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의 핵심인 삼성전자 지주회사 전환 작업이 보류됐다.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부재 중이다.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마저 사라졌다. 상법개정 등 외부환경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대내외 환경 악화로 ‘지주회사 삼성’의 추진동력이 힘을 잃고 있다.
▲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24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지주회사 전환이 쉽지 않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24일 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지주회사 전환에 따른 부정적 영향이 존재해 지금으로선 실행이 쉽지 않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지주회사 전환을 검토하겠다고 밝힌지 4개월만에 사실상 잠정 보류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중장기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그 일환으로 성장 및 주주가치를 최적화하기 위해 지주회사 전환 등을 포함한 지배구조 개편을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검토에 소요되는 기간은 약 6개월 정도로 잡았다.
지난 14일에는 삼성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이상훈 사장이 “지주회사 전환은 주주와의 약속”이라며 “예정대로 발표할 것”이라고 공식 확인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오는 5월이면 삼성전자 지주사 전환의 윤곽이 드러나 본격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예상됐다.
권 부회장의 이날 발언은 이런 분위기에서 한 발 후퇴했다. 6개월의 검토 기간이 끝나더라도 당분간은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게 어렵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추진 주체가 없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지주회사 전환은 삼성 지배구조 개편 작업의 핵심 사안인 만큼 이런 일을 결정하려면 총수의 결단과 그룹 전체를 아우르는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 삼성에는 이 두가지 요인 모두 작동하지 않는다.
삼성그룹은 ‘최순실 게이트’ 특검으로 총수인 이 부회장이 지난달 17일 구속된 상태다. 뒤이어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왔던 미래전략실마저 해체됐다. 추진 동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삼성전자를 주축으로 한 지배구조 개편은 힘에 부칠 수 밖에 없다.
외부 환경도 녹록치 않다. 최근 정치권에서 만지작거리고 있는 상법 개정안의 진행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 무엇보다 지주회사 전환시 자사주 활용을 제한하는 방안이 복병이다.
법안 내용처럼 기업분할시 자사주를 미리 소각하거나 의결권 행사를 금지하게 되면 삼성전자가 지금까지 공들여 확보한 자사주(12.8%)가 쓸모 없게 된다. 공정거래법상 삼성전자 지주회사는 요건 충족을 위해 사업자회사 삼성전자 20%를 사들여야 한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
특검을 거치면서 삼성의 경영권 승계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국민적 시선이 많아진 것도 지주회사 보류의 한 요인으로 풀이된다.
2015년 9월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과 삼성물산이 합병, 통합 삼성물산이 탄생했다. 이 부회장은 이를 계기로 삼성물산 지분 17.2%(보통주 기준)를 소유하며 삼성물산과 향후 삼성전자 지주회사로 연결되는 지배구조의 정점에 위치했다. (※삼성그룹 지배구조 참고)
권 부회장은 다만 “지주회사 전환 등 사업구조 검토는 주주와 회사에 매우 중요한 의사결정”이라며 “법률, 세제 등 다양한 측면에서 검토를 진행한 뒤 결과를 주주들에게 공유하겠다”고 말했다.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고민을 완전히 중단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내비친 것이다.
지주회사 전환 보류와 함께 삼성전자가 그간 추진한 글로벌 기업 출신 사외이사 영입도 불발로 끝났다.
권 부회장은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 경험을 가진 외국인 사외이사영입을 다각도로 추진했지만 최근 회사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의 불확실성으로 이번 주총에서 후보 추천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권 부회장은 그러나 “글로벌 기업의 경험과 충분한 자질을 갖춘 사외이사 영입에 대한 회사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삼성전자 주총에선 연결기준 매출 202조원과 영업이익 29조원 달성 등 지난해 경영성과가 보고됐으며 재무제표 승인, 이사보수한도 승인 안건이 다뤄졌다. 또 권 부회장과 윤부근 사장, 신종균 사장 등이 각 부문별 경영현황을 발표하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