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옥계 = 노명현 기자]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기술 파트를 맡아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옥계 마그네슘 제련 사업이 페놀유출 사고로 1500억원을 날린 채 올스톱됐다. 제련 과정에서 독성 물질이 유출된 만큼 기술지원과 사장으로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했던 권오준 회장도 자유로울 순 없는 상황이다.
이 사고로 청정지역이던 강릉시 옥계는 한 순간에 오염지역이 돼 지역 경제가 마비되는 불행을 겪고 있다. 이로 인해 지역 주민과 환경단체는 향후 공장 재가동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포스코의 마그네슘 제련 사업 재추진은 불투명한 상태다.
◇ 권 회장도 공장 설립 참여
포스코의 강릉 옥계 마그네슘 제련소 사업은 정준양 전 회장 때 추진돼 준공(2012년 11월)됐다. 이 사업은 정 전 회장이 만든 ‘미래성장동력실’에서 주도했는데 여기에 권오준 회장도 기술 파트를 맡아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릉시 고위 관계자는 “마그네슘 제련 사업은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원장 때) 처음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포스코의 한 관계자 역시 “권오준 회장이 RIST 원장 때 정준양 회장에게 마그네슘 제련 사업을 건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가 옥계에서 제련소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했던 강원발전연구원 김일중 실장은 "당시 권오준 원장은 포스코의 CTO(기술총괄) 역할을 했고, 특히 마그네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며 "2차전지의 중심 소재가 리튬에서 마그네슘으로 넘어갈 것으로 전망하며 성장성을 높게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기술통인 권 회장은 마그네슘을 비롯해 비철금속 사업에 큰 관심을 보여 왔다. 포스코는 이달 초 '2015 제네바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된 신형 스포츠카인 포르쉐의 '911 GT3 RS'에 자사의 마그네슘 판재가 차량 지붕에 적용됐다고 대대적인 홍보에 나서기도 했다. 마그네슘 사업에 대한 권 회장의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포스코의 마그네슘 야망
포스코의 마그네슘 사업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포스코는 전라남도 순천시와 마그네슘 판재 사업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이듬해 순천 공장을 준공했다. 판재를 만들기 위한 마그네슘을 전량 수입하던 포스코는 이후 제련사업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2009년에는 강원도와 마그네슘 제련사업 관련 MOU를 맺고, 옥계에 제련공장을 짓기로 했다. 특히 RIST는 강릉에 분원인 강원산업기술연구원을 설립했다. 당시 권오준 원장은 “이 연구원에서 마그네슘 공장에 필요한 요소기술 뿐 아니라 마그네슘이 사용되는 산업의 이용기술을 개발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포스코가 강릉 옥계에 제련소를 세운 것은 마그네슘 일관생산체제를 구축해 소재사업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다. 옥계는 마그네슘 원료인 돌로마이트(백운석) 매장량이 2억 톤에 달해 세계 2위 규모다. 옥계 제련소에선 백운석을 제련해 마그네슘 잉곳(ingot)을 생산하고, 순천 마그네슘 판재공장에선 마그네슘 잉곳을 녹여 마그네슘 판재제품을 만든다는 것이 포스코의 계획이었다.
◇ 페놀 유출사고로 깨진 꿈
옥계 마그네슘 제련소는 석탄가스를 동력으로 사용했는데 이 석탄가스(석탄을 태워 발생하는 수소와 메탄 등을 가스화해 연료로 사용)를 만드는 과정에서 페놀이 발생한다. 옥계 마그네슘 제련소는 가동을 시작한 지 7개월째인 2013년 6월 페놀을 모아둔 응축수 탱크의 밸브에 균열이 생기면서 페놀이 유출됐다. 제련 과정에서 발생한 진동이 지면을 통해 전달되면서 밸브가 깨진 것이다.
사고 후 포스코는 4일 동안 오염물질이 유출됐고, 유출량은 15.7톤 가량이라고 밝혔다. 이에 반해 환경운동연합 등 단체는 유출 기간이 최소 45일, 유출량도 180톤 이상 됐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옥계의 한 주민은 "제련소가 들어선 지대는 지반이 약한 곳"이라며 "포스코가 이 같은 특성을 감안하지 않고 공장을 건립해 사고가 난 것 같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연산 1만톤 규모의 마그네슘 제련 공장을 짓는데 480억원 가량을 투자했다. 이후 추가로 2000억원을 투자해 2018년까지 마그네슘 제련 생산 규모를 10만톤으로 확장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투자 계획은 페놀 유출로 공장이 멈춰서면서 물거품이 됐다. 대신 페놀 유출 사고에 따른 피해보상과 정화작업에 100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게 됐다. 포스코는 지난해 옥계 토양오염 정화를 위해 894억원의 충당부채를 쌓기도 했다.
투입 비용의 대부분은 오염된 토양을 정화하는데 사용된다. 포스코는 현재 내달 완공을 목표로 오염된 토양과 지하수를 정화하기 위한 공장을 짓고 있다. 토양 정화작업은 2017년 말까지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페놀 유출로 오염된 옥계의 토양을 정상적으로 되돌리기 위해 1000억원 가량을 투입할 것”이라며 “이는 주민 피해보상과 정화설비 및 운영 등을 전부 포함한 비용”이라고 설명했다.
옥계 송화마을의 한 주민은 "이번 유출사고로 포스코는 물론 옥계도 큰 피해를 봤다"며 "기업 입장에선 안 써도 되는 돈이 들어간 것이고, 옥계는 오염지역이란 이미지와 함께 관광객의 발길이 끊겨 손해를 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 포스코 옥계 마그네슘 제련소 정화시설 일부 |
■페놀
페놀은 피부에 닿으면 발진이 생기고, 체내에선 소화기와 신경 계통에 장애를 일으키는 발암물질이다. 음용수 수질 기준으로 페놀 농도 기준은 0.005ppm 이하, 배출허용기준은 5ppm 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