지 못한 대량 생산의 문제를 우리는 해결했다는 점에서 차별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바이젠셀·테라베스트 연합이 iPSC 기반 세포유전자치료제 개발 경쟁에서 의미 있는 레퍼런스를 쌓을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VT-EBV-N의 상업화 성패와 더불어, iPSC CAR-NK 파이프라인에서 어떤 초기 데이터를 내놓느냐가 향후 몇 년간 기업가치를 좌우하는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