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서울대학교 교수가 삼성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학의 교수가 재계 1위 기업을 상대로, 그것도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 소송을 내 그 배경과 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서울대 재료공학부 주승기(65) 교수는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가 자신이 개발한 특허를 침해했다며 갤럭시S 스마트폰 등의 미국내 판매를 금지시켜달라는 청원을 지난 9월 ITC에 제출했다.
ITC는 최근 이 같은 청원을 공식 접수하고 이해관계자 등의 의견을 듣겠다는 공지를 연방관보(Federal Register)에 게재했다. 삼성 측도 지난 20일 ITC로부터 청원 사실을 통지받았다.
주 교수는 청원서에서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가 애플을 따라잡으려고 자신이 낸 특허를 무단으로 도용,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 디스플레이 시장을 독점해 부당이익을 취했다"며 "이는 미국의 산업과 시장, 공정무역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주 교수는 2015년 11월 삼성전자가 자신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한 바 있다. 그럼에도 ITC에 제소한 것에 대해 "한국에선 삼성의 영향력 때문에 공정한 조사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청원서에 기재했다.
주 교수는 실리콘 박막을 입힌 유리판에 니켈 금속막을 덧씌워 결정체를 추출하는 '금속유도측면결정화(MILC)' 기술을 개발해 한국과 미국 등 국내외에서 80개의 특허를 받은 디스플레이 분야의 전문가다. 삼성에 디스플레이 장비를 납품하는 테라세미콘, 비아트론 등에 그의 제자들이 몸담았다.
그는 "삼성이 MILC 기술을 이용해 갤럭시S에 들어가는 디스플레이를 생산하면서도 이와 무관한 레이저 스캐닝 기술을 통해 제조했다고 발표하는 등 의도적으로 사실을 숨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삼성의 발표대로 레이저 스캐닝 기술을 사용하면 갤럭시S 디스플레이에선 니켈이 검출되지 않아야하는데 지난해 11월 서울대 재료분석센터와 카이스트 나노팹센터에 분석을 의뢰한 결과, 니켈 검출 사실을 통보받았다는 것을 핵심 증거로 제시했다.
주 교수의 변호를 맡은 문형근 변호사는 "국내 대기업이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개발한 기술을 제대로 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사용한 선례가 많다"며 "연구자와 엔지니어 권익 보호를 위해 ITC제소를 시작으로 민형사 사건으로 제소 범위를 넓혀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측은 당혹감을 나타냈다. 삼성디스플레이 관계자는 "우리가 MILC 공법이 아닌 레이저 공법을 이용하는 것은 업계가 다 아는 사실"이라며 "검찰 조사 등으로 주 교수의 주장이 터무니없다는 게 밝혀졌는데도 계속 의혹을 제기해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ITC는 자국 산업에 중대한 침해가 발생할 때 제재를 하는데, 미국에는 OLED 디스플레이업체가 없어 실제 피해를 입은 사례가 없다"며 "무리한 제소로 기업 이미지만 실추될 수 있어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
ITC는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청취한 뒤 사건접수 30일이 지난 내달 16일께 이번 사건에 대한 조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만약 조사가 진행되면 세탁기, 반도체에 이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까지 삼성의 주요 사업이 ITC의 제재 영향권에 들어가게 된다.
ITC는 미국이 자국 내 불공정 무역행위를 조사하거나 경제정책을 연구하기 위해 설치한 대통령 직속 준사법기구다. 최근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세탁기에 최대 50% 관세를 물려야한다는 제재 권고안을 냈고, 지난달 말에는 삼성전자가 미국의 반도체 패키징 업체인 테세라의 특허를 침해했는지 조사하기로 결정했다.
김미옥 코트라 전문위원은 "(주 교수의 제소건은) 실제로 조사에 들어가는지에 따라 파장이 달라질 수 있다"며 "내달까지 ITC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지켜봐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