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옥계 = 노명현 기자] “대기업 회장의 중요성을 이번에 실감했다. 한 사람의 잘못된 선택으로 지역 경제가 파탄 났다.”(옥계 주민 강모씨)
지난 20일 찾은 강원 강릉시 옥계 일대는 여느 시골마을처럼 조용하면서도 한산했다. 주민들을 만나려고 방문한 마을에선 밭갈이에 나선 주민들도 눈에 띄었다.
겉으로 평온해 보이는 이 곳은 지난 2013년 6월, 포스코 마그네슘 제련소에서 독성 발암물질인 페놀이 유출되면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당시에는 공장에서 발생한 악취로 한 동안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는 게 지역 주민들의 설명이다. 1년 10개월이 지난 지금은 다행히 악취가 나거나 오염된 토양이 보이진 않는다.
사고가 터진 마그네슘 제련소는 부지가 49만㎡로 꽤 큰 규모지만 주변은 썰렁했다. 포스코가 조성해 강릉시에 기부채납한 진입 도로에는 이따금 차량이 지나다녔다.
현재 옥계 제련소의 가동은 중단된 상태지만 근처로 다가가자 장비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제련소 관계자는 “마그네슘을 제련하는 공장은 가동을 멈췄지만 마그네슘으로 판재 등 제품을 생산하는 시설은 가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를 일으킨 제련시설 옆에는, 내달 완공을 앞둔 토양 정화 공장이 들어서 있다. 이 공장은 앞으로 3년 동안 페놀에 오염된 토양을 정화해 원래의 옥계로 되돌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토양 정화는 제련소 내 오염된 토양이 대상이다. 전수조사 결과, 그 외 마을지역의 토양은 오염되지 않았다는 게 강릉시와 포스코의 주장이다. 현재 강릉시와 원주지방환경청 등은 매달 옥계 지역의 하천과 해수 등을 모니터링 하고 있다.
▲ 포스코 옥계 마그네슘 제련소 정화시설 일부 |
◇ 관광객 발길 뚝.. 농산물도 안 팔려
제련소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는 옥계 해변이 있다. 여름철에는 해수욕을 즐기려는 인파로 북적이는 곳이다. 하지만 작년 여름에는 관광객들이 거의 찾지 않았다고 한다. 옥계에 페놀이 유출됐다는 소식 때문이다.
옥계 해변에서 D민박집을 운영하는 강 모(68)씨는 “페놀 사고가 터진 뒤 관광객이 뚝 끊겼다”며 “번영회 측에서 포스코에 항의하자 직원들이 놀러올 거라며 텐트를 치는 등 법석을 떨었지만 결국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 페놀 유출로 오염된 강릉 옥계의 하천 |
바닷가 뿐 아니라 농촌 마을도 피해가 크다. 옥계는 마늘과 고추 등이 특산물이지만 페놀로 토양이 오염됐다는 소식에 판로가 막혔다. 예전에는 김치 업체들이 배추밭을 통째로 사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
상황이 이렇자 포스코엠텍 직원들이 옥계 주민들의 농산물을 직접 사주기도 했다. 사고가 난 해인 2013년 포스코엠텍은 옥계 농산물 팔아주기 행사를 열었고 1억원 상당의 고춧가루를 구매했다.
문제는 언제까지 포스코 직원들이 농산물을 대신 사줄 수는 없다는 거다. 옥계 송화마을에 사는 정 모(58)씨는 “사고가 난 후 포스코 직원들이 농산물을 사줘서 다행이었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라며 "옥계 전체가 페놀 유출지역이란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농산물 판매에 애를 먹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대기업인 포스코 제련소가 들어와 지역 상권이나 경제가 살아날 것으로 기대했는데 페놀 사고로 제련소 직원도 다 떠나 그나마 있던 가게들도 문을 닫았다”고 덧붙였다.
◇ 지역민 간 갈등도 발생.. 대책도 허둥지둥
포스코는 페놀 유출사고 보상 차원에서 옥계 지역발전기금 11억원을 내놓았다. 또 각 마을마다 1000만원, 지하수 등 피해가 입증된 횟집에는 각 1500만원씩을 지급했다는 게 인근 주민들의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 사이에 싸움도 생겼다. 가구 수를 따지지 않고 일률적으로 보상금을 지급했기 때문이다.
마을 주민 이모(54)씨는 “마을마다 가구 수가 제각각인데 일괄적으로 같은 돈을 주니 불만이 생기는 게 당연하지 않냐”며 “어떤 집은 보상금으로 고작 몇 만원만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포스코 관계자는 "주민단체가 기금의 일부를 주민들에게 보상금으로 나눠줬는지 우리는 모른다. 페놀이 유출된 주수천 근처에서 경작하던 주민들과 지역경제발전기금을 제외하곤 직접적으로 보상을 하진 않았다"며 "향후 추가적인 보상계획도 아직까지는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제련소 근처에서 농사를 짓던 한 주민은 페놀 중독 진단을 받았다. 추가적인 주민 피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포스코는 이달 초 제련소 반경 4km 이내의 13개리(里)에 사는 옥계 주민들을 대상으로 페놀 유출 건강조사를 실시했다.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학생들을 동원해 홍보활동도 펼치고, 검진을 받는 주민들에게 줄 상품도 마련했다.
그런데 막상 건강검진을 받겠다는 주민들이 예상보다 많아지자 늦게 신청한 주민들에게는 상품도 주지 않고 오히려 검진 참여를 제지해 원성을 샀다.
또 다른 주민 유모(62)씨는 “페놀 사고 후 포스코가 하는 행태를 보면 대기업이 맞나 싶을 정도로 왔다 갔다 한다”며 “이번 건강검진 결과도 믿을 수 있을지 의심이 간다”고 불신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