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내 조선업은 수주 급감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일감 부족이 지속되면서 이미 수주한 물량을 건조하는 데에 그치고 있다. 조만간 도크가 비는 상황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상태다. 업체별로 고강도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지만 글로벌 조선 업황 부진이 계속돼 하반기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 현대중공업만 한숨 돌려
현대중공업의 상반기 연결기준 매출액은 전년대비 16.7% 감소한 20조1355억원이었다.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흑자전환한 8824억원, 당기순익도 흑자전환한 6368억원을 나타냈다. 2분기 실적도 매출액은 전년대비 17.4%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흑자전환했다.
악조건 속에서도 현대중공업이 그나마 한숨을 돌릴 수 있었던 것은 구조조정의 효과 덕분이다. 고강도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들을 일찍 털어냈다. 사실 이번에도 약 2600억원 규모의 퇴직 위로금이 발생했지만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이는 오랜 기간 진행한 구조조정으로 체질개선에 일정부분 성공했음을 의미한다.
반면,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실적은 부진했다. 하지만 이들의 실적 부진에는 수긍할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삼성중공업의 상반기 매출액은 전년대비 29.7% 증가한 5조2509억원이었다. 영업손실은 전년대비 81.8% 줄어든 2776억원을 나타냈다. 2분기 매출액은 전년대비 89% 증가했고 영업손실도 전년대비 81.7% 줄었다.
이로써 삼성중공업은 작년 4분기부터 이어져 온 흑자행진이 멈췄다. 외형상 삼성중공업의 실적은 좋지 못했다.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상황이 조금 다르다. 이번 실적 부진의 원인은 일회성 비용 증가 탓이다. 희망퇴직 위로금 등 인력 구조조정 관련 일회성 비용 약 2100억원이 2분기 실적에 반영됐다.
아울러 공정이 지연된 세미리그(반잠수식시추설비)에 대해 향후 발생 가능한 예상 손실도 선제적으로 실적에 반영했다. 전체적인 틀이 흔들리는 악성 적자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삼성중공업은 하반기에는 수익성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프로젝트에서는 추가 인센티브 수령도 예정돼 있다.
대우조선해양도 삼성중공업과 비슷하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최근 전임 대표들의 비리들이 드러나고 있는데다 업황 부진까지 겹치면서 상황이 간단치 않은 상태다. 이에 따라 감사를 밭은 회계법인들이 대우조선해양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 숫자상 많은 손실이 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추세상으로 보면 손실폭을 상당부분 줄였다. 상반기 대우조선해양의 영업손실은 4499억원으로 작년보다 절반 이상 감소했다.
회계법인 입장에서는 부실 논란을 빚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에 대해 보수적인 회계처리를 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삼일회계법인은 일부 해양 프로젝트에서 선주와 합의된 인센티브 프로그램 등을 인정하지 않았다. 선주 측 요구로 공사가 연장된 부분도 지체보상금 발생을 이유로 손실 처리했다. 또 조선업의 경우 경영환경이 유사하지만 경쟁사와 다른 기준으로 이연법인세 자산의 자산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 하반기도 어둡다
문제는 하반기 조선업황 전망도 좋지 않다는 점이다. 조선업은 경기에 민감한 업종이다. 하반기에도 글로벌 경제가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조선업황 회복도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다. 더 큰 문제는 발주 급감이다. 선박 발주가 끊기면서 업체들의 일감이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올해 신조선 발주량은 전년대비 70~80% 가량 감소할 것으로 보고 았다. 지난 1996년 이후 처음으로 중고선박의 거래량이 신조선의 발주량을 넘어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여전히 선박에 대한 수요는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고선 거래가 활발하다는 것은 신조선에는 수요가 몰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선박 가격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발주량 감소는 조선업체들에게 직격탄이다. 발주되는 선박이 없다는 것은 미래에 조선업체들이 건조할 선박이 없다는 의미다. 선박 건조에 걸리는 시간은 대체로 2~3년이다. 수주를 통해 미래 일감들을 쌓아둬야한다. 하지만 현재 발주는 끊기고 수주가 전무하다시피 하다. 올들어 7월까지 국내 주요 조선업체들의 수주량은 전년대비 71% 줄었다. 결국 업체들은 과거 수주한 물량만 소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현재 업체들의 수주잔량이 전년대비 10~30%가량 감소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현재의 수주잔량 감소 속도는 심각한 수준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상반기에 대형 해양프로젝트 인도가 마무리되면서 하반기에는 수주잔량 감소폭이 더 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신영증권에 따르면 올해 연말기준 매출액 대비 주요 조선업체들의 수주잔량은 1.1~1.5년치 정도가 남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경자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2015년~2016년의 수주 부진으로 2018 년 도크가 비기 시작할 것"이라며 "올해 조선 빅 3의 상선 인도량은 전년대비 각각 4~14척 늘고 고수익 가스선 비중이 2015년 23%에서 2016년부터 40~50%대로 늘지만 2018년 인도량이 급감하는 만큼 하반기 상선 수주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구조조정에 달렸다
업계에서는 조선업의 성패는 구조조정 결과에 달렸다고 보고 있다. 지난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조선 빅 3의 평균 수주액은 업체별로 100억달러, 상선 수주액은 60억달러 규모였다. 하지만 향후 2~3년간 업체별 평균 수주액은 50억달러, 상선은 40억달러로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구조조정의 기준은 여기에 맞춰져 있다.
현재 조선 빅 3들은 구조조정에 사활을 걸고 있다. 업계 등에서는 올해 하반기가 구조조정을 진행하기에 가장 좋은 적기라고 보고 있다. 조선 빅 3의 구조조정 공통점은 ▲비핵심 자산과 사업부문 매각을 통한 유동성 확보 ▲인력과 설비 감축을 통한 고정비 절감이다. 자산 매각과 인력 조정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사업부문 매각을 통한 사업 조정도 곧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에서는 조선 빅3 중 현대중공업의 자구안이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수주부진에 대비한 비상 계획을 준비한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삼성중공업이 꼽힌다. 삼성중공업의 경우 최근 발표한 1조1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성공여부가 관건이라는 분석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자구안 실현보다 자본 확충이 시급하다는 것이 시장의 견해다.
일각에서는 현재 각 기업의 구조조정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산업 경쟁력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단기적인 손실에 급급해하기 보다는 산업 자체가 위기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그래야만 본원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고 다음 싸이클이 도래했을 때 적절히 대응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강록 교보증권 애널리스트는 "무작정 구조조정을 할 것이 아니라 설계 역량은 꾸준히 유지하고 가격 경쟁력의 핵심인 현장 전문가들도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며 "지금의 위기는 기술부터 생산까지의 종합 경쟁력 싸움인만큼 기업들은 각 상황의 시나리오별 대책을 세우고 불황을 견딜 수 있는 체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