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의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 상반기 시황 호조를 통해 일시적인 실적개선이 이뤄졌지만 글로벌 경기침체와 주요 수출국인 중국이 자급률을 높이면서 수출길은 갈수록 험난해지고 있다. 업계에선 자체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석유화학산업의 위기 상황과 구조조정이 필요한 제품, 경쟁력 강화 방안 등을 알아본다. [편집자]
나일론 소재의 원료를 생산하는 카프로가 생사기로에 서있다. 2012년 이후 주요 매출처들이 하나 둘씩 떨어져나가고 주력 제품인 카프로락탐(CPL)의 경쟁력도 상실한 탓이다.
현재 카프로의 최대주주는 지분율 19.9%인 ㈜효성, 2대주주는 코오롱인더스트리(19.89%)다. 나일론을 생산하는 두 기업은 안정적인 원료 확보를 위해 카프로에 지분을 투자했다. 경영은 카프로가 독자적으로 하고 있다.
◇ CPL, 팔 곳이 없다
카프로가 생산하는 CPL은 나일론소재의 원료다. 나일론섬유는 의류와 타이어코드 등에 사용된다. CPL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카프로가 생산한다. 경쟁자가 없다는 의미다. 카프로는 CPL 국내 수요의 절반가량인 49.3%를 국내 나일론 제조업체에 공급하고 나머지는 주로 중국 시장에 수출했다.
그러나 중국에서 CPL 생산설비를 늘리며 수입을 줄이기 시작했고, 결국 중국 수출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 중국이 CPL 자급률을 계속해서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중국의 CPL 생산능력은 58만5000톤 수준이었지만 2013년 180만톤으로 급증했고, 올해는 260만톤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 인해 글로벌 CPL 시장이 중국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특히 중국이 CPL 생산설비를 지속적으로 늘리면서 자국 내에서도 공급 과잉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결국 중국도 남은 물량을 수출할 것으로 전망돼 카프로에게는 절체절명의 위기다. 결국 카프로는 생산량을 조절하기 위해 2013년 생산시설의 일부를 중단했다.
실제 카프로의 실적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지난해 카프로의 매출액은 3915억원에 불과했고, 영업손실 1014억원을 떠안았다. 2012년부터 3년째 적자다. 올 상반기의 경우 25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실적 개선 여지가 보이지 않고 있다.
◇ 존폐 기로에 섰다
주요 매출처 중 하나인 코오롱은 카프로와의 거래를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는 추세다. 현재 코오롱그룹 중에선 코오롱패션머티리얼만이 나일론섬유를 만들기 위해 카프로로부터 CPL을 구매하고 있다. 이마저도 지난 상반기 기준 195억원에 불과하다.
코오롱은 카프로가 아니더라도 더 저렴한 CPL을 중국 등으로부터 들여올 수 있어 원가경쟁력 확보를 위해 카프로로부터 매입량을 줄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효성은 카프로의 지분만 들고 있을 뿐 경영과는 관계없다는 입장이다.
카프로가 처한 또 다른 위기는 국내 CPL의 전방산업인 나일론섬유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나일론섬유는 폴리에스터로 대체되면서 수요가 줄고 있다. 특히 국내 나일론섬유는 범용 제품이어서 경쟁력을 상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카프로가 CPL을 팔 곳이 점점 줄어든다는 의미다.
한 섬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일본 기업들은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전환해 CPL의 공급과잉 및 수요감소 현상에 대응했지만 카프로는 적기 대응에 실패했다”며 “중국에서 나일론을 생산하는 업체들은 고품질 CPL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아 카프로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CPL 시황이 나아지지 않고 있어 카프로의 1공장은 여전히 가동을 멈추고 있다”며 "경영 상황이 워낙 좋지 않아 돌파구를 찾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