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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톱 숨겨온' 엘리엇, '현대차 플랜B' 들이댄 속내

  • 2018.04.24(화) 15:09

[현대차, 후진적 지배구조 '빅뱅']⑦
"현대차-모비스 합병해야 현대·기아차 주주 유리"
현대차 위주 지분매입 후 차익 극대화 수정전략
제안 근거 삼아 법정다툼 가능성…'삼성 데자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판 흔들기'에 나섰다. 재무적 투자 뿐만아니라 적극적으로 경영에 직접 관여해 차익을 극대화하는 '행동주의' 펀드의 본색을 드러냈다.

 

핵심은 현대차그룹의 모비스-글로비스 분할합병 방안 대신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를 합병한 뒤 이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나눠 현대차, 기아차 주주에게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현재차그룹이 진행중인 구조로는 자신들이 기대하는 투자수익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판단, 이른바 '플랜 B'를 본격 가동한 것이란 분석이다.

 

 

◇ 현대차·기아차 주주 중심 '勢 모으기'
 
엘리엇은 지난 4일 현대차그룹 계열사에 10억달러(약 1조500억원) 규모 보통주를 소유하고 있다고 밝히며 이번 지배구조 개편 방안에 대해 개입 의지를 내비쳤다. 당시만 해도 현대차그룹이 지난달 28일 내놓은 모비스-글로비스 분할합병을 핵심으로 한 순환출자 해소 방안에 대해 "환영한다", "고무적이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다만 "추가 조치가 필요할 것"이라는 여지를 두기는 했지만 발언 수위는 높지 않았다.

 

이랬던 엘리엇은 20여일 사이 180도 달라진 태세로 나타났다. 모비스 등이 지난 18~19일 총 3차례에 걸쳐 분할합병 방안에 대해 국내·외 투자자를 대상으로 대규모 투자설명회(IR) 컨퍼런스 콜을 가진 지 나흘 만이다.

 

엘리엇은 23일 별도 개설한 홈페이지(www.acceleratehyundai.com)를 통해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를 합병해 지주사로 전환하라'는 요구내용을 담은 '현대 가속화 제안'(Accelerate Hyundai Proposals)을 '레터'와 '프리젠테이션' 형태로 내놨다.

 

엘리엇 요구의 요지는 이렇다. 현대차와 모비스 합병(1대 1.52 가정)→합병회사를 상장 지주회사(홀드코)와 상장 사업회사(옵코)로 인적분할(3대 7 가정)→현대차 지주회사가 사업회사 주식을 공개매수→기아차 소유의 현대차 지주회사 및 사업회사 지분을 지주회사와 사업회사 등에 매각하는 순서로 지배구조를 개편하자는 것이다.

 

엘리엇은 이렇게 하면 정몽구 현대차 회장 등 오너 일가는 최종적으로 지주회사 지분을 23~31.1% 보유하게 되고, 이어 지주회사가 현대차 사업회사(31.1~37.8%), 기아차(33.9%)를 비롯해 현대건설, 현대로템, 현대위아 등 계열사를 소유하는 단순한 지배구조가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모비스·현대차의 과대화된 대차대조표 해소를 위한 자사주 소각 ▲기아차가 보유한 모비스·글로비스 주식 자산화 ▲현대차 배당지급률 순이익의 40∼50%로 개선 ▲경험이 풍부한 사외이사 3명 추가 선임 등의 요구안도 내놨다.

 

엘리엇은 "현대차 기존 개편안에 결핍된 핵심 요소들에 대한 보완책을 포함한 것"이라며 "앞서 제안서 주요 내용을 받아본 현대차그룹 주주 대부분이 제시된 개선점들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고 강조했다.

 

 

◇ 엘리엇式 개편에 '현대차' 필요한 이유

 

엘리엇은 기존 개편안이 "전체적인 기업구조의 추가적인 간소화 없이 핵심 순환출자 관계만을 해소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현대차와 기아차가 부담하는 불필요한 세금이 최대 1조8000억원이라는 지적과 모비스 분할비율이 부당하다는 지적도 함께 내놨다.

 

그 대신 자신들 방안대로 "지주회사 아래 수평적으로 자회사들을 둘 경우 배당금에 대한 세금 누출이 감소하고, 향후 구조적으로 자본의 효율적 배치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엘리엇이 이런 주장을 펴는 데는 현재 확보한 지분으로는 모비스-글로비스 분할합병안에서 차익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렵다는 속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엘리엇은 이번 레터에서 자신들이 모비스, 현대차, 기아차 보유 지분이 각각 보통주의 1.5% 이상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일각에서는 이 같은 투자가 이번 모비스-글로비스 분할합병을 골자로 한 시나리오를 미리 예측하지 못한 결과로 보고 있다. 이런 이유로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바꾸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이 있다. 

 

특히 엘리엇은 모비스보다는 현대차 중심으로 지분을 확보했기 때문에 틀 자체를 바꾸려 한다는 관측이 있다. 엘리엇이 보유한 현대차 계열 3개사 지분 비율이 똑같이 1.5%라고 해도 값으로 따지면 모비스는 3599억원, 현대차는 5386억원, 기아차는 1918억원어치다.

 

반면 엘리엇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제안에서 현대차 개편안의 한 축이자 대주주(정의선 부회장 등 29.9%) 지분율이 높은 글로비스에 대한 언급은 아예 배제하고 있다.

 

이런 점들을 볼 때 엘리엇은 스스로 설정한 시나리오에 맞춰 현대차의 지분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행동에 나섰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엘리엇이 현대차와 기아차에 투자한 성과를 내려면 이처럼 현대차라는 기업이 분할합병 구조 안에 들어갔어야 했다"고 말했다.

 

엘리엇은 또 "최종 거래가 어떠한 구조를 갖든 기아차가 보유한 모비스 주식에 대한 투명하고 적정한 가치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역시 자신들이 보유한 기아차 지분에서 차익을 끌어올리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평가가 시장에서 나온다.

 

▲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왼쪽)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 "뜬금없다"지만 뒤끝 찜찜한 현대차

 

현대차그룹은 한 마디로 "뜬금없다"는 반응이다. 현대차 한 관계자는 "최근 접촉 때만해도 '생각보다 괜찮더라'고 평가했는데 엘리엇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안을 들이댔다"고 말했다. 계획한 주주총회까지 한 달 남짓한 상황에서 엘리엇 제안을 수용해 판을 다시 만들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 하지만 자칫 발목이 잡힐까 긴장의 고삐 역시 늦추지 않고 있다.

 

시장에서도 현대차그룹이 글로비스를 배제한 안을 수용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분석한다. 한 지배구조 전문가는 "엘리엇이 제안한 현대차-모비스 합병은 정의선 부회장의 글로비스 지분을 전혀 활용할수 없는 방안"이라며 "현대차그룹 경영진도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를 모를 리 없는 엘리엇이 제안을 내놓은 것에는 뒷배경이 있음직하다는 시각이 있다. 현대차 개편안에서 불만을 품을 수 있는 모비스 주주들 사이에 반대세력을 결집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되자 현대차와 기아차 주주들의 불만을 활용하는 것으로 우회전략을 펴 투자가치를 극대화하려는 것이란 분석이다.

   

엘리엇이 그린 청사진 대로라면 현대차 주주는 지주사 지분 확보와 배당 확대, 기아차 주주는 모비스 지분가치 현금화를 등을 통한 주가 상승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실현 여부를 점칠 수는 없지만, 가능성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현대차그룹으로서는 뒤끝이 영 찜찜할 수 밖에 없다.

 

특히 현대차가 기아차 지분 34%, 기아차는 모비스 17%를 가진 순환출자 구조가 빌미가 될 수 있다. 기아차가 엘리엇 제안보다 기존 안이 낫다는 논거를 충분히 확보하지 않고 모비스-글로비스 분할합병안에 의결권을 행사할 경우 경영 판단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주주 다수가 아닌 대주주를 위해 의사결정을 내린 것으로 간주될 수 있어서다.

 

한 재계 관계자는 "과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때를 보더라도 엘리엇의 이번 제안은 향후 법정다툼을 염두에 둔 사전 포석일 가능성이 높다"며 "기아차나 현대차 경영진도 기존 개편안이 엘리엇 제안보다 다수 주주들의 미래이익에 부합하다고 판단한 근거를 법정에서 증명해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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