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6~8월 현대차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분주하다. 자동차 생산 때문이 아니라 노조의 파업 때문이다. 노사간 임단협 개시부터 현대차의 신경은 온통 노조에 가 있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 87년 노조 출범 이래 22차례 파업을 했다. 무파업으로 지나간 해는 단 4차례 뿐이다. 현대차에게 노조의 파업은 곧 실적 하락으로 직결된다. 그래서 현대차에게 8월은 '잔인한 달'이다.
◇ "1인당 1억원씩 달라"
현대차 노조는 올해도 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13일 조합원 찬반투표를 통해 파업 여부를 결정한다. 이미 지난 7일 쟁의행위 조정신청을 한 터라 중앙노동위원회의 쟁의조정 결과가 나오는 20일쯤 파업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노사는 지난 5월부터 총 18차례 협상을 진행해왔다. 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 75개 조항 180개 항목에 이르는 요구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사측이 이를 거부하면서 결국 파업 수순을 밟게 됐다.
노조는 현대차의 지난해 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상여금 800% 지급, 61세 정년 보장이 포함돼 있다. 아울러 노조원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지 않을 경우 기술 취득 비용으로 1000만원씩을 지
급하라는 내용도 있다.
사측이 노조의 요구를 모두 들어줄 경우 현대차는 노조원 1인당 1억원에 가까운 돈을 지급해야한다. 현대차의 지난해 평균연봉이 9400만원이었음을 감안하면 작년 연봉보다 많은 금액을 추가로 달라는 요구인 셈이다.
◇ 노조, 유난히 강하게 나오는 까닭은
현대차 노조의 위력은 대단하다. 현대차 노조는 금속노조 소속 각 지부 중에서도 가장 강성으로 꼽힌다. 그동안 금속노조가 진행해온 각종 정치투쟁에서도 선봉에 섰던 것이 현대차 노조다.
올해 현대차 노조는 그 어느 때보다 더욱 강성을 보이고 있다. 오는 9월로 예정된 차기 노조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있어서다. 현재 현대차 노조 내에는 총 7개 계파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따라서 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계파간 선명성 확보를 위한 물밑 작전이 치열하다. 현 노조 집행부가 사측을 상대로 '강력한 요구안'을 제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노조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사측을 강하게 압박하는 카드를 뽑아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전략이다.
전직 현대차 노조 간부는 "일단 지르고 보자는 생각이 강하다"며 "파업을 하더라도 어차피 사측과 물밑으로 비공식 교섭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일정 부분 수용될 것을 예상하고 안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또 "2년마다 한 번씩 있는 위원장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는 소위 '재집권'을 위해서라도 강한 압박 카드를 꺼내드는 것이 통상적인 수순"이라고 덧붙였다.
◇ 현대차 "더 이상 안밀린다" 강경
현대차는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오는 14일로 예정된 비정규직 전면파업까지 겹치며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여있다. 비정규직 파업에 정규직 파업까지 겹칠 경우 최악의 한 해를 맞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온건 집행부가 들어섰던 지난 94년과 2009년~2011년의 무파업 타결 때와는 확연힌 달라진 분위기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올해 초부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것이 현대차의 반응이다.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사실 지난 5월 첫 협상때부터 난항을 예상하기는 했다"며 "하지만 협상이 진행될수록 요구 사항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정도로 늘어나더니 180개까지 확대되는 것을 보고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도 노조가 무리한 요구를 한 적은 많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면서 "회사를 화수분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따름"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해외 생산 확대'로 맞불을 놓겠다는 계산이다. 현대차의 해외 판매 비중은 지난 상반기 60%를 넘어선 상황이다. 기아차는 40%대다. 현대차가 노조의 요구에 대해 밀어붙일 카드다. 더 이상 노조의 생산 물량을 볼모로 한 압박에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다.
◇ "올해 파업이 현대차 미래 가늠자"
업계에서는 올해 현대차 노조의 파업에 대한 관심이 높다. 현대차는 내수에서는 수입차에 쫓기고 해외에서도 주춤한 상황이다. 올해를 잘 넘기지 못하면 현대차는 부진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현대차 노조의 파업 여부에 따라 기아차 노조의 향후 방향성이 정해진다는 점도 현대차그룹에게는 악재다. 현대·기아차 노조가 동반 파업에 돌입할 경우 그 피해는 더욱 커진다. 현대·기아차를 제외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모두 노사협상을 마무리한 상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올해 현대차 노조의 파업 강도가 예상보다 강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노조 위원장 선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어서 노조가 장시간 이 문제를 끌고 가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