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상시험수탁기관(CRO)은 바이오 산업의 핵심 인프라입니다. CRO는 임상시험의 전 과정을 포괄적으로 수행하며, 제약·바이오 기업이 신약 개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전략적 파트너 역할을 합니다. 상장된 CRO만 해도 10여 곳에 이를 만큼 외형은 커졌지만, 자본시장에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역할에 비해 수익성과 성장성에 대한 기대감이 낮았기 때문입니다. 국내 CRO들은 좁은 내수 시장에서 유사한 서비스를 바탕으로 경쟁하면서 매출은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지만, 인건비 부담과 단가 압박으로 인해 수익성이 낮은 구조로 시장에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컨설팅사 BCG는 향후 10년 안에 CRO 산업이 기술과 데이터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인력과 네트워크 중심이었던 기존 산업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국내에서도 감지되고 있습니다. 국내 CRO인 씨엔알리서치는 기술 기반의 서비스 확장과 디지털 전환을 통해 새로운 성장 모델을 구축해 나가고 있어 업계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CRO, '애매한 중간' 설 자리가 없다
BCG는 CRO 산업이 환자 모집의 어려움과 강화되는 규제 환경으로 인해, 기존의 인력 중심 운영 모델이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최근에는 디지털 기술과 AI 도입이 가속화되면서, 데이터 수집, 모니터링, 리스크 분석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BCG는 이러한 흐름을 기존 인력·네트워크 중심의 레거시 CRO 모델에서 디지털·플랫폼 기반 모델로의 구조적 전환으로 이해하며 향후 시장이 두 축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하나는 통계·영상·RWE(리얼월드데이터) 등 특정 기능에 특화된 기능 중심 CRO, 다른 하나는 기술·데이터·글로벌 네트워크와 전주기 서비스를 모두 갖춘 플랫폼형 풀서비스 CRO입니다. 기술력과 품질 경쟁력이 뚜렷하지 않은 중간형 CRO는 경쟁에서 밀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BCG의 전망입니다.
씨엔알리서치 "엔드투엔드 플랫폼 CRO 지향"
씨엔알리서치는 국내 1호 CRO로서, 20년이 넘는 업력 동안 다수의 국내외 임상시험을 수행해 왔으며, 여러 국산 신약과 바이오의약품 개발 과정에서 임상 파트너로서의 경험과 신뢰를 쌓아왔습니다. 또한 매년 성장을 이어가며, 지난해에는 597억 원의 매출과 36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는 등 건실한 실적도 확보하고 있습니다.
씨엔알리서치는 이러한 산업 전환기에 '엔드투엔드 플랫폼 공급자'로서의 포지셔닝을 선택했습니다. 본사와 함께 트라이얼인포매틱스, TI Image, C&R SMO, GCCL, ABC Bioscience 등 자회사·관계사, 그리고 해외 법인을 하나의 생태계로 구성해 'Global·End-to-End·Data·AI'를 축으로 하는 그룹 차원의 플랫폼 CRO 모델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연구·탐색 단계부터 비임상 전략 수립, 임상 1·2·3상, 허가, 시판 후 안전성·유효성 평가에 이르기까지 신약 개발의 전 과정을 하나의 파이프라인으로 설계하는 것이 씨엔알리서치의 기본 전략입니다. 이를 위해 본사뿐 아니라 비임상 컨설팅, 센트럴랩, SMO 등 다양한 기능 조직 간의 유기적 연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관계사인 ABC Bioscience는 비임상부터 초기 임상까지를 아우르는 신약 개발 컨설팅 회사로, 독성·약리 등 전임상 데이터를 바탕으로 임상 개발 전략 수립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회사의 또 다른 핵심 역량은 센트럴랩 기능 확보입니다. 센트럴랩은 다기관 또는 다국가 임상시험에서 수집된 검체를 한 곳에서 통합 분석해 데이터의 일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는 전문 기관입니다. 다양한 시험기관 간에 발생할 수 있는 통계적 편차를 줄이고 결과의 정확도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씨엔알리서치는 GC셀과 합작한 GCCL을 통해 센트럴랩 역량을 확보했으며, 이를 통해 임상 단계에서 발생하는 바이오마커와 안전성 데이터 등을 일괄적으로 관리·분석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했습니다.
자회사 생태계로 구현하는 'Global·Data·AI'
씨엔알리서치는 자회사·관계사와의 시너지를 통해 단순한 서비스 제공을 넘어 플랫폼 모델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BCG가 제시한 미래 CRO 모델의 각 기능을 담당하는 전문 조직에 가깝습니다.
트라이얼인포매틱스(Trial Informatics)는 전자자료수집(EDC), 임상시험관리(CTMS), 대시보드 등 임상 IT·데이터 솔루션을 개발하며, AI·자동화 기술을 접목해 데이터 품질 관리를 고도화하고 있습니다.
TI Image는 영상 평가 전문 CRO로, 항암제·희귀질환 임상에서 활용되는 CT·MRI 등의 의료 영상을 글로벌 기준에 따라 판독·분석하고, 블라인딩 및 품질 관리까지 수행합니다. 향후 AI 영상 분석과의 접목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C&R SMO는 임상시험실시 지원기관(SMO)으로, 병·의원에 전담 CRC를 배치해 환자 등록, 방문 일정 관리, 데이터 수집 등을 지원합니다. 이는 시험기관의 행정 부담을 줄이고 환자 유지율을 높이는 데 기여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기능 조직이 C&R 본사를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플랫폼 구조를 형성하고 있으며, 스폰서 입장에서는 C&R과의 파트너십 하나로 전주기 임상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조율할 수 있습니다. 회사 관계자는 "엔드투엔드 플랫폼을 위해 추가적인 필요한 서비스에 대해 파트너사와 협력, M&A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K-플랫폼 CRO 성공모델 제시할 것"
씨엔알리서치 관계자는 "우리 전략은 단기 수익보다는 플랫폼 가치에 기반한 지속 투자와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존의 인건비 중심 CRO 모델은 마진과 성장성의 한계가 분명한 만큼, 데이터·IT·AI 역량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연결해 레버리지가 높은 수익 구조를 만들겠다는 계획입니다.
물론 과제도 존재합니다. 디지털·AI 관련 투자는 상당한 초기 비용이 소요되고,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은 인력·규제·컴플라이언스 리스크를 동반합니다. 또한, 시너지를 실질적인 수익성과 성장률 개선으로 연결시키는 실행력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씨엔알리서치의 '플랫폼 CRO' 모델이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을지, 또 구체적인 성과를 내 CRO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지 업계는 주목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