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인사이드 스토리]'으르렁'대는 그랜저와 도시락

  • 2016.11.22(화) 17:51

신차 발표회 통해 '변화의 시작' 강조
역동적인 퍼포먼스 선봬‥젊은층 공략

신차 출시행사를 가는 길은 언제나 설렙니다. 새로운 차량을 직접 눈 앞에서 속속들이 볼 수 있다는 것은 묘한 흥분을 가져다 줍니다. 특히 출시될 신차가 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는 차라면 설렘은 배가 됩니다. 이번 '신형 그랜저' 출시행사가 그랬습니다.

현대차는 '신형 그랜저' 출시행사를 서울에서 꽤 떨어진 외곽에서 열었습니다. 여의도에서 차로 꼬박 한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김포 항공산업단지에 있는 한 항공기 정비 격납고였습니다. 초겨울 들녘을 가로질러 허허벌판에 세워진 격납고에서 행사를 한다니 궁금증이 더욱 커졌습니다.

사실 좀 요란스럽게도 한다 싶었습니다. 예전처럼 호텔이나 컨벤션 홀 같은 곳에서 하면 오가기도 편하고 좋으련만 굳이 허허벌판에서 하겠다는 의도가 궁금했습니다. 날도 추워진데다 벌판이라 바람도 매서웠습니다. '도대체 어떤 행사를 준비했길래…'. 차에서 내려 행사장으로 가면서 혼자 볼멘소리도 했습니다.

◇ '파격적'이었던 신차 발표회

행사장에 들어서자 내부는 온통 검은색으로 도배가 돼있었습니다. 자칫하면 발을 헛디딜뻔 했을만큼 실내는 어두웠습니다. 행사장은 마치 큰 뮤지컬 무대를 연상케했습니다. 기자들이 객석에 앉아 그 무대에서 일어나는 퍼포먼스들을 바라보는 형태였습니다. 곧 '신형 그랜저'의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무대를 주시했습니다.

이날 행사는 양웅철 현대차 연구개발총괄 담당 부회장의 인사말로 시작됐습니다. '신형 그랜저'가 가진 의미와 탁월함, 고객 가치 제고를 위해 현대차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등등 온통 희망적이고 진취적인 이야기들로 가득했습니다. 아마도 행사의 첫 포문을 여는 자리여서 그랬던 듯 싶습니다.

▲ 루크 동거볼케 전무(왼쪽)와 이상엽 상무(가운데), 피터 슈라이어 사장(오른쪽)이 라디에이터 그릴이 테이핑된 신형 그랜저를 앞에 두고 대화하듯 신형 그랜저의 디자인 핵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사진=이명근 기자/qwe123@)

눈에 띄는 것은 그 다음 순서였습니다. 테이핑이 된 '신형 그랜저'가 등장했습니다. 이어 피터슈라이어 현대·기아차 디자인 총괄 사장과 루크 동거볼케 현대차 디자인 센터장(전무)이 함께 무대에 올랐습니다. 두 사람은 '신형 그랜저'의 디자인 철학과 어디에 디자인의 주안점을 두었는지를 설명했습니다.

무대에 또 한사람이 더 올랐습니다. 이상엽 현대차 디자인 센터 상무였습니다. 이 세사람은 테이핑이 된 '신형 그랜저'를 앞에두고 본격적으로 디자인에 대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부분은 차에 붙은 테이프를 떼어가면서, 어떤 부분은 하얀 테이프를 붙여가며 '신형 그랜저'에 담긴 디자인적 요소들을 풀어놨습니다. 신선했습니다.

▲ 루크 동거볼케 전무(왼쪽)와 이상엽 상무가 신형 그랜저에 직접 테이핑을 하며 디자인 요소를 설명하고 있다.(사진=이명근 기자/qwe123@)

디자인에 대한 설명이 끝난 후에는 '신형 그랜저' 개발에 담긴 의미와 각 부분에 대한 설명, 향후 마케팅 계획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졌습니다. 정락 현대차 총괄 PM담당 부사장과 이광국 현대차 국내영업본부장(부사장)이 차례로 무대에 올라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냈습니다. 무대를 바라보며 문득 현대차가 '신형 그랜저'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 현대차, '변화'에 눈을 뜨다

이날 무대에는 현대차의 핵심 임원들이 대거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크게 두 가지 입니다. '디자인'과 '젊음'이었습니다. 양웅철 부회장부터 이광국 부사장에 이르기까지 각자 담당 파트가 다름에도 불구 그들의 입에서는 '디자인'과 '젊음'이라는 단어가 반드시 등장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왜일까. 해답은 행사가 끝날 때쯤 알 수 있었습니다. 현대차는 '신형 그랜저'를 통해 변화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작년과 올해 계속되는 판매 부진에 현대차는 큰 상처를 입은 상태입니다. 국내외 판매는 계속 감소세입니다. 실적도 지난 3분기에 2010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임원들도 자발적으로 임금 삭감에 나섰습니다.

사실 그동안 현대차는 큰 변화가 필요 없는 곳이었습니다.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신차가 나오는 '족족' 히트를 치는 구조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이제 소비자들은 현대차가 신차를 내놔도 잘 쳐다보지 않습니다. 경쟁자가 많아져서 입니다. 이는 곧 현대차에게도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사진=이명근 기자/qwe123@

현대차는 이번 '신형 그랜저'를 그 변화의 시작으로 삼았습니다. '디자인'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설명에 나선 것도 변화를 알리고 싶어서였습니다. '신형 그랜저'에는 그동안 현대차의 라디에이터 그릴을 장식했던 헥사고날 디자인이 아닌 캐스케이딩 디자인이 적용됐습니다. 앞으로 현대차는 '신형 그랜저'를 필두로 캐스케이딩 디자인으로 '패밀리룩'을 구성할 생각입니다.

또 하나, '신형 그랜저'에는 두 가지 디자인적 함의가 담겨있습니다. 지난 30년간 5세대를 거친 그랜저의 디자인은 '중후함'이 주제였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에 어울리는 차라는 이미지를 심었고 그것이 통용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형 그랜저'에는 '중후함'에 더해 '젊음'을 심었습니다. '미래의 리더와 가족을 위한 차'가 이번 그랜저의 콘셉트입니다.

이상엽 상무는 "이번 그랜저는 중후함과 역동성을 모두 갖췄다"며 "중후함과 역동성을 잘 조합해 젊은 세대와 장년 세대 모두에게 어필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힌트가 있습니다. 현대차는 '신형 그랜저'를 통해 그동안 그랜저가 지녀온 정통성은 유지하되 시대에 맞게 변화를 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랜저의 수요층을 장년에서 청년으로 확대하겠다는 포석이 깔려있습니다.

◇ '신형 그랜저', DNA를 바꾸다

이상엽 상무가 언급했듯이 이번 그랜저에는 '젊음'이 강조됐습니다. 사전 행사가 끝나고 본격적인 신차 공개 행사에사도 이런 생각들은 잘 드러났습니다. 갑자기 가림막과 화면 역할을 하던 격납고의 벽이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여러 대의 '신형 그랜저'가 등장했습니다. '신형 그랜저'들은 벽 뒤편에 위치하고 있던 활주로를 향해 질주했습니다.

활주로를 누비던 '신형 그랜저'들은 군무(群舞)를 펼쳐보였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드리프트(Drift)를 시작했습니다. 드리프트는 최근 현대차의 신형 i30 광고 '핫 해치'에 나오는 것처럼 차가 옆으로 미끄러져 달리는 기술입니다. 주로 스포츠카나 젊은 층을 겨냥한 차량의 역동성을 강조하기 위해 보여주는 기술입니다.

지금껏 중후함의 상징이었던 그랜저가 활주로에서 드리프트를 하는 모습은 색달랐습니다. 이번 '신형 그랜저'에 '젊음'의 상징인 '역동성'을 가미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계획한 퍼포먼스였습니다. 드넓은 활주로에서 야성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신형 그랜저'는 이후 무대 위로 언제 그랬느냐는 듯 중후한 모습으로 올라왔습니다. 그토록 강조했던 중후함과 역동성이라는 이질적인 요소가 어떻게 조화됐는지를 보여준 시간이었습니다.

▲ 사진=이명근 기자/qwe123@

현대차는 '신형 그랜저'가 가진 역동성을 광고에서도 그대로 표현했습니다. 굉음을 내며 도심을 가르는 '신형 그랜저'를 보여주고는 '어? 지금까지 보던 그랜저가 아닌데'라는 카피를 내보냅니다. 더 이상 중장년층에만 어필하는 그랜저가 아닌, 젊은 수요를 노리겠다는 속내를 비쳤습니다.

이광국 현대차 부사장은 "최근 준대형차 시장은 30~40대 젊은 층 수요의 유입이 증가하고 있고 소비자 구성과 니즈가 넓어지고 다양화되고 있다"면서 "젊은층으로 저변을 넓히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타깃을 명확히한 겁니다. 행사가 모두 끝나고 머릿속에 남은 단어는 단 하나, '변화'였습니다. 이날 '신형 그랜저' 신차 발표회 행사를 관통하는 주제는 '변화'였던 셈입니다.

참, 이날 행사에는 또 하나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행사에 제공된 점심은 과거와 달리 도시락이었습니다. 즉석 컵미역국에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시며 무대에 얌전히 전시된 '신형 그랜저'를 바라보는 맛도 괜찮았습니다. '신형 그랜저'에서 '도시락'까지, 이날 행사는 온통 '변화' 일색이었습니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