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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막다른 길…취업대란에 신음하는 청춘

  • 2018.02.07(수) 15:35

<청년 일자리, 다시 미래를 설계한다>①-1
쳇바퀴 돌듯 고시공부…"이게 끝" 절박함
"면접 보기도 겁나"…지방이라 더 서러워

IMF 외환위기가 터진지 20여년이 흘렀지만 서민들의 체감경기는 한겨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륙도', '사오정'은 이미 옛말이다. 전체 실업자 100만명 가운데 20대 비중이 40%가 넘을 정도로 청년실업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자리잡았다. 비즈니스워치는 2018년 연중기획의 일환으로 청년 일자리 문제를 집중 조명하고 그 해법을 모색한다. [편집자]


"예전에는 고시하다 안 되면 취업한다고 하잖아요. 요즘은 취업이 워낙 어렵다 보니 여기서 안 되면 끝이에요. 차선이 없죠."

대학 4학년 때부터 행정고시 준비를 시작한 황모 씨(남, 29세). 고시 3년 차인 그에게 올해는 마지막이라는 절박함뿐이다. 그는 새벽 6시 일어나 눈을 뜨자마자 어디론가 향했다.

"이 새벽에 무슨 스터디냐고요? 고시생들이 대부분 혼자 생활해서 늦잠을 자거나 가끔 나태해질 수 있어서 기상스터디를 해요."

기상스터디가 뭘까. 6시30분에 맞춰 신림동 학원 앞으로 뛰어간 
황 씨는 살을 에는 영하권 추위 속에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이윽고 약속했던 5명이 모두 모이자 헤어졌다. 이게 끝이었다. 서로의 기상만 체크해주는 스터디다.

고시생의 하루는 단조롭다. 기상→학원수강→독서실→취침으로 이어지는 반복적인 일상에서 최대한 자신의 페이스를 잃지 않는 게 관건이다. 기상스터디는 내가 늦으면 다른 사람들까지 피해를 본다는 식의 강박을 주입하고 이를 서로 확인하는 자기관리 방법이다.

좋게 보면 생활습관을 바꾸기 위한 서로간의 약속이지만, 그 바탕에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스스로 무너질 수 있다는 절박함이 묻어있다.     

"고시생들 다 똑같아요. 학원 수업을 얼마나 듣느냐의 차이고, 체력관리를 위해 운동을 하느냐의 차이일 뿐이에요. 고시 보다가 잘 안 풀리면 사기업 채용 때 원서 써보고 한다는데, 옛날 얘기입니다. 요즘은 기업 입사에 필요한 것들이 많다 보니 따로 준비할 수도 없습니다. 여기에서 끝장을 보지 않으면 막다른 길에 몰리는 거죠."

◇ 지방 취준생은 면접도 사치

이모 씨(남, 29세)는 지방 출신으로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졸업했다. 취업이 바로 되지 않으면서 하숙집 월세 내기가 빠듯해 부모님이 계신 광주로 돌아갔다.

"지방으로 오니 남들 다하는 스터디를 할 수도 없고, 토익학원이나 스피킹 학원도 많지 않아 찾아다니기 어렵고, 사실 준비하기 어려운 점이 너무 많아요."

이 씨를 힘들 게 하는 건 또 있었다. 운좋게 서류전형을 통과해도 면접을 보러 갈지말지 고민부터 든다고 했다.

"서울까지 면접을 보러 가려면 대략 15만원 정도가 들어요. 그렇다고 기업이 면접을 한 번만 보는 것도 아니죠. 두세 차례 올라가려면 돈이 만만치않게 들어갑니다. 정말 가고 싶은 기업이나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데가 아니면 면접 보러 가기도 겁이 나요."

이 씨는 최근 기업들이 노스펙 채용을 주장하면서 더 바빠졌다. 이젠 취업하고 싶은 업종과 관련한 경험을 쌓아 스토리텔링을 하는 게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식음료나 유통업종에 종사하고 싶어 부모님 식당에서 일하면서, 동생의 맥주가게 창업을 돕는 등의 경험을 쌓고 있었다.

"제 목표가 창업은 아니지만 가족의 일을 도운 것이 결과적으로 자기소개서에 한 줄이라도 더 쓸 수 있게 됐죠."

이 씨는 최근 서류전형에 통과하는 빈도가 늘었고, 면접에서도 면접관들이 관련 경험에 대해 구체적으로 질문하고 관심을 보여 최종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기업이 있다고 했다.

▲ 청년실업률이 최대치에 달한 2017년, 구직자들이 채용박람회장에 입장하기 위해 긴 줄을 서고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정당한 대가를 받고 일할 수 있는 일자리 하나
 
황씨와 이씨와 같은 취업준비생들의 바람은 거창한 게 아니었다. 정당한 대가를 받고 꿈을 펼칠 수 있는 일자리 하나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실업자수는 102만8000명으로 이 가운데 청년실업자는 43만5000명에 이른다. 공식적인 청년실업률은 9.9%. 10명 중 1명꼴이지만 고시생이나 단기근로자 등이 통계에서 제외된 점을 감안하면 실제 실업률은 훨씬 높다는 게 공통된 관측이다.

일거리가 없어 시간제로 근무하며 더 나은 일자리를 찾는 청년을 포함한 체감 청년실업률
(고용보조지표3)은 지난해 기준 22.7%다. 청년 4명 중 1명이 원하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한국고용정보원 '고용동향브리프 11월호'에 따르면 2017년 5월 기준 청년의 첫 취업 평균 소요기간은 12개월이다. 이들 역시 1년 이상 취업만을 준비하며 수십개의 원서를 쓰고 있었다.
 
이정아 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은 "청년층의 첫 취업 평균 소요기간이 1년으로 일자리 탐색에 긴 시간을 투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그 이유는 기간이 길어지더라도 신중하게 입직을 결정하는 청년층의 경향과 노동시장에서 경력이 없거나 부족한 청년을 수용하지 않는 분위기 등 두가지 측면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기업도 정부도 속수무책

기업 입장에서도 할말이 없는 건 아니다. 대기업 한 인사담당자는 "기존 인력도 희망퇴직 등으로 내보내는 마당에 신규 인력을 채용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가 있다"며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기업 처지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조선·중공업·건설 등이 일자리 창출효과가 컸는데 최근 몇년간 문닫거나 구조조정을 하면서 구직자들이 느끼는 채용문이 더 좁아졌을 것"이라며 "반도체가 잘 나간다고 하지만 대규모 장치산업이라 고용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생각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청년실업 문제를 '국가 재난' 수준이라고 했던 정부도 해결책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래저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 와중에 터진 공기업과 금융권의 채용특혜는 가뜩이나 추운 겨울을 보내는 취준생들에게 칼날 같은 상처를 남겼다.

"지하철 안에 정장을 입고 지쳐있는 직장인들을 보면 그저 부럽죠. 하반기에도 30개 정도 원서를 썼는데, 서류전형 통과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에요. '흙수저'인 게 죄죠."

서울 시내 한 어학원 앞에서 만난 김 모씨(25세, 여)는 스펙이라도 쌓겠다며 오전 내내 어학원에서 토익 수업을 듣고 나오는 길에 
이 같은 말을 남기고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철역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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